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여행... 40년 넘게 뭐하고 살았나(오마의뉴스)201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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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0-31 10:06 조회10,650회 댓글0건본문
아내를 위한 여행... 40년 넘게 뭐하고 살았나
20년 만에 아내와 함께 간 강원도 여행12.10.29 12:16
최종 업데이트 12.10.30 12:12 손영대(daiduck)▲ 낙산사 옆 건어물 가게 석쇠에 노릇노릇 구워져 있는 양미리. | |
ⓒ 손영대 |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가까운 친척 누나가 사업을 접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친척 누나는 시집가기 전에 모아놓은 돈을 모두 날리게 되었고 집도 팔아서 대출금을 갚아야 하며,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도 내놓은 상황이고 그 전세금마저도 대출금을 갚는데 일부 써야 한다고 했다. 친척 누나는 울먹이며 나에게 피아노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문제는 항상 문제가 터진 다음에야 맨살이 드러나는 법이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와 아내도 항상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불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낙산사였다. 낙산사를 둘러보고 나오니 건어물 가게들이 주차장 근처에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유난히도 해산물을 좋아하는 처가 식구들이 생각나서 아내와 함께 건어물 가게에 들어갔다. 다양한 건어물들을 이러저리 둘러보는데 강원도 명물인 황태가 눈에 들어왔다. 엉? 근데 러시아산이다. 궁금해서 가게 주인에게 왜 강원도산이 아닌 러시아산을 들여놓았는지 물었다.
"강원도산은 무지 비싸서 사람들이 엄두를 내지 않아요. 그래서 대신 러시아산 황태를 들여놓을 수밖에 없어요."
"경기가 별로 안 좋나요? 오늘은 평일이어서 좀 한산한 거 같지만 그래도 단풍철이라 주말에는 관광객이 꽤 많을 거 같은데요."
"경기가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은 적이 없어요. 단풍철에는 평일이라 해도 저기 주차장에 더 이상 차가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꽉 차야 하는데, 요즘에는 주말에도 주차장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어요. 정말 최악이에요, 최악."
일가족이 건어물 가게를 꾸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연신 건어물을 정리하고 있고 가게 주인의 어머니는 양미리를 철판 석쇠에 구으면서 "한번 잡숴봐요. 우리 아저씨가 먼 바다에서 직접 잡아온 거라 정말 맛있어요"라며 우리에게 권했다. "네"라고 말하며 나와 아내가 망설이고 있는데, 가게 주인은 쓴 담배연기를 토해놓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 요즘은 양미리가 제철이다. | |
ⓒ 손영대 |
나는 장모님께 점수를 따야겠다고 생각하고 흐뭇한 미소를 흘릴 처남을 떠올리며 반건조된 양미리와 가자미를 처가에 택배로 보냈다. 그러나 차마 신용카드로 계산하지는 못했다.
오대산 전나무 숲은 치유의 길
이번 여행은 아내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한 이후로 아내는 참 고생이 많았다. 아니 어쩌면 결혼 전 장인어른의 사업 실패 이후부터 아내의 삶은 고생길이었는지도 모른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출산 후 100일 만에 아이를 시댁으로 보낸 아내는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던 10월의 어느 날, 이미 중년이 된 아내는, 옛날에 수학여행으로 설악산을 갔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강원도에 가자고 성화였다. 사실 나도 설악산에 간 지 20년이 넘었으니 도대체 설악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결국 설악산의 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신 2박 3일 동안 오대산 월정사와 소금강, 대관령 양떼 목장, 속초 대포항 그리고 낙산사를 둘러보았다. 모두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문득 나는 '40년이 넘도록 뭐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 오대산 전나무 숲은 치유의 길이었다. | |
ⓒ 손영대 |
특히 숲길에 가득한 전나무 내음은 살아 있는 치유의 향이었다. 중국산 싸구려 운동화가 축축해져서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사람이 거의 없는 숲길을 걸으니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져 이내 마음마저 여유로워졌다. 이런 게 바로 삼림욕의 자연 치유력인가 보다 싶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신기해했다.
길을 걷는 것은 힘들 수도 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어깨도 무거워지니까 말이다. 그러나 함께 숲길을 걸으면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걸을 수 있다. 혼자서든 여럿이서든 여행이란 결국 걷는 것 아니겠는가. 일상에 얽매인 현실의 질곡을 초월하여 대자연의 무궁한 품속에서 자유롭게 노닐던 장자의 '소요(逍遙)'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아내와 함께 계속 길을 걷고 싶다.
소금강이 강이 아니었어?
▲ 오대산 소금강 계곡. 구룡폭포에 이르는 나무계단 사이로 단풍이 한창이다. | |
ⓒ 손영대 |
금강산(金剛山)도 있고 금강(錦江)도 있고 해금강(海金剛)도 있으니 오대산 소금강이 오대산 옆에 있는 소금이 나는 강인지 소금물로 짠 강인지 헷갈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쁜 나머지 나에게 여행 일정을 일임한 아내는 오대산 소금강을 강으로 안 것이 분명하다. 나 또한 처음엔 강인 줄 알았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모시는 도량(道場)이 오대산인데, 우리는 정말 국립공원 오대산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하지만 대중을 속이고 결국 자기를 속이는 짓을 할 바에야 나는 차라리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오대산 소금강 계곡에 위치한 금강사. | |
ⓒ 손영대 |
소금강을 지나 구룡폭포에 이르는 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평탄한 편이다. 간혹 어떤 산을 오르노라면 내가 등산을 하러 온 것인지 극기 훈련을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는데, 오대산의 넉넉한 품은 우리를 편안하게 맞아 준다. 산행에서 마주치는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박하지도 않은 은은한 단풍에 고개를 들어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횟집 주인아저씨의 깊은 한숨 "장사가 너무 안 돼"
강원도 여행이 좋은 점은 무엇보다 산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대산 근처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는 비릿한 바다 내음을 상상하며 속초 대포항으로 향했다. 한옥을 좋아하는 아내가 강릉의 선교장을 보고 싶어 했으나 시간상 그곳에는 들르지 못하고 저물녘이 되어서야 속초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숙소를 아직 정하지 못하였으나 우리 두 사람 몸 뉠 곳이 없으랴 생각하며 요기를 채우기 위해 대포항 근처 횟집을 찾았다. 조그마한 횟집들이 밀집해있는 장터마당에는 가게 주인들이 밖으로 나와 "3만 원에 푸짐하게 회 드세요"라며 손님들을 끌고 있었다. 저녁때라 사람들로 북적댈 거라 예상했지만 평일이라서 그런지 장터마당은 한산한 편에 가까웠다.
