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후면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선거를 앞두고 옛날 오대산 월정사 조실 탄허(呑虛)스님께서 강조하셨던 말씀을 생각해본다.
첫째는 국가를 통치하는 철학과 기강의 수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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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행 스님
월정사 부주지 |
정치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은 국민을 위한 철학과 기강의 확립이다. 정치의 기강이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도둑이 판을 치고, 정치는 쇠파리 같은 인간들의 독무대가 되고 말 것이다. 기강이란 역사의식과 국민을 위한 철학, 인간을 존중하는 종교적 믿음이 있을 때 세워진다. 정치만을 위한 정치는 백해무익하다. 진실로 인간을 위한 정치일 때만 그 기강이 바로 세워질 수 있다. 흔히 정치인이 되면 세상 전부를 얻은 양 호령하는데, 정치인은 나라의 어른이 아니며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심부름꾼이다. 세워진 기강에 따라 철학을 제공하는 사람이며 그 호령은 각계의 지도자, 가정의 부모가 해야 한다. 가정과 같이 서로 위해 주는 관계를 맺도록 정치를 꾸려 간다면 수많은 경찰관과 판·검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책임정치를 수행하라.
민주정치는 대표의 선출과 함께 선출된 대표가 그를 선출해준 투표자들에게 책임지는 두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선거 때만이 아니라 평상시에도 선출된 통치자가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렇지 않으면 왕을 선출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당선자는 권력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하는 일이며, 이를 주도할 민주적 리더십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현임 정부에 대한 ‘회고적 평가’를 해임으로 하여야 하고, 정당을 바로 세우는 것을 통해 책임정치를 구현하는 일에 헌신하는 봉사자로 대통령 개인의 사유화된 정부가 아니라 정당의 정부를 만드는 일이 오늘의 한국사회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가 되어야 한다.
셋째, 궁민(窮民)을 구제하라.
세계화와 기술 변화의 요인도 있지만 나라는 부자인데 개인이 가난한 주된 이유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경제구조 탓이다. 재벌이 경제생태계를 싹쓸이 하다시피 하고, 정부는 부의 재분배와 복지에 소극적이었다. 정작 개인의 노력만으로 푸어(Poor)를 벗어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집단적 자각이 경제민주화를 불러냈다. 현대경제연구원 조사에서 우리 국민 중 자신을 저소득층이라고 답한 비율이 50%에 이르고, 98%가 계층 상승이 어려울 것이란 비관적 답변을 했다는데 그리 놀랍지 않으며, 이제 궁민(窮民)의 시대가 활짝 열렸으니 수단과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민주화와 국민행복은 궁민에게 ‘세이렌의 유혹’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
넷째로 국민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
1970년대의 급격한 변화와 발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오늘 우리가 겪는 이 고통은 산고의 고통이다. ‘주역’에 보면 한국은 ‘간방(艮方)’이다. ‘간(艮)은 갓난아기요, 결실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때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겪어야 아기를 낳듯이 우리나라 1980년대 이전은 고통이 있을 수밖에 없는 희망찬 아픔이었다. 이러한 경험과 경륜은 사안(私案)보다는 공안(公案)을 추진해야 한다. 특히, 늙은이의 말과 젊은이의 말과 어린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되 그 중, 젊은이의 말을 좀 더 중시해야 한다. 돈벌이하는 기업가의 건의나 주장보다는 밤새워 고민하고 국가의 미래를 주시하는 학자, 철학자 그리고 종교가의 말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다섯째로 세대정책을 세우라.
조각나고 활력을 상실한 한국의 모습을 우리는 세대간의 긴장에서 더 극적으로는 갈등에서 볼 수 있다. 세대정책은 여러 세대의 형평성 특히, 자원 배분의 형평성을 하나의 틀에서 고려하는 것이다. 세대 정책은 특정 세대를 위해 다른 세대가 희생되는 것을 막아야하며, 국가는 세대 간의 관계를 단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곧, 아동의 양육과 교육을 책임지는 부모를 직접 돕는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여야 하며, 세대 정책은 지금껏 인류가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을 정책으로 풀어 낸 것이다. 한 세대의 생존은 다른 세대와의 협력과 배려, 후원과 돌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세대 정책은 세대갈등으로 부서지고 초라해진 우리 사회를 뭉치게 하고 활력을 되살릴 출발점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