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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하나로 비인기 장르 '서각' 불모지 개척한 신지식인(충청투데이)2012.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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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1-05 08:32 조회9,7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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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하나로 비인기 장르 '서각' 불모지 개척한 신지식인
[김승한이 만난 사람] 정지완 (한국전통서각연구원장) 서각(書刻) 명인 행정학 전공하면서 늘 우리것 관심, 서각 진수 보여주려 30여년 한우물 서각 대중화앞장 명인의 반열 올라
2012년 11월 05일 (월) 이호창 기자 hclee@cctoday.co.kr

서각(書刻)은 서예와 회화 조각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그럼에도 비인기 장르로 취급돼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했다. 팔만대장경은 알아도 누가 어떻게 제작했는지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렇게 어느 누구도 관심 있게 봐주지 않던 서각을 양지로 끌어낸 이가 있다. 한국전통서각연구원 정지완 원장이 바로 주인공이다. 그는 서각을 하기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평소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많던 차에 우연한 기회에 서각을 접한 뒤 평생의 업(業)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피나는 노력 끝에 이제는 명인의 반열에 올랐다. 금강산 신계사의 현판도 그의 작품이다. 보령시 남포면의 공방에서 직접 제작해 트럭으로 날랐다고 한다. 그는 서각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배우겠다는 사람에게는 조건 없이 기술을 전수해준다. 1주일 정도 배우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를 남포면 공방에서 만났다.

   
▲ 한국전통서각연구원 진산 정지완 명인은 비인기 장르로 어느 누구도 관심있게 봐주지 않았던 서각을 양지로 끌어올리며 서각의 대중화에 앞장섰다. 정지완 명인이 서각도를 이용한 전통방법으로 팔만대장경 반야심경 경판을 만들고 있다. 장수영 기자 furnhanul@cctoday.co.kr

-서각과 인연을 맺은 지 얼마나 됐나.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할 때까지만 해도 서각이 평생의 업(業)이 될 줄은 몰랐다. 서각을 한지 벌써 28년 정도 된 것 같다."

-서각이라고 하면 단순히 절이나 정자 등에 거는 문패 정도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서각에 대해 설명을 한다면.

"나무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문 위나 벽 또는 기둥 등에 매다는 널조각을 말한다. 세분화 하자면 궁궐이나 전각에 큰 글씨로 새겨 문 위에 가로로 다는 편액류, 복을 기원하고 문루를 장식하기 위한 대련이나 명구를 기둥에 쓰거나 새겨서 거는 주련이 있다."

-편액이나 주련을 다는 의미가 있겠다.

"편액은 전각의 성격을 표방하는 것이며 주련은 그 사상의 중심 내용을 함축한 시문이다. 말하자면 편액류 현판과 주련류는 사물의 겉과 속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좋은 문장을 선별하고 많은 손길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각은 다른 예술과도 차별화된 작업이다."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하지도 않았는데(그는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어떻게 서각을 접하게 됐나.

"행정학을 전공하면서도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은 늘 있었다. 그러면서 문화·예술인들과 교류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각이란 매력에 빠졌다. 내가 서각을 시작할 때는 정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직장이란 곳에 취직 한 번 안 해보고 여태껏 서각 한우물만 파고 있다. 작은아버님이 서각을 하셨다. 크면서 어깨 너머로 본 영향도 있을 것이다."

-서각의 매력을 꼽자면.

"정직하고 원초적인 예술이라는 한마디로 정의하고 싶다. 정신 집중을 하지 않는다면 몇 십 년 나무를 두드린다 하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육체적인 노동력과 정직함만 있다면 시대의 획을 그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어느 정도 하니 길이 보이던가.

"결혼하기 전까지 인정을 받지 못했다. 경제적 상황도 여의치 않아 지하실, 창고 등을 써가며 여섯 번 정도 이사를 다녔다. 그러다 1999년 중앙승가대학교에 서각 과목을 개설해 출강했다. 국내·외 서각을 연구하며 내공을 쌓았다."

-작품 활동을 쭉 하다보면 침체기도 있을 테고 작품이 뜻대로 잘 나오는 시기도 있을 것이다.

"웬만큼 기능만 익힌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두각을 나타내려면 서예와 회화, 조각공예 등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종합예술가가 돼야 한다. 안목이 가장 중요하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도 끊임없이 교류해야 한다."

-평생의 업으로 할 만큼 가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길을 택하지 않았나.

"그렇다. 서각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오묘함이 담겨있다. 연구해야할 부분이 무궁무진하다. 내가 70~80살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30년 정도 남았다. 1년에 좋은 작품 1개를 완성한다고 치면 최대 30여개 밖에 만들 수 없다. 그동안 갈고 닦은 것들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내가 원하는 작업에 몰두하겠다. 정지완의 작품은 연구가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글씨를 쓴 사람은 기억을 해도 그 글씨를 바탕으로 조각을 한 서각인은 대접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그래서 낙관을 찍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글 쓴 사람의 이름만 볼뿐, 서각을 누가 했는지 관심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요즘엔 좀 나아지긴 했으나 안타까운 부분이다."

-국내에 서각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

"다른 일과 병행해서 하는 분들은 많을지 몰라도 전업작가라 한다면 한 지역(도 단위)에 2~3명 정도 될까싶다."

-일가를 이룬 예술인들을 보면 타고난 재주가 있든지 아니면 피땀을 흘린 노력이 그 이면에 있다. 어느 쪽인가.

