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법보신문) 2012.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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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7-24 09:57 조회11,215회 댓글0건본문
- 前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
- ‘참 생명’에 눈뜨지 못한다면 살아도 영가와 다를 바 없다
- 2012.07.23 15:55 입력 | 2012.07.23 16:00 수정
전생의 선망부모·자손도
동시대를 함께 사는 이웃
자성자리 바르게 본다면
바로 그 순간 천도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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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을 앞두고 많은 불자들이 선망부모천도재를 봉행하고 계십니다. 백중기도는 돌아가신 선망부모를 위해 부처님법에 의지해 천도해드리는 의식입니다. 많은 불자들이 ‘49재를 잘 지내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얼른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사찰에서 왜 거듭 천도재를 지내는지 질문들을 많이 하십니다.
우리는 이전 생에 수없이 죽고 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어느 생에선가 여러분의 자손이었던 이가 지금 이 자리에, 오늘 이 순간 법왕루에서 천도재를 봉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미 태어나서 여여하게 현실을 살아가고 있더라도 말입니다. 다 같이 이 사회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남아있는 자손들이 선망부모를 위해 천도재를 지내고 마음으로 기도를 올린다면 그 간절한 마음과 기도의 공덕이 선망부모에게, 지금의 나와 내 이웃에게 전해지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어떤 이는 무슨 일을 하던 술술 잘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노력한 것 보다 훨씬 순조롭게 일이 풀리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면 우리의 자손들이 어디선가 선망부모들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부처님과의 인연을 통해 이러한 이치를 안 이상 이미 돌아가신지 수십년 되었다하더라도 그분들을 위해 작은 정성을 들이는 것은 자손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 할 것입니다. 또 그 공덕으로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선망부모의 삶이 순조롭고 평안해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천도재라는 것은 결국 나와 우리 이웃을 위한 기도이고 공덕의 회향임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우리도 따지고 보면 모두 영가입니다. 전생에 죽은 것을 생각하면 우리 모두가 영가입니다. 우리가 모신 위패의 선망부모나,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은 영가나, 지금 살아있는 우리나 모두 같은 영가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영가인 세계에서 진정 참 생명을 구가하며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천도의 길은 과연 무엇인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의 여러 갈래길 가운데 평탄하고 잘 닦여진 천도의 길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도 한국의 대표선사로 추앙받고 있는 성철 스님께서 출가 전 동서고금의 많은 책을 보시다 ‘채근담’을 만났습니다. ‘채근담’을 보면 ‘아유일권경 불인지묵성 전개무일자 상방대광명(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한 권의 경이 있다. 그 경전은 종이와 먹으로 된 경전이 아니니 펼쳐보아도 문자 하나 없지만 항상 큰 광명을 내고 있다.’ 성철 스님께서는 이 구절을 보시고는 한권의 경, 진정 참 생명이고 우리의 주인공이며 자성자리이며 늘 광명을 내고 살아 움직이는 진정한 참 생명을 찾아 출가하시고 정진하셨다고 합니다. 출가 인연이 바로 이 한 구절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진정한 참 생명의 경이 있습니다. 그 참 생명의 경전, 늘 큰 광명을 내고 있는, 그리고 육근을 통해 온갖 신통묘용을 발휘하고 있는 그 경전을 우리가 제대로 알고 배워 거기에 눈을 떠야만 우리는 진정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영가가 아닙니다. 그 참 생명, 개개인이 갖고 있는 그 한 권의 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느낌이 없고, 눈을 뜨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천도 받지 못한 영가로 있을 뿐입니다. 진정 영가를 천도하는 길은 바로 그 경전, 그 참 생명을 바로 보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천도하려는 영가를 바르게 천도하는, 탄탄대로로 천도하는, 그리고 우리 자신을 천도하는 길입니다.
불가에서는 ‘부처님 앞에 와서 절 한 번 한 것으로 이미 불도를 마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부처님 앞에서 손 한 번 번쩍 든 것으로 이미 불도를 마쳤다’고도 합니다. 부처님께 꽃 한 송이 공양 올리거나, 어린아이가 모래로 탑을 짓기만 해도 그것으로 모두 성불하였다고도 합니다. 그것은 그 마음이 바로 참 생명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속에 바로 이 한 권의 경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근기의 차이가 있습니다. 구걸하는 거지에게 “목탁을 치면서 ‘나무아미타불’ 세 번만 염하면 시줏돈을 주겠다”고 했으나 그 거지는 “내가 그걸 어떻게 하느냐” 며 염하지 않아 결국 시줏돈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참 생명의 경전이 있다, 여러분 스스로가 주인공의 자리라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것을 순수하게 믿고 따르지 못한다면 누구도 대신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이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여러분 안에 그 한 권의 경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의 작용입니다. 그것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명확하게 안다면 그 순간 우리는 이미 천도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수천, 수만 번 천도재를 지낸다 해도 천도재가 아닙니다. 천도재 지내는 우리 또한 영가에 불과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참 사람의 노릇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0을 천개, 만개 나열해도 그 앞에 1이나 2와 같은 실수(實數)가 들어서지 않으면 0은 0일 뿐인 것과 같습니다. 수백, 수천 개의 0은 그저 0일 뿐이지만 그 앞에 실수 하나만 놓으면 그 많은 0은 전부 생명을 발휘합니다. 그 실수가 무엇이겠습니까. 실다운 숫자, 그것이 참 생명입니다. 우리의 삶도 그 실다운 숫자가 우리의 삶에 자리하지 못한다면 삶은 헛것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것을 우리에게 깨우쳐주셨습니다. 참 생명에 대한 바른 이해와 눈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장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천도를 마친 것이고 그것이 곧 바로 성불입니다.
참선, 염불, 다라니 등 각자 체질에 맞고 성향에 맞는 방편을 이용해 참 생명, 참 사람, 항상 대광명을 내고 있는 그것에 눈뜨시길 바랍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이 법문은 7월15일 봉은사 법왕루서 봉행된 백중 기도 입재에서 전 조계종 교육원장 무비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무비 스님은
1958년 부산 범어사에서 여환 스님을 은사로 출가, 해인강원을 졸업하고 월정사 탄허 스님의 법맥을 이은 대갱백이다. 해인사 통도사 등 선원에서 10여 년간 정진했다. 범어사승가대학과 통도사승가대학 학장(강주) 및 종립승가대학원장, 조계종 교육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예불문’‘반야심경’‘금강경강의’‘화엄경강의’‘지장경강의’ 등 다수가 있다.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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