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간을 꿈꾸는 이에게 이 작은 시간의 선물을”(불교신문)201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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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9-07 09:22 조회10,955회 댓글0건본문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간을 꿈꾸는 이에게 이 작은 시간의 선물을” | ||||||||||||
행복한 사문이 전하는 시간의 선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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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었다/ 나의 생각은 시간보다 빨랐고/ 세월은 나의 의식보다 느리고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웠다/ 어찌된 일일까/ 이제 와 나의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 뒤를 쫓지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성원스님의 시 ‘시간의 선물’은 이렇게 시작된다. 7년 동안 월간<해인> 표제시를 써 온 필력의 저자는 세월에도 변하지 않는 단단한 기상을 단출하게 전한다. 시 한 수에 평소 놓치고 있던 자성의 소리를 가득 담은 기법은 평소 들리지 않던 산사의 바람소리와 잔잔한 풍경 소리를 맑게 들려준다. 늘상 나무 그늘 아래 앉아 한 걸음 쉬어가게 하는 안정감을 주는 서정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해야/ 잃어버릴 네 꿈들이/ 그토록 찾아 헤는/ 내 작은 소망이거늘/ 아해야/ 멈추어 보렴/ 천년토록 만년토록/ 천만년토록/ 그대로 지금 그대로/ 천진불 그대로/ 이 봄에사 제발/ 아해야/ 멈추어 꽃 되어 주렴/ 잃어버린 꿈이 되어 주렴.” 아이와 연등을 함께 든 〈사진〉처럼 그 속의 자화상은 저자의 시 ‘아해야’에서 “목련이 먼저 알아/ 훤히 미소 지으며 길 밝히네”로 그대로 투영된다. 저자는 ‘누구를 위해 등 밝힐 것인가’에서 산에 존재하는 산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80편 글로 사색통한 휴식제공 시에 적절한 사진작가 사진도 “마치 난생처음 산사를 본 사람처럼 내게 월정사는 무한한 신비로 다가왔다. 고요한 숲과 그곳에서 느껴지는 평화로움, 일주문을 지나 산사까지 가는 진입로의 울창한 전나무 숲은 더욱 나를 함몰시켰다. 그제야 이 모든 것이 산사에 의해, 산사를 위해 이렇듯 천년의 세월을 꾸며 왔음을 알았고, 그제야 산사의 신비를 맛보게 되었고, 정말이지 이전까지의 산행은 반쪽 산행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책의 글과 사진은 휴식이란 작은 변화에서 찾아짐을 다시금 일깨운다. 휴식은 그만큼 큰 ‘범종’에서 ‘작은 속삭임’까지 다양하다. “시작은/ 언제나 가녀린/ 떨림/ 처음 열릴 때/ 하늘도/ 그 용맹하던/ 대웅의 처음도/ 저토록 작은 모습이었다/ 거센 여름의 폭풍우/ 온산 가득한 만추의 홍엽/ 세찬 설한의 눈보라/ 모두 길러내는/ 이 작은 속삭임/ 또 다시/ 봄이 오고/ 미세한 변화를/ 꿈꾸어야 한다/ 언제나/ 떨리는 설레임으로/ 온통 세상/ 바꾸어 가는/ 큰 꿈.” ‘범종에 대한 단상은 “마지막 공명/ 다 끊기어도/ 열두 폭/ 깊디깊은 자락/ 장삼에/ 숨어 우는/ 이 마음”이다. 책은 1장 ‘서원보다 더 아름다운’, 2장 ‘문아 열리어라’, 3장 ‘부끄럼없이 나를 날’ 등 총 3장으로 구성됐고, 각 장에는 시와 에세이를 균형있게 배치한 80편의 글은 사색을 통한 휴식의 시간을 충실하게 제공한다. 시에 적절한 사진을 위해 사진작가 배종하 이영숙 박경미 이성은 설연화 우영철 씨 등이 작품을 제공했다.
책에 대해 전 불학연구소장 원철스님은 “번다하면 친절하긴 하나 어수선하고 간결하면 담백하긴 하지만 퉁명하다”라고 성원스님의 시를 논평하고, 책에 대해 “역대 선사와 하이쿠 시인도 누리지 못한 영상까지 더했으니 비단 위에 꽃을 더함이라 하겠다”고 추천했다. 제주 약천사 주지인 저자는 책을 펴낸 이유를 이렇게 썼다. “시를 읽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삶의 시간을 늦추며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간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 작은 시간의 선물을 드리고 싶다.” 다양한 소재를 글로 담아내는 저자는 그만큼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다. 신문의 고정 칼럼을 쓰면서, 서귀포불교대학 교수, 한국국제교류단 KOPICA 자문위원, 유니세프 서귀포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한다. 욕심을 덜어내고 바쁜 하루 일상에서 충분한 휴식을 주는 시 한 대목. “말 없는 벗/ 소리없이 찾아와/ 문풍지 창 열고/ 겨울 더불어/ 차나 마시려니/ 담장 너머 기웃대는/ 봄 기척!/ 찬 눈 밟으며/ 또 마중 나가네/ 이 어찌 ‘봄 마중’이 아니겠는가/ 이 어찌 봄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책의 말미는 저자의 솔직한 심경 고백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나는 죽음이 두렵다. 열반이 진정 생과 사를 초월하는 일이라고 하니 죽음이 두려워서 나는 오늘도 열반을 희구한다.” [불교신문 2845호/ 9월5일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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