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스님 맥 잇는 조계종 원로 원행스님 써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도록 노력했다"
|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조계종 원로 원행스님이 ‘성인 한암 대종사’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을 열었다. 한암스님의 일대기를 출판한 배경을 설명한 뒤 기념촬영 중인 원행스님./사진=황의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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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한암스님(1876~1951)의 일대기와 저술, 게송, 편지 등이 신간 ‘성인 한암 대종사’로 소개된다. 이 책은 한암스님의 평전이면서도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월정사의 이야기와 한국불교사의 단면들이 담겼다.
2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성인 한암 대종사’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원행스님은 “경허·한암스님의 맥에서 진정한 조선의 선이 출발한다. 그것은 중국·일본에도 동남아에도 없는 것”이라며 “한암스님은 김구 선생과 마하트마 간디 등과 동시대 사람으로, 그분의 일생을 살펴보면 성인(聖人)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 장사하는 일반인들도 이 분의 삶과 사상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집필했다”고 강조했다.
원행스님은 약관의 나이에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해 만화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한암스님의 제자인 탄허스님을 시봉했다. 10·27 불교법난의 피해자면서 조계종 최고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으로 종단의 ‘어른’이다. 스님은 탄허스님이 창건한 자광사의 중창 불사를 했을 뿐만 아니라, 원주 치악산 구룡사 주지로 부임해 원주불교대학을 개설하고, 경찰 불자들을 위해 원주경찰서 경승실을 새롭게 장엄하는 등 대중 포교에 힘쓰기도 했다.
원행스님은 한암스님이 경봉스님 등 다른 고승과 교류한 서신과 문답, 오도송(悟道頌·깨달음을 읊은 선시) 등을 일반인이 쉽게 접하도록 풀어쓰느라고 관련 자료만 50회독 이상을 읽어야 했다. 스님은 “(한암스님은) 수행인으로 본받아야 할 표상이라고 생각했기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원행스님이 보는 한암 선(禪)의 특징은 ‘진리와 일치되는 삶’이었다. 한암스님은 1941년 조계종 초대 종정에, 1948년 2대 종정에 추대됐지만, 선승으로 삶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한암스님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되겠다”며 1925년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가 입적할 때까지 27년 동안 바깥 출입을 하지 않고 수행에만 전념했다. 오늘날 오대산문의 선풍(禪風) 근간에는 한암의 자취가 남아있다는 게 원행스님의 설명이다.
삶과 진리가 함께 하는 한암스님이기에 스승인 경허스님조차 30세 연하인 한암스님을 ‘지음자’(知音者·나를 정말 알고 있는 사람)라고 불렀고, 한암의 공부 경지를 ‘마음이 열리는 지혜를 이미 넘어섰다’며 찬탄했다.
책 서평을 쓴 도올 김용옥은 한암스님이 경허스님의 선맥을 잇고 있으면서도 전혀 다른 풍모를 지녔다는 점을 언급했다.
도올은 “한암은 경허의 모든 것, 그의 삶, 정신세계, 감정기복, 지향처를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했으면서도 한암은 경허와는 매우 다른 인간이었다”고 강조했다.
도올은 “경허의 또 하나의 제자 만공이 경허의 파격적 측면을 계승해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지니는 것과는 달리, 한암은 전 승가의 수행풍토를 진작하려는 보편주의, 그리고 남전-조주풍의 우아함, 그리고 계율을 넘어서면서도 계율을 내면화하는 단아함을 지니고 있다. 한암은 조주처럼 말이 없고 조용하다. 그러면서도 일상적 한마디 한마디가 고려의 보조와도 같은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의중 기자 hej80@asia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