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서울(문화일보)201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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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8-04 11:04 조회10,455회 댓글0건본문
<살며 생각하며> 조용한 서울 |
한수산/작가 “또 그 얘기세요?” 하며 아들 녀석이야 손을 내젓겠지만 이 녀석의 어린 시절에는 황당한 일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관광’이다. 관광이라는 한자어의 뜻을 쓰라는 시험 문제에 ‘빛을 보다’라고 쓴 녀석이기에 하는 말이다. 볼 관(觀)에 빛 광(光) 자를 쓰는 게 관광이니 글자풀이로야 그토록 정확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세상에! 관광도 모르는 녀석이 바로 내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오답의 불똥은 어이없게도 나에게로 튀었다. 오죽 아이들에게 무관심했으면 그랬겠느냐는 것이었다. 석굴암이나 무령왕릉은 그만두더라도 설악산 단풍이니, 섬진강 매화니 아이들 데리고 그 흔한 관광여행이라는 걸 단 한 번도 다녀 본 적이 없으니 가문에 빛날 이런 사태가 생긴 거 아니냐. 아비라는 게 이토록 아이들에게 해 준 게 없다 보니 아들이라는 게 관광의 뜻도 모르고 덜커덕 ‘빛을 보다’라고 써놓는 것이라면서,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까지 아내는 꺼내들었다. 바로 이 아들 녀석에게 ‘오대산 빨래쟁이’라는 별명이 있다. 유치원 시절 딸 아들 합쳐 우리 네 식구가 월정사가 있는 오대산 계곡으로 피서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상원사로 오르는 오대산 계곡에 아이들을 풀어놓고 나서 놀란 것은 그 산속으로 가족여행을 나온 주부들이 모조리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쉬러 왔으면서도 쉬지도 못하는 심정, 종일 땀에 절고 더러워진 아이들 옷을 그렇게라도 챙기는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청정계류에 비누 거품을 있는 대로 풀어대면서 어쩌자는 것인지.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물잠자리를 잡는다고 시냇물을 오르내리며 들뛰는데, 겨우 물속에 발목을 담그고 앉아 있던 유치원생 아들 녀석이 한 일이 바로 그 빨래였다. 대단한 발견이라도 되는 양, 제 윗도리를 벗어서 아줌마들 흉내를 내느라 돌멩이까지 집어서 토닥토닥 두드려가며 빨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제 옷을 다 빨고 난 아들 녀석이 한마디 했다. “아빠 꺼도 빨아 드려요?” 그렇게 해서 생긴 게 오대산 빨래쟁이라는 별명이었다. 문제는 바로 그때의 오대산 여행이 우리 가족사의 유일한 피서여행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런 아비였으니 그 아들놈이 관광이 뭔지 알 리가 없다는 아내의 눈흘김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노는 것도 왕성하게 격정적으로 논다. 아연 달라져서 그야말로 ‘오버’한다. 하긴 한국인에게 있어 놀이의 끝은 싸움이었다. 놀아도 싸움이 나도록 놀아야 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모습이 되었지만 내가 대학 시절만 해도 학생들끼리 야유회를 가면 한두 녀석은 엉망으로 취해서 누군가에게 업혀서 돌아가거나 그도 아니면 누군가가 멱살잡이를 해야 잘 논 것이 되던 우리들이었다. 집안의 잔치만 해도 그렇지 않았던가. 잘 나가던 잔치도 끝 무렵에 가면 꼭 덜떨어진 친척 하나가 ‘섭섭합니다요’ 하며 여기저기 시비를 걸고 나서야, 그래야 잘 치른 잔치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한 일본 언론인과 저녁을 함께한 자리에서였다. 6년여 만에 다시 한국 근무를 시작하게 된 그는 대뜸 서울이 참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6년 전이라면 정권이 한 번 바뀐 시간인데 그동안 달라지면 뭐가 크게 달라졌겠는가. 서울 중심가에서 낡은 집들이 헐리고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빌딩이 좀 더 들어선 거리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가 꺼낸 말은 이러한 도시의 외형이 아니었다. 그가 달라졌다고 한 건 우리들이 가진 삶의 질이었고 시민의식이었다. 그는 먼저 6년 전보다 물가가 많이 올랐더라는 말을 했다. 5000원이면 해결되던 점심이 1만 원 가까이로 치솟아 있어서 놀랐다는 말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변화라면 그것도 변화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무엇보다도 서울이 아주 조용해졌어요.” 지하철 안에서 전화를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데다가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광화문에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에는 지하철 안에서 저마다 전화를 하는 시끄러운 모습이 서울의 한 얼굴이기까지 했는데 자동차의 경적 소리와 함께 그것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만이 아니라 공중화장실 변기에 앉아서까지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곤 하는 나였기에, 그런가 하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울 앞에 서지 않고는 내가 내 얼굴을 볼 수 없듯이 우리는 우리가 이뤄내고 있는 변화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지 모른다. 아니면 너무 자기 성찰에 치우쳐서 스스로를 과도하게 폄훼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휴가철이다. 소란과 무질서와 바가지 요금에 마구잡이로 내버린 쓰레기까지 뒤엉켜서 휴가가 차라리 고생인 시절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지난날로 돌리고, 이번 여름휴가는 일에서의 해방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휴식, 길 떠난 사람의 자유가 무늬지어 가득하기를 기대해 본다. 이제는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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