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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여행] '나'를 내려놓는 길…한걸음씩 비우고, 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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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0-12-22 10:42 조회3,18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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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 오대산 월정사~상원사 숲길 ‘선재길’
스님과 불자들이 걷던 구도의 길로 알려져
총 9km거리, 편도로 3시간 걸려
한국 사찰 중 가장 넓은 숲을 보유한 ‘월정사’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상원사 '동종'

 


오대산 상원사 입구에 있는 ‘번뇌가 사라지는 길’(사진=강경록 기자) 

 

[평창=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번뇌가 사라지는 길’. 강원도 평창 오대산 정상인 비루봉 아래에 자리한 상원사. 월정사에서 시작한 길. 그 끝, 계단이 시작하는 길옆에 세워진 작은 팻말에 쓰인 글씨다. 청풍루까지 오르는 108개의 계단길. 이 계단길의 이름이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에서 이름 따왔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108염주를 돌리듯, 계단 하나하나 오를 때마다 번뇌도 하나씩 내려두라는 말일 터. 그만큼 인간의 번뇌가 수없이 많다는 뜻이다. 갑갑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난 이들이 이 길을 찾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전염병이 전국을 휩쓸면서 번뇌도 그만큼 쌓였다. 굳이 상원사의 계단이 아닐지라도, 한 해 동안 쌓인 번뇌를 올해가 가기 전에 내려놓는 것은 어떨까. 

 


선재길 들머리인 월정사 매표소를 지나면 금박글씨로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란 현판을 걸고 있는 월정사 일주문을 만난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가는 길

오대산을 오르는 방법은 많다.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길도 있고, 일부러 더 힘을 들이는 길도 있다. 가장 쉽고, 일반적인 길은 월정사 전나무 숲길과 선재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선재길은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에서 따왔다. 선재동자는 지혜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돌아다니다 53명의 현인을 만나 결국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 길을 걷는 이들이 한줄기 지혜의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선재길의 길이는 총 9km. 천천히 걸으면 편도로 3시간 정도 걸린다. 길게 뻗은 전나무와 인적 없는 계곡, 그리고 좁은 산길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들머리는 월정사 매표소다. 여기서 200m가량 오르면 금박글씨로 ‘월정대가람’(月精大伽藍)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일주문. 다시 월정사 금강교까지 약 1km의 흙길이 이어진다. 이 길이 ‘월정사 전나무숲길’이다. 일주문 왼쪽으로는 상원사 앞을 지나 흘러온 계곡수가 자작자작 흐르고, 오른쪽에는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 길을 두고 누군가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가는 길’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가는 길로 불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 선재길 코스에서 하이라이트 구간이다.



길과 주변 숲에는 1000여 그루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다. 마치 속(俗)과 선(禪)을 나누는 경계처럼 숲 사이로 길이 나 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날이면 이 숲길에는 청명함이 가득하다. 30여m 높이로 쭉쭉 뻗은 전나무 숲이 거대한 산소공장처럼 피톤치드를 내뿜고 있어서다. 숨을 길게 들이마시면 세속에 물들었던 탁한 생각과 잡념까지 깨끗이 사라진다. 

 

숲길은 반듯하지 않다. S자로 굽어 있다. 길 초입에는 삭발탑이 서 있다. 아마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입산한 승에게 절에 들어올 때의 첫 마음가짐을 잊지 말라는 뜻일 게다. 삭발탑을 지나면 장정 두세 명이 손을 잡고 안아야 할 정도로 굵은 거목이 늘어서 있다. 평균 나이는 80년 정도. 최고령 나무는 370년이 넘었다고 한다. 이 길의 시작은 아홉수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수령 500년의 전나무 아홉 그루의 씨가 퍼져 지금의 울창한 숲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이 숲길이 끝나는 곳에는 청아한 목탁소리가 기다리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에는 국보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팔각 2층 기단 위에 세운 것이 특징이다.