"기능은 자기 의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직도 나는 서각이라는 분야에 대해 공부해야할 부분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열정이 없으면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계속 공부하고 노력할 것이다."

-대학교에서 강의도 했다는데.

"대학교에 서각이란 전공과목이 없다는 게 아쉽다. 따라서 서각을 전공으로 하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다.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에서 2학점짜리 강의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처음이다 보니 학생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학교에서 서각을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실습실을 마련해줬다. 중앙승가대학에서도 서각을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는 부여전통문화학교 등 주요 대학에서 서각 과목을 개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일본에도 서각이 있지 않은가.

"일본과 중국에도 서각 작품이 있지만 우리의 서각이 으뜸이다. 일본과 중국은 작품을 만드는 각법(刻法) 자체가 다르다. 우리는 창과 칼을 쓴다면 일본은 끌을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정교함이 떨어진다. 팔만대장경을 일본인들이 그토록 탐낸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편액은 문화재나 건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편액은 그 문화재의 품격을 훼손시킬 것이다.

"건물엔 비용을 많이 들이면서 정작 편액이나 주련 등엔 소홀히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서각을 보는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다행이다."

-작품마다 다르겠지만 한 점을 완성하는 데는 얼마나 걸리나.

"크기, 내용 등에 따라 몇 개월씩 걸리는 작품도 있다."

-나무를 고르는 작업부터 완성작이 나올 때까지의 과정을 설명하자면.

"우선 잘 건조된 판자를 크기에 알맞게 먹줄을 놓아 재단하고 대패질을 한다. 다듬어진 판자위에 새길 글자를 붙인 후 글자를 새긴다."

-글씨를 있는 그대로 조각하는지 아니면 작가가 크기나 모양 등에 변형을 줄 수 있는지도 궁금하다.

"글자의 조정은 당연히 필요하다. 나무의 형상 등에 따라 재편집, 축소, 확대 작업이 생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무 선택이 중요하다."

-그렇다면 좋은 나무를 많이 보유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언제 어떤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니 나무 수집은 필수다. 나무 욕심이 많다는 얘기도 듣는다. 길가에 버려진 나무도 예사로 보지 않는다."

-작업할 때 혼신의 힘을 기울이는 작가로 이름이 나있다.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예술인들이 어디 있겠나. 누구든 자신이 전문가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작업할 것이다. 열정을 바치다보면 밤을 새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30년 가까이 했으니 작품도 많이 있겠다.

"열심히 해왔다. 전국 주요 사찰이나 박물관 등에 작품이 많이 걸려있는 편이다."(그는 성철스님 생가 겁외사,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중흥정, 오대산 월정사, 매헌 윤봉길기념관, 안동하회마을 북촌유거, 국립수목원 현판 등 수 백점을 제작했다.)

-금강산 신계사의 현판도 손수 만들었다고 들었다.

"서각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고 싶었을 것이다. 신계사의 일주문 대웅보전 극락전 등 현판과 주련 전체를 전통기법으로 손수 제작해 설치까지 완료했다. 민족의 염원인 통일불사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조계종 총무원에서 그를 적임자로 선택해 작업을 맡겼다고 한다.)

-실례지만 작품 가격을 말해줄 수 있나.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면 보시하는 마음으로 제작을 한다. 그러다보니 나무 값도 안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서각을 하는 진정한 의미라 본다."

-후배양성은 하고 있는가.

"일반인들도 꽤 있다. 수강료를 받지 않고 전수해 준다. 제자들에게 주변 사람들을 꼭 데려오라고 권유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배우면 더 좋지 않겠는가. 서각은 일주일 정도 배우면 누구든지 기능은 익힌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려다 미술치료를 하고 있다. 아이들의 멘토 역할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에 내 작품이 걸려있다면 뿌듯할 것 같다.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나.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후대들이 내 작품을 보고 최고로 인정할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만들 것이다. 그런 날을 꿈꾸고 있다."

-혹시 대를 잇겠다는 자녀는 있는가.

"아이들의 선택이 중요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후회 없이 선택한다면 물려줄 수도 있다. 내가 힘들게 작업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그들이 이 일을 하려할지 모르겠다."

-정부 등 관계기관이 이런 것은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있나.

"우리 주변에는 100년 이상 된 서각 문화재가 많다. 이런 작품들은 햇빛이나 비바람에 노출돼 훼손될 확률이 높다. 현판을 너무 많은 분들이 홀대를 한다. 지금이라도 서각 작품을 조사해 훼손되기 전에 탁본이라도 떠놓고 보존처리를 해놔야 한다. 한번 타이밍을 놓쳐 버리면 복원이 힘들기 때문이다."

-앞으로 소망이나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서각 박물관을 만들고 싶다. 평생 업으로 해온 자료를 모아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참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자료가 있어야 서각인들이 연구를 할 게 아닌가. 또 하나는 우리 지역을 서각의 중심지로 육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논설실장> 정리=이호창 기자 hclee@cctoday.co.kr
 

프로필 및 경력

△1992년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1996년 한국서각협회 이사 △1999년~현재 중앙승가대학교 출강 △2006년 한국예술문화협회 부회장 △2008년 ㈔한국서각협회 부이사장 △2010년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공예작법(서각) 강사 △대한민국 신지식인 선정 △충남도 전통문화가정 인증(전통서각) △금강산 신계사 외 다수 현판, 주련 제작 △국회의장상, 문화관광부장관상, 법제처장상, 통일부장관상, 한국예술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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