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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오대산 지키며 월정사 재건한 만화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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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1-04-07 10:49 조회3,6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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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산의 수행전통을 계승하면서 월정사 도량을 일신한 만화 희찬 스님의 생애와 사상을 조명하는 세미나가 열린다.

 제4교구본사 월정사(주지 정념스님)와 사단법인 한국불교학회(회장 고영섭, 동국대 교수)는 
4월 16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오대산을 지켜낸 만화 희찬’이란 주제의 학술대회를 월정사 성보박물관 세미나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행사의 정식 명칭은 ‘유네스코 복합유산 등재를 위한 만화 희찬 선사 탄생 100년 기념 춘계특별학술대회’이다. 

 학술대회는 △1부 ‘만화선사 탄생 100년 기념 – 전후 오대산의 등불이었던 만화’ △2부 ‘ 유네스코 복합유산 추진을 위한 연구’로 나누어 진행된다. 김은영 한국불교학회 재정이사가 사회를 보는 1부에서는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의 ‘만화 희찬의 생애 정리’와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의 ‘만화의 적광전 중창과 상량문 분석’ 등에 대한 발표와 논평이 이어진다. 



 최원섭 한국불교학회 대외협력이사가 사회를 맡은 2부에서는 중앙승가대 불교학과 교수 자현스님의 ‘신효의 월정사 수조(修造)와 사명(寺名)의 특수성 검토’와 민영태 동국대 불교학과 외래교수의 ‘오대산의 생태적 특징과 자연유산적 가치’ 등에 대한 발표와 논평이 이뤄진다. 1,2부가 끝난 뒤에는 고영섭 한국불교학회장을 좌장으로 종합토론이 진행된다. 

 고영섭 한국불교학회장은 “그동안 조선시대와 대한시대 불교연구의 일환으로 경허성우, 영호정호, 한암중원, 탄허택성, 퇴옹성철, 동곡일타 스님 등에 대한 학술대회를 개최해 왔다”면서 “금년에는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및 산내 암자를 지켜낸 만화 희찬 선사의 탄신 100년을 맞아 마련했다”고 세미나 취지를 설명했다.

만화희찬 스님은 ?
한암 탄허 대종사 회상에서 수행 정진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월정사 중창불사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않고 한암대종사를 시봉한 만화스님은 한암, 탄허 스님의 수행가풍을 계승해 오롯이 정진했다. 
사진은 만화스님 진영.

 법명은 희찬(喜贊, 喜燦), 법호는 만화(萬化)이다. 1922년 7월 1일 평남 덕천군 풍덕면 풍덕리 351번지에서 인동 장씨인 부친 장원국(張沅國) 선생과 모친 주이룡(朱二龍) 여사의 4형제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속명은 장인찬(張寅燦)이다.

 마을에서 서당 공부를 하고 풍덕 간이학교(簡易學校)를 졸업했다. 1938년 오대산 상원사에서 출가해 사미계를 받았다. 은사는 탄허(呑虛)스님. 같은해 한암(漢岩)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한암대종사와 탄허대종사 회상에서 수행정진했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가지 않고 상원사에서 노사인 한암스님을 시봉했다. 이때 국군에 의해 오대산 월정사가 전소됐다. 상원사 주지(1953), 월정사 주지(1955, 1959, 1970)를 지내며 탄허스님을 모시고 오대산 가람을 일신했다.

 1965년 대웅전 중창을 위해 목재를 벌채한 것이 문제 되었을 때 본말사 주지회의에서 “우리가 오대산 월정사 나무를 베어다가 월정사 법당을 짓는데 어떻게 그것이 죄가 될 수 있는가? 형무소에 몇 십 번 가더라도 본사의 법당은 꼭 중건해야 합니다. 나는 이미 형무소에 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 말사 주지스님들도 동참하여 주십시오” 라고 역설하며 한국전쟁으로 전소된 월정사 중창을 위해 헌신했다.

 제3,4,5,6대 중앙종회의원을 지내며 한국불교와 종단발전에 기여했다. 1981년 11월 월정사 회주로 추대된 후 대중을 인도하고 납자들을 지도했다. 1983년 12월 11일 상원사에서 세수 64세, 법랍 45세로 원적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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