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있던 고창으로 보내달라” 소장자 바뀔때마다 보살이 현몽(동아)201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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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1-09 11:39 조회10,315회 댓글0건본문
“내가 있던 고창으로 보내달라” 소장자 바뀔때마다 보살이 현몽
6·25전쟁 당시의 총탄 자국들(흰 점선 안)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강원 속초 신흥사 동종. 불교중앙박물관 제공
1936년 조선에서 온 지장보살상을 손에 넣게 된 일본인은 꿈에 보살의 영(靈)이 수시로 나타나자 곤혹스러웠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병마저 들고 가세가 기울자 보살상을 다른 이에게 넘겼다. 하지만 이번에도 보살은 새 소장자의 꿈에 나타났고 그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1938년 일본 히로시마에 살던 마지막 소장자는 조선으로 연락해 보살상을 가져가 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고향으로 돌아온 보살상이 보물 279호인 고창 선운사 금동지장보살좌상이다.
오늘날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한 문화재들도 근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대부분 저마다 적지 않은 곡절과 사연을 품고 있다. 다음 달 9일까지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특별전 ‘불교 문화재 다시 읽기-되찾은 문화재 되살린 문화재’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개발 열풍 속에서 기구한 사연을 지닌 채 살아남은 불교 문화재 140점을 선보인다.
“절을 불태우려거든 나도 함께 불태우시오.”
1951년 1월 중국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던 국군은 강원 평창 오대산 일대 주요 사찰에 대해 소각 명령을 내린다. 사찰이 중국 및 북한군의 은신처, 혹은 보급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월정사를 태운 군인들이 상원사를 소각하러 찾아왔다. 상원사 한암 스님은 76세의 노구를 이끌고 법당 안에 들어가 “나도 불태우라”며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군인들은 전각 문짝을 뜯어 불태우고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한암 스님이 아니었으면 국보 36호 상원사 동종과 국보 221호 문수동자상, 국보 292호 상원사 중창권선문은 지금 우리 곁에 없었을 것이다.
6·25전쟁의 화마를 비켜가지 못한 불운의 문화재도 있다. 대부분이 북한군이 아닌 미군과 국군에 의한 방화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전라도 지역 사찰 83곳이 파괴됐는데 대부분이 빨치산 토벌을 위해 국군과 경찰이 소각한 것이다. 이들의 지휘소나 숙소로 사용되면서 소각을 면한 사찰 문화재도 적지 않은 훼손을 당했다. 강원 속초 신흥사 동종에는 6·25전쟁 당시의 총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문화재 도난 사건은 요즘에도 일어난다. 2007년 3월 서울 보문사에 있던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목조보현보살좌상이 사라졌다. 다행히 도난 과정이 폐쇄회로(CC)TV에 찍혀 범인을 잡을 수 있었고 유물도 되찾았다. 하지만 복장유물(腹藏遺物·불상 안에 넣은 불경 등 문화재)을 넣는 통인 후령통(候鈴筒)은 범행 후 악몽에 시달리던 범인이 불태워버리고 말았다.
불교중앙박물관장인 흥선 스님은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100년간 우리 문화유산이 걸어온 길과 온갖 시련 속에서도 문화재를 지키고 가꾸며 되찾고 되살리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리 문화유산의 어제뿐 아니라 오늘과 내일을 가늠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채널A 영상] 험난한 세월 헤쳐온 ‘문화재 이야기’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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