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여행]전나무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가을 낭만 여행(레이디경향)2012.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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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0-23 10:44 조회10,458회 댓글0건본문
[기차 여행]전나무 숲과 바다가 어우러진 가을 낭만 여행 | ||||||||||||||||||||||
어느덧 하늘이 꽤 높아졌다. 여름 내내 뜨거운 햇살과 다투던 녹음이 슬며시 바래가고,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제법 서늘한 가을 냄새를 품었다. 선선한 공기와 청명한 햇살이 가득한 가을은 출렁이는 바람을 따라 어디로든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계절이다. 한여름 뜨겁게 들끓었던 마음과 일상을 차곡차곡 개어 내려놓고 기차에 몸을 실어보자. 칙칙폭폭 구부러진 레일 위를 따라 고요하게 가을이 번진다.
살아 있는 자연에 취해 걷고 또 걷는_전나무숲길
청량리역을 출발한 기차는 1시간 30분가량을 부지런히 달려 원주역에 멈춰 섰다. 이제부터는 전용 버스로 이동할 차례. 부안 내소사, 남양주 광릉수목원과 더불어 한국 3대 전나무 숲으로 손꼽히는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이 목적지다. 우리나라에서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넓고 산세가 깊은 오대산은 우람하고 풍성한 나무들이 잘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각양각색의 나무들과 그 밑에 자리한 덩굴식물들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곳에 왔으면 우선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전나무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봐야 한다. 에코가이드의 해설에 따라 숲 곳곳을 둘러봐도 좋고,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발걸음을 옮기기만 해도 괜찮다. 그저 가만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완벽히 충만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찰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 중 첫 번째 문인 일주문에서 시작된 전나무숲길은 금강교까지 이어진다. 1km 남짓한 길 양쪽을 따라 평균 수령 80년이 넘는 1천7백여 그루의 전나무들이 늘어서 울창한 숲을 이룬다. 햇볕이 뜨거운 한낮임에도 서늘한 기운이 느껴질 정도로 빽빽하게 솟아 있는 전나무들 덕분에 마치 다른 세상 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신발을 벗고 폭신한 황톳길을 맨발로 사뿐사뿐 걸어봐도 좋다. 맨발에서 느껴지는 촉촉한 감촉과 온몸을 감싸는 정갈한 숲의 기운이 몸과 마음 구석구석 묻어 있는 긴장과 스트레스를 사라지게 한다. 전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을 만끽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절로 맑고 상쾌해짐을 느낄 수 있다. 번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자연의 위로에 취해볼 수 있는 이 길은 왕복 40여 분이 소요된다.
청량감 가득한 전나무숲길 끝에는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월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창건된 월정사는 역사적 의미와 고즈넉한 분위기 덕분에 사시사철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경내를 속속 둘러보지 않더라도 대웅전 앞마당에 자리한 팔각구층석탑 앞에서는 잠시 걸음을 멈춰보자.
오대산의 맑은 기운을 듬뿍 간직한 채로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싹싹 비워 허기를 달랜 뒤 다시 길을 나섰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강릉역에는 알록달록 예쁜 옷을 입은 바다 열차가 떠날 채비를 마치고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릉, 동해, 삼척을 잇는 58km 동해안 해안선을 달리는 바다 열차는 전 좌석을 측면 방향으로 배치하고 창문도 일반 열차보다 훨씬 크게 만들어 동해의 넘실거리는 파도와 드넓은 백사장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특별 열차다. 특별 좌석으로 구성된 특실 1호차는 30석 전 좌석이 바다를 바라보게 돼 있어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멋진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커플을 위한 극장식 좌석 컨셉트로 구성된 특실 2호차는 연인과 함께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하다. 총 42석이 배치된 3호차는 동아리 MT나 단체 여행을 하는 이들의 선호가 높다. 1호차와 2호차 사이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프러포즈실이 마련돼 있는데 와인, 초콜릿, 포토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된다.
바다와 거의 맞붙어 있는 정동진역에서는 약 5분간 정차해 카메라에 시간을 붙잡아 담아보기도 했다. 드라마 ‘모래시계’를 떠올리며 정동진역에 하차한 승객들은 일행끼리 모여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여기저기서 바쁘게 셔터를 누르는 소리가 파도 소리와 함께 어우러졌다.
추암역에 도착한 바다 열차는 ‘오대산 월정사와 낭만의 바다 열차’ 여행객들을 내려놓고 계속해서 제 갈 길을 떠났다. 역사도 역무원도 없는 추암역은 애국가 배경화면에 등장하는 촛대바위가 서 있는 곳. 걸어서 5분 정도면 넘실대는 파도 사이에서 늠름하게 서 있는 촛대바위를 만날 수 있다. 동해와 촛대바위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 바로 그 유명한 애국가의 일출 장면이다. 촛대바위 주변으로는 바다에서 우뚝 솟아 오른 기암괴석들이 절경을 연출해낸다.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답답했던 가슴 속을 시원하게 뚫어줬다.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추암해변을 산책하며 그동안 쌓였던 피로와 걱정들을 말끔히 흘려보내는 것도 좋겠다.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 원주역으로 향하는 버스 안은 여행에 대한 행복감과 아쉬움으로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원주역 근처에서 자유롭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벌써 차창 밖으로는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한결 맑아진 마음으로 도착한 서울에는 오늘따라 환한 달이 떠 있었다.
■글 / 이연우 기자 ■사진 / 박동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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