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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전나무가 묻는다, 뭐가 그리 바쁘냐고…(헤럴드)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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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1-24 15:43 조회9,72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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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된 전나무가 묻는다, 뭐가 그리 바쁘냐고…

2013-01-24 11:43

[평창=글ㆍ사진 박동미 기자] “왜 그렇게 서두르세요. 즐기면서 천천히 만드시지….”

안쓰러워하는 목소리에 손을 멈췄다. 봉오리를 오므린 연꽃 한 송이가 덩그러니 손 위에 앉았다. 고개를 드니 창밖엔 눈꽃이 흩날린다. ‘아, 연꽃 만들기를 하던 중이었지.’ 고운 색이 입혀진 한지 꽃잎이 방 안에 가득하다. 옆 사람은 이제 잎 한 장을 종이컵에 붙였는데, 내 연꽃은 벌써 꽃잎을 피우려고 한다. “부업 하러 왔느냐”며 일행은 한바탕 웃는다. 몸도, 마음도 쉬어가야 하는데 ‘빨리빨리’에 물든 속세의 습관은 쉽게 버릴 수가 없다.

대관령을 품은 강원도 평창. 오대산(해발 1563m)은 지금 눈에 빠져 있다. ‘천년 사찰’ 월정사(700m)에서 걷기는 시작됐다.

일주문에서 사찰 입구 사천왕문까지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잠시라도 속세를 잊겠노라’ 다짐했지만 쉽지는 않았던 듯싶다. 10분이면 지나는 길. ‘뽀드득뽀드득’ 눈을 지르밟으며 1시간이 넘도록 ‘일부러’ 걸었다. 지난 2006년 태풍에 쓰러졌다는, 수령 500년 된 전나무 둥치 앞에선 온갖 상념이 밀려왔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도 ‘청청’한 전나무 숲의 위용에 감탄사를 남발했다. 눈도, 발도 호강하는 길. 속인은 그저 설경을 즐겼다. 일주문이 세워진 본래 뜻인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것’엔 실패한 것. 배추처럼 쭈글쭈글한 ‘종이 연꽃’이 이를 증명했다.

백두대간 중심축에 위치한 오대산은 부드러운 흙산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강원도 산간지역에 내린 대설 덕에 푸근한 눈산의 형국이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전국을 순례하다가 당나라 오대산과 산세가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길. 일주문에서 사찰 입구 사천왕문까지 10분이면 지나는 길을 1시간이 넘도록‘ 일부러’ 걷는다. 쏟아지는 눈 속에서도‘ 청청’한 전나무 숲의 위용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눈도, 발도 호강하는 길. 속인은 그저 설경을 즐길 뿐이다.

월정사 역시 자장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전나무 숲길과 함께 사찰 내 자리 잡은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ㆍ높이 15.2m)과 석조보살좌상(보물 제139호ㆍ높이 1.8m)이 주요 볼거리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탑은 고려시대 최고의 석탑으로 손꼽힌다. 현재 국내 팔각석탑 중 가장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적으로 날씬하게 위로 솟은 모양에, 윗부분 금동 장식이 기품을 더한다. 갑석(층탑 아랫돌 위에 포개어 얹는 납작한 돌)은 복련(누운 연꽃 모양)이다. 수려한 자태 앞에 서니 ‘후다닥’ 만든 ‘연꽃’이 더욱 볼품없게 느껴진다. 석탑 앞 석조보살좌상은 모조품으로, 진품은 월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월정사 사천왕문을 정면으로 두고, 왼쪽으로는 오대천이 흐른다. 해발 1500m가 넘는 오대산 자락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이지만 지금은 눈 속에 그 모습을 감췄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금강교를 건넌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다리 주변에 병풍을 쳤다. 그래서일까. 해발 600m가 넘는다는데 이 지점만큼은 바람 없이 아늑한 것이 온전히 다른 세상이다.

천년을 지켜온 겨울 산사로는 부족했나. 상원사(1200m)에 이르는 ‘오대산 옛길’까지 걷고 나면 좀 더 고운 연꽃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눈 덮인 오대산을 올려다본다. 왕복 산행은 엄두가 나질 않는다면 월정사 매표소에 주차하고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서 내려오는 걸 권한다. 설산 등정은 예측 불허다. 섣부른 모험은 마음을 더욱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다.

pdm@heraldcorp.com

월정사 템플스테이 연꽃만들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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