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속 보물 찾기-제84호ㆍ제87호] “온화한 보살좌상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을 듯”(천지일보)2012.08.10 > 언론에 비친 월정사

검색하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소통Odae mountain Woljeongsa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언론에 비친 월정사

언론에 비친 월정사

[보물 속 보물 찾기-제84호ㆍ제87호] “온화한 보살좌상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을 듯”(천지일보)2012.08.1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8-11 10:46 조회10,770회 댓글0건

본문

[보물 속 보물 찾기-제84호ㆍ제87호] “온화한 보살좌상의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을 듯”
2012년 08월 10일 (금) 11:09:22 박선혜 기자 muse@newscj.com
   
▲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삼층석탑을 향해 공양하고 있다(왼쪽). 삼층석탑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범일국사의 신복사 창건 설화 전해져
고려 전기 유행한 지방 석탑양식 보여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강원도 강릉시 내곡동 403-2번지에 자리한 신복사 절터에는 삼층석탑(보물 제87호)과 석조보살좌상(보물 제84호)만이 덩그러니 남아 넓은 터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넓은 절터만 있을 뿐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낮은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던 신복사는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12년(850년)에 범일국사(梵日國師)가 처음 세웠다.

현재 이곳에는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삼층석탑과 이를 향해 공양하는 모습의 석조보살좌상이 있다.

범일국사와 신복사, 창건 설화

   
▲ 신복사가 있었던 흔적으로, 기둥 받침돌로 추정된다. ⓒ천지일보(뉴스천지)
통일신라시대에 범일국사가 세운 신복사에는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의 한 처녀가 우물에 비친 햇빛을 보고 그 물을 마셨는데, 곧 아이를 낳게 됐다.

집안사람들은 처녀가 낳은 아이는 키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아이를 내다 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아이의 주위로 기이한 빛이 맴돌아 이를 괴이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이름을 범(梵)이라 짓고 길렀다. 이후 출가한 범이 승려가 된 후 고향에 돌아와 신복사(神福寺)와 굴산사(掘山寺)를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기록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석탑 향해 공양하는 석조보살좌상

신복사 절터에 들어서면 삼층석탑을 향해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고 간절한 마음으로 공양하고 있는 보살좌상이 눈에 띈다.

국가 지정 보물 제84호인 강릉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石造菩薩坐像)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다.

보살좌상은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왼쪽 다리를 구부려 세워 왼쪽 팔꿈치를 받치며 공양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또 머리 위에는 원통 모양의 높은 관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팔각형의 천개(天蓋)가 올려져 있다.

   
▲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이 삼층석탑을 향해 공양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천개는 불상을 눈과 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특히 고려시대 야외에 불상이나 보살상을 많이 만들면서 유행했다. 고려시대에는 사각형의 천개가 일반적으로, 팔각형은 드물게 나타난다. 그래서 이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은 연구 가치가 높은 우리나라 보물 문화재로 꼽힌다.

보살좌상 머리 위에 있는 원통형의 높은 관(冠), 둥글고 풍만한 얼굴, 짧은 인중, 미소 짓는 입은 복스럽게 보인다. 또 관 밑으로 드러난 머리카락은 어깨너머로 길게 늘어져 있으며, 양어깨에서부터 걸쳐진 옷자락은 몸의 굴곡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현돼 보살상의 사실성을 더해준다. 팔찌, 목걸이 등도 굵은 띠처럼 묘사됐다.

이와 같은 표현은 고려시대 초기 강원도 지역에서 유행하던 특징이다. 이러한 특징은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제124호),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뚜렷한 고려 전기 석탑 양식 보여

석조보살좌상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바로 보물 제87호인 신복사지 삼층석탑(三層石塔)이다. 삼층석탑은 이중기단 위에 3층의 탑 몸체부를 세운 형식이다.

삼층석탑의 기단부는 지대석 윗면에 연꽃무늬를 돌렸고, 아래층 기단면석에는 안상을 3개씩 새겼다.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 탑신의 각 층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겨 얹어 놓았다. 1층의 몸돌에 이를 안치하는 방인 감실(龕室)모양의 조각이 있다.

탑의 기단과 몸돌의 각 층 밑에는 널돌로 괴임을 넣었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시대에 자주 보이는 모습 중 하나이다. 또 아래층 기단에 안상이 새겨진 것이나, 지붕돌 밑면의 받침수가 3단으로 돼 있는 점도 고려 초기의 석탑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꼭대기에는 드물게 머리장식이 온전히 남아 있으며, 탑은 전체적으로 각 부분의 높이에 비해 폭이 넓어 안정감을 준다.

용어설명
-지대석(地臺石): 기초부에 까는 받침돌
-기단면석(基壇面石): 탑 기단의 받침돌과 덮개돌 사이에 막아 댄 넓은 돌
-안상(眼象): 탑 면석에 팔면의 오금곡선으로 안쪽을 파낸 모양
-상륜부(相輪部): 탑의 맨 위에 놓인 장식

   
▲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과 삼층석탑 전경. ⓒ천지일보(뉴스천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