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己未年)의 기미(幾微)(강원도민일보)2012.11.15 > 언론에 비친 월정사

검색하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소통Odae mountain Woljeongsa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절
언론에 비친 월정사

언론에 비친 월정사

기미년(己未年)의 기미(幾微)(강원도민일보)2012.11.15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1-16 11:01 조회11,453회 댓글0건

본문

기미년(己未年)의 기미(幾微)
2012년 11월 15일 (목) 원행
   
▲ 원 행

월정사 부주지

역사란 역사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역사 속에서 계승되거나 소멸되어 간다. 역사란 있었던 일의 기록이기보다 있었던 일을 평가하고 비판하고 해석하는 일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도 역사가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모든 이들이 글을 쓰고 판단하고 비판과 해석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역사가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아마도 글을 쓰는 일은 그런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증언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역사에서 1979년(기미년) 10월 26일의 사건은 매우 다층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날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사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사령관에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이 임명되었다.

1979년 기미년은 탄허 큰스님의 회갑년이기도 했다. 회갑을 맞아 큰스님께 시국에 대한 법문을 청하였다. 주장자를 들고 법상에 오르신 큰스님께서는 “금년이 기미년인데 기미가 보인다” 하시고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참으로 짧고 간단 명료한 법문이었다. 그러나 이 법문을 경청한 문도와 신도들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몇 번인가 큰스님께 그 뜻을 여쭈어봤지만 “그래서 너는 월정사 멍청이다”라는 꾸중만 들었다. 큰스님은 일체 함구하시고 화엄경 역경 사업에만 전념했다. 평소 큰스님께선, 아는 것이 끊어진 자리가 도(道)의 경지라 하셨고, 영막영어부지(靈莫靈於不知)라 하여 신령하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것이 신령한 것이라 하셨으며, 도인(道人)의 경지는 언어와 문자가 끊어진 경계라 하셨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었다.

10월 27일부터 많은 문도와 신도들이 큰스님을 찾아와 법문을 청하였다. 그들 대부분이 연초에 큰스님께서 기미가 보인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사건을 예견하신 것 아니냐고 놀라워했다. 큰스님께선 역시 함구하신 채 나더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라 하셨다. 정승화 씨는 평소 자주 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은 “당신은 우유부단해. 본분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약속할 수 있어?” 하는 식으로 다그치듯 하셨다. 정승화 씨는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저 “예!”하고 대답하곤 했다. 이미 육군참모총장까지 된 사람인데 우유부단하다니. 곁에 있던 나도 스님의 말씀이 얼핏 이해되지 않았다.

큰 스님의 말씀대로 공관과 집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불통이었다. 큰스님께선 다시 나더러 서울로 가서 정승화를 직접 만나고 오라고 하셨다. 전하는 말씀은 간단했다. 오대산에 한 번 다녀가든지 아니면 전화를 한 번 하라는 것이었다. 급히 서울의 육군참모총장 공관까지 갔으나 공관은 군인들이 새까맣게 에워싸 끝내 만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오대산으로 돌아와야 했다. 마침 큰스님께선 찾아온 신도에게 법문을 하고 계셨다. 1919년 기미년을 기억하느냐, 당시 3·1운동이 일어났다. 세계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민중들이 주체가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기미년은 양의 해인데 양은 순진무구한 민초를 뜻하지만 이 양에게 뿔이 두 개가 있다. 양은 뿔이 물체에 닿으면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하는 속성이 있다. 민중들이 억압과 탄압에 못 견뎌 봉기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일테면 기위친정(己位親政)이다. 대충 이런 요지의 말씀이었다.

12·12 사건 이후 정승화 측근이 스님을 방문했다. ‘정승화 씨가 감옥에 있으면서 공부를 하고 싶으니 스님께서 강설하신 화엄경을 보내주십사’ 하는 요청이었다. 스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내 책을 읽을 자격이 없소. 나와 한 약속을 어찌하여 지키지 못했느냐고 묻더라고 전하시오.” 모두는 어리둥절했다. 스님과 정승화 씨는 어떤 약속을 했던 것일까?

모든 꽃들이 저마다 제 빛깔로 피어나 만화방창할 때가 화엄의 세계다. 모두가 자기 본분을 알고 거기에 충실할 때, 화엄의 세계가 열릴 것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 큰스님께서 정승화 씨와 했다는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어쩌면 정승화 씨 본인도 스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는 무슨 약속인가 우리처럼 어리둥절했을지 모른다. 뜻이 깊이 통하는 사람끼리 약속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금년은 임진년으로 금번 대선에서 어느 분이 당선되어 흑룡의 역할로 세계와 동북아를 지도할 것인지 과거의 탄허 큰 스님의 역사를 월정사 심검당에서 회상해본다.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