스님과 불자들이 걷던 구도의 길에서 부처를 만나다

금강교를 지나면 오대산에 등을 기댄 월정사가 점잖게 앉아 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지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중국 당나라에서 얻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갖고 돌아와 세웠다. 이후 1400년 동안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머무르는 불교성지로 사랑을 받았다.

월정사는 우리나라 사찰 중 가장 넓은 숲을 보유한 대가람이다. 여의도 면적의 7배에 달한다. 일제강점기에 조사한 임야와, 광복 이후 농지개혁 등으로 줄어든 면적이다. 원래는 이보다 훨씬 넓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넓은 면적의 숲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의 7대 왕인 세조와의 인연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당시 세조는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불교에 귀의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자 했다.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해 불서를 간행했고, 월정사 중건에도 큰 도움을 줬다. 그런 인연으로 월정사를 방문한 세조는 두 번의 기적을 경험했다. 한번의 기적은 세조가 상원사 계곡에서 몸을 씻고 지병인 피부병을 고쳤다는 것이다. 세조가 월정사 법당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고양이가 옷매를 끌어당겨 자객으로부터 목숨을 구한 게 또 하나의 기적이었다. 이후 월정사는 중건을 거듭해 오늘에 이르렀다. 팔각 2층 기단 위에 세운 월정사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과 석조보살좌상, 월정사 보물을 보관한 성보박물관은 옛 월정사의 모습을 온전히 기억하고 있다.
 

오대산 월정사에는 국보 월정사 팔각구층석탑이 있다. 이 석탑은 팔각 2층 기단 위에 세운 것이 특징이다.



월정사 경내를 벗어나면 선재길로 이어진다. 전부터 스님과 불자들이 주로 다녔던 길. 아름드리 거목 사이로 흘러드는 사색의 길이자, 부처를 만나러 가는 구도의 길이었다. 사시사철 푸른 거목 사이로 토기에 새긴 빗살무늬 같은 나무의 기둥사이로 걷다 보면 숱한 고난의 세월을 버텨온 고목의 위엄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숲길은 완만한 경사다. 계류를 따라 걷다가 물길을 만나는 지점에서 숲으로 파고들 수 있다. 누구도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편하지만, 선재길 중간중간 탐방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 여름 태풍 여파 때문이다. 찻길과 도보길을 오가며 걷는 재미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조붓한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길 끝에 상원사가 숨어 있다. 상원사 초입에는 조선 세종대왕이 목욕할 때 의관을 걸어둔 관대걸이가 이정표처럼 서 있다.

상원사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동종이다. 1300여년 전 통일신라 때 주조했다. 국내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범종이다. 음향이 맑고 깨끗한 것이 특징. 특히 하늘거리는 옷자락을 휘날리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과 그를 둘러싼 연꽃 문양이 그윽한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 종을 매단 고리 역할을 하는 용뉴다. 입을 딱 벌린 용이 다리를 앞뒤로 벌린 채 종의 무게를 버티고 선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오대산 상원사 경내



여행메모

△가는길= 동서울터미널에서 진부행 시외버스를 탄 뒤 진부에서 버스를 갈아타거나,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진부역에 내리면 된다. 이곳에 월정사 행 버스가 있다. 자동차로는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나와 표지판을 따라 15분 정도 달리면 월정사 입구가 나온다.
 

△먹을곳=월정사 입구 오대산 가마솥식당과 동대산식당의 산채정식이 유명하다. 한우 셀프식당 평창한우마을도 있다. 평창읍의 동양식당은 오삼불고기, 동양식당 맞은 편 유명찐빵은 찐빵이 맛있다.

△잠잘곳=평창알펜시아리조트에는 인터컨티넨탈호텔(238실)과 홀리데이인리조트(214실), 홀리데이인&스위트(콘도미니엄·419실)를 갖추고 있다. 최근에 들어선 평창 라마다호텔은 횡계 시외버스 공용 정류장에서 차로 약 10분, KTX 진부(오대산)역에서 차로 약 25분 거리에 있다.
 

오대산 상원사에 간다면 유심히 봐야할 ‘동종’. 국내 현존하는 동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범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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