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로부터 강원도 원주여행을 제안 받고서 나는 사실 많이 망설였다. 우선 원주에서 군 복부를 할 때 별로 좋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있고, 치악산과 구룡사, 구룡계곡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볼거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원주에 맛있는 강원도 음식점이 많았다는 기억에 오랜만에 메밀, 옥수수, 감자 등 지역특산 음식을 맛보기 위해 겸사겸사 지난 21일(토)~22일(일) 1박2일 일정으로 원주로 갔다.
사실 나는 원주를 생각하면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이 먼저 생각나고, 다음은 국내 최초로 생산자협동조직과 소비자협동조합을 만들어 '한살림 공동체' 운동을 주도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원주의 산과 계곡, 절은 물론 두 분의 기념관도 둘러볼 생각이다.
우리 일행이 원주에서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치악산 아래 소초면 학곡리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구룡사(龜龍寺)다. 구룡사는 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의 말사다. 서기 668년(문무왕 8)창건되었으며,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다.
원래 절터 일대는 깊은 소(沼)로서, 거기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이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은 이를 막기 위해서 뇌성벽력과 함께 비를 내려 산을 물로 채웠다.
이에 의상이 부적 한 장을 그려 연못에 넣자 갑자기 연못이 말라버리고, 그 중 용 한 마리는 눈이 멀었으며, 나머지 여덟 마리는 구룡사 앞산을 여덟 조각으로 갈라놓고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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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교, 다른 중간에 거북이 2마리, 좌우측 교각 쪽에 용머리가 4개 있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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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이 절을 창건한 뒤 이러한 연유를 기념하기 위해서 절 이름을 구룡사(九龍寺)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절 이름은 조선 중기 쇠락한 절의 운세를 지켜주는 거북바위를 다시 살린다는 의미에서 '거북 구(龜)'자를 써서 구룡사(龜龍寺)로 바뀌었다.
창건 이후 도선(道詵), 무학(無學), 휴정(休靜) 등의 고승들이 머물면서 영서지역 최대사찰의 지위를 지켜왔다. 절의 당우로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광루, 삼성각, 심검당, 설선당, 적묵당, 천왕문, 종루, 일주문, 국사단 등이 있다.
대웅전은 조선 초에 개축된 건물로서,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예스러운 맛이 다소 감소되었으나 못 하나 쓰지 않은 화려한 건축물로, 특히 부처님 머리 위에 있는 닫집은 조선 후기의 목공예 기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귀한 것이다.
불국토로 향하는 관문의 역할을 하는 보광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며, 3면이 막혀 있으나 누각층는 대웅전 방향으로 개방되어 있다. 일대에서는 가장 장대한 건물로 기둥이 크고 누마루가 장중하다.
그러나 규모가 장대함에도 불구하고 지붕은 맛배형, 골기와가 얹혀있는 단청이 화려하지는 않아 소박함도 물씬 풍기는 건물이다. 특히 이층 마루에 깔린 멍석은 3명의 장인이 3개월 동안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것으로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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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사 구룡사 사천왕문 천정의 만다라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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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이곳의 사천왕문도 남다른 매력이 있다. 중층으로 지어진 규모가 전국적으로도 가장 큰 사천왕문을 자랑한다. 2층 천정에 그려진 만다라가 볼만하다. 좌우측 세로기둥 위의 선녀화도 마치 당장 날아갈 것 같은 어여쁜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절 입구에는 조선시대에 세운 황장금표(黃膓禁標)가 있는데, 이것은 치악산 일대의 송림에 대한 무단벌채를 금하는 표석으로,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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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장금표, 금강소나무의 벌금을 금지하는 금표로 현존하는 전국 유일의 표지석이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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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경 치악산 국립공원 매표소에 차를 세운 우리들은 입구의 황장금표를 보고는 바로 이곳이 명품 소나무 숲길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신라의 고찰임에도 불구하고 구룡사에 금강송을 이용한 멋진 사찰건물이 없는 이유가 조선왕조가 이곳의 소나무를 무단 벌목하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덕분에 후세들이 좋은 소나무 숲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절은 별로 볼품이 없는 사찰이 되어 아쉽기도 했다. 매표소에서 구룡사까지는 대략 900m의 계곡을 끼고 있는 숲길로 소나무, 고로쇠나무, 참나무, 서어나무 등 침엽수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어 그윽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산책로이며 피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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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리지를 안고 있는 나의 모습, 가족간의 화목을 기원한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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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선 매표소를 지나 황장금표 앞에 있는 금강송 연리지를 안고서 기념촬영을 했다. 금슬송이라고 불리는 연리지는 부부는 물론 가족 간의 금슬을 좋게 한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안고 소원을 비는 곳이기도 하다.
정말 계곡과 소나무가 좋았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구룡교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 중간에 거북상 2개와 좌우측 끝에 용머리 조각이 4개 있다. 비로소 구룡사에 들어선 느낌이다. 이어 다시 계곡을 끼고 있는 멋진 숲길이 이어진다. 마음 그득히 들어차는 청량한 기운과 소나무 숲의 향기가 일품이다.
구룡계곡은 맑디맑은 물과 빽빽이 들어찬 수목, 그리고 온갖 자생식물들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입이 벌어지는 비경을 연출하고 있다. 귀를 즐겁게 하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그윽한 소나무 향, 세차게 흘러가는 물소리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어 길을 오르면 바로 일주문인 원통문이다. 아마도 둥근 원처럼 중생의 고뇌를 씻어 준다는 의미인 것 같다. 원통문을 지나 절 입구로 들어서기 직전 수령 200년은 되어 보이는 은행나무가 오리발 같은 잎을 드러내고 있는데 자태가 웅장하고 눈이 부실 정도로 멋스럽게 서있다.
이어 산기슭에 높은 단을 쌓아 터를 다진 곳에 구룡사가 있다. 웅장한 사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과 보광루, 종루 등이 보인다. 절의 내부를 살펴본 다음,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잠시 종루 앞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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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사 범종, 1978년 박정희가 기증한 종이다. 에밀레종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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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의 에밀레종을 닮은 이곳의 범종은 지난 1978년 박정희가 만들어 기증한 한 것이라고 한다. 비록 종소리는 비할 것이 못되지만, 박정희가 생애 마지막으로 절에 준 종이라고 하니 구룡사에서는 의미 있는 종이라고 했다.
산과 숲, 계곡, 폭포가 좋아서 그런지 구룡사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천년고찰이라고 하나 별로 볼 것이 없는 절이지만, 지난 2002년부터 템플스테이를 전국 최초로 실시하여 맑은 자연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통하여 치악산과 구룡사, 구룡폭포, 세렴폭포, 구룡계곡에서 쉬어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울러 지역민을 위한 불교대학도 운영하고 있어, 신도들의 출입도 많은 절이라고 한다. 특히 요즘 같은 여름에는 계곡으로 피서를 오는 사람도 많고, 일주문을 지나 몇 걸음이면 구룡폭포, 조금 더 가면 세렴폭포가 있어 시원한 물소리를 듣고 보기 위해 오는 인파가 즐비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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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룡폭포, 작지만 운치가 있다. 물도 맑아서 좋다 |
ⓒ 김수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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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구룡계곡과 구룡폭포는 치악산의 진면목을 보기에 좋은 듯하다. 절을 보고 돌아 나오며 숲길을 걷는 내내 마음을 울리는 물소리는 더 없이 청아하고 편안했다. 구룡폭포는 비록 규모는 작았지만, 초록의 빛과 숲이 어우러진 풍경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잔잔한 떨림이 아직도 가슴 속에 남아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