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한국땅? 일본땅? ’, ‘조선족은 한국인일까? 중국인일까?’, ‘제사상은 홍동백서(紅東白西)가 맞을까, 조율이시(棗栗梨枾)가 맞을까?’ 그 진실이 궁금하다. 선사시대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구한 역사 속엔 수많은 물음표가 존재한다. 모호함만 가득한 궁금증, 어딜가도 속 시원하게 가르쳐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직접 맛보며 역사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인기다. ‘오감만족’ 역사교육 을 시켜준다는 양주문화원 역사문화대학이 바로 그것. 지난 8일 역사문화대학 수업을 몰래(?) 청강해 해봤다.
# 중·노년 男女 역사에 빠지다 양주문화원 강의실에 들어서니 어린 학생은 없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조부모님들이 앉아 있다. 강의실 뒤쪽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듣고 있자니 교수와 나이 많은 학생들은 서로 거침없이 질문을 주고 받는다. 양주 역사와 우리나라 주요 지역 역사를 배우는 1학년, 백제·고구려·신라를 아우르는 2학년을 거쳐 조선시대와 대한제국시대를 배우는 이들이 바로 3학년 졸업반 학생이었던 것.
추석 이후 첫 수업인 만큼 ‘제례와 효도’라는 주제로 특강이 진행됐다. 종손, 종부가 어떻게 결정되는지, 제사는 몇 대까지 지내는지, 제사상 차리는 방식은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내용부터 제사와 효도의 관계성까지 강의가 이어졌다. 특히 제사·차례와 관련해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제사상에는 조기를 올린다, 문어를 올린다’, ‘차례는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기 위한 수단이므로 밖에서 외식을 해야 한다, 부모님을 위해 상을 차려야 한다.’ 등 누구든 아는 내용이지만 진짜 정답을 찾지 못했다.
이때 홍정덕 지도교수가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았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해(左脯右?), 어동육서(魚東肉西)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원칙은 조선시대 노론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 세상이 바뀐 만큼 앞으로는 ‘좌치우피(왼쪽은 치킨, 오른쪽은 피자)’ 원칙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교수 말에 심각하게 토론을 하던 학생들은 ‘하하하’, ‘깔깔깔’ 웃기도 했다.
이처럼 40~60대로 이뤄진 역사문화대학 학생들은 학창시절에 배웠던 역사 혹은 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문화를 이곳 역사문화대학에서 다시 한번 배우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교직생활을 했던 오순옥씨(69·여)는 “퇴직을 한 뒤 양주 문화와 잊혀가는 역사를 알기 위해 입학하게 됐다”면서 “뭇 사람은 늙어서 무슨 공부냐 하지만 여러 분야에서 일하시던 분들과 함께 역사를 이해하며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양주 토박이 이성신씨(66)는 “집이 가까워 문화원에서 붓글씨 수업을 듣다가 역사 공부에 참여하게 됐다”며 “60평생 잘못 알고 있었던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를 정확하고 전문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돼서 정말 좋다”고 말했다.
# 역사·문화를 알고 싶다면 그곳에 가라 역사문화대학 수업은 단지 책으로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1학년, 2학년, 3학년이 매주 돌아가며 월요일에는 강의실에서, 수요일은 답사지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곳곳의 유적지를 여행하기도 하지만 ‘수박 겉핥기’ 식에서 그치기가 쉽다. 하지만 이곳 학생들은 이틀 전에 강의실에서 예습하고, 답사를 떠나 교수가 현장에서 유래부터 만들어지게 된 과정까지 설명을 해줘 쉽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1학년과 2학년은 답사 6회로 수업이 이뤄지고, 역사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3학년은 11차례 답사를 간다. 답사지 역시 다양하다. 1학년 때에는 회암사지, 권율장군 묘, 양주관 아지 등 양주 역사 문화지를 시작으로 보은 삼년산성, 충남 서부지역 윤봉길 의사 생가, 경주 석굴암, 파주 용미리 석불입상, 수원 행궁 등 우리나라 주요 유적지를 둘러본다.
2학년은 공주·부여 등 백제의 고도와 월정사 등 신라의 흔적들을, 3학년은 의정부, 강원 영월, 충북 단양 등 국내 유적지와 더불어 오사카, 교토, 나라, 아스카 등 일본 관서지방의 역사 문화탐방을 한다. 답사지에서 유적을 보고, 듣고, 만져보고, 그곳에 깃들여진 역사의 향기와 지역 전통음식 맛보기까지 현장 수업에서 모두 경험할 수 있어 학생들의 이해도와 만족도가 높다.
학생대표 장이근(55)씨는 “수업 내용, 인터넷 검색 등 역사에 대한 간접적 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현장에 직접 나가 입체적으로 배우니까 가슴에 와 닿고 감회가 새롭다”며 “답사와 함께 사람들과 교류를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전했다.
6년째 역사문화대학을 이끌고 있는 홍정덕 교수는 “학점을 따려는 어린 대학생들과 달리 자기가 역사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참가해 열의가 대단하다”며 “시험은 없지만 답사를 다녀와서 보고서를 쓰면 개개인의 생각을 뚜렷하게 잘 나타낸다”고 밝혔다.
# 양주 시민들의 뜻으로 만들어진 ‘역사문화대학’ 어렵다던 역사를 쉽게 배울 수 있는 역사문화대학은 누가 만들었을까. 지난 2001년 문화원에서 민요, 서예를 배우던 양주지역 여성지도자들이 양주를 위해 마음을 한 데 모아 개설했다. 이들끼리 유적지를 탐방하며 역사에 대한 배움을 필요로 했고, 많은 지역민과 역사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대학을 만드는 발판이 됐다.
여성들로만 이뤄졌던 대학은 2009년부터 남녀 공학으로 바뀌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 초 12기 모집에는 정원(40명)을 배로 넘는 80여명이 지원을 해 문화원 관계자들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결국 올해 처음으로 2개 반을 구성하고 홍 교수와 함께 한순자 조교수가 수업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특히 역사문화대학 1기 졸업생인 한순자씨가 조교수를 맡아 학생들에게도 본보기가 되고 있다.
또 역사문화대학을 졸업한 이들에게 양주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알리는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이 우선적으로 주어짐에 따라 현재 15명이 양주의 사라져가는 역사문화유적을 지키고 알리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박성복 양주문화원장은 “참여하시는 분 대부분 퇴직을 하고 노후를 즐기려고 이 곳을 찾는다”며 “그분들이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외적으로 역사전통을 홍보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어 역사문화대학을 양주문화원의 전통으로 이어가고 싶다”고 밝혔다.
다만, 매년 역사문화대학에 대한 양주시민의 사랑이 커지고 있지만 11년째 똑같은 열악한 환경이 양주문화원 역사대학에 아쉬움이 남는다.
박 원장은 “양주문화원 부설 역사문화대학은 시민들을 위해 존재한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을 문화관광해설사로 육성할 수 있도록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장혜준기자 wshj222@kyeongg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