낮에 산행을 한 터라 우리는 배가 몹시 고팠다. 우리 두 사람의 빈 뱃속을 위해 보시(布施)할 물고기들을 생각하며 나는 잠시 위선적인 '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바닷가 근처라 회는 푸짐하게 나왔고 나는 빈 뱃속에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생선들을 허겁지겁 우겨넣었다.
둘러보니 이 가게도 온 가족이 각자의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딸은 조개를 굽고 아내는 생선회를 뜨고 어설픈 아들은 매운탕 거리를 나르며 잔심부름을 하고 있다. 주인아저씨는 주문 받기와 음식 나르기 등 전반적인 일을 맡고 있었다. 맛있게 먹고 계산할 즈음, 묻지도 않았는데 어눌한 발음의 주인아저씨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돼요. 정말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죽겠어요."
나는 주인아저씨의 말이 괜한 푸념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 경험상 자영업자들에게 장사 잘 되냐고 물으면 그들은 대체로 근근이 먹고 산다고 말한다. 웬만한 호경기가 아니라면 자기 입으로 장사 잘 된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영업자들 거의 대부분은 매출이 일정하기 않기 때문에 항상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하게 씨름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애쓰며 자식들에게만큼은 장사하지 말고 좋은 대학 들어가서 버젓한 직장인이 되라고 말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고 말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 낙산사 해수관음상의 자비로운 미소. | |
ⓒ 손영대 |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사찰. 그리고 격한 풍랑 속에서 어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해수관음상의 인자한 미소. 지금까지 수많은 사찰을 찾아 산행을 해봤지만 낙산사처럼 아름답고 독특한 절은 많지 않았다.
낙산사는 제법 큰 사찰이었다. 화마(火魔)의 상처는 거의 아물었지만 지난달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대웅전 옆 담장의 기왓장이 날아가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찰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30분. 한 건물에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이 보였다. 뭔가 하고 다가가 보니 무료로 국수를 공양하고 있었다. 때마침 출출한 터에 '공짜 심리'까지 발동하니 국수를 먹기 전부터 심리적 포만감이 오는 듯했다. 이심전심이었는지 아내도 내게 흐뭇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 낙산사 무료 국수 공양실. | |
ⓒ 손영대 |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고 산과 바다 사이에 사람이 산다. 하지만 산과 바다가 기르는 것들이 어찌 산나물과 약초와 물고기뿐이겠는가. 인간도 산과 바다에 깃들어 사는 존재일 뿐이다. 다른 생명들이 그 생명을 다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 자신의 생명도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
산은 높아 하늘로 향하고 물은 제 몸을 한없이 낮추어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 산과 바다 사이에 뭇 생명들이 어울어져 살아간다. 사람들은 사라져서 산으로 가 흙이 되거나 강물에 흘러들어 바다에 이르겠지만 하늘과 땅, 산과 바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 낙산 해수욕장. | |
ⓒ 손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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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료 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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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자는요
▲ 낙산사 옆 건어물 가게 석쇠에 노릇노릇 구워져 있는 양미리. | |
ⓒ 손영대 |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 가까운 친척 누나가 사업을 접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친척 누나는 시집가기 전에 모아놓은 돈을 모두 날리게 되었고 집도 팔아서 대출금을 갚아야 하며,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도 내놓은 상황이고 그 전세금마저도 대출금을 갚는데 일부 써야 한다고 했다. 친척 누나는 울먹이며 나에게 피아노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렇다. 문제는 항상 문제가 터진 다음에야 맨살이 드러나는 법이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와 아내도 항상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하게 동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은 불안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여행지는 낙산사였다. 낙산사를 둘러보고 나오니 건어물 가게들이 주차장 근처에 사이좋게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유난히도 해산물을 좋아하는 처가 식구들이 생각나서 아내와 함께 건어물 가게에 들어갔다. 다양한 건어물들을 이러저리 둘러보는데 강원도 명물인 황태가 눈에 들어왔다. 엉? 근데 러시아산이다. 궁금해서 가게 주인에게 왜 강원도산이 아닌 러시아산을 들여놓았는지 물었다.
"강원도산은 무지 비싸서 사람들이 엄두를 내지 않아요. 그래서 대신 러시아산 황태를 들여놓을 수밖에 없어요."
"경기가 별로 안 좋나요? 오늘은 평일이어서 좀 한산한 거 같지만 그래도 단풍철이라 주말에는 관광객이 꽤 많을 거 같은데요."
"경기가 안 좋아도 이렇게 안 좋은 적이 없어요. 단풍철에는 평일이라 해도 저기 주차장에 더 이상 차가 들어설 수 없을 정도로 꽉 차야 하는데, 요즘에는 주말에도 주차장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어요. 정말 최악이에요, 최악."
일가족이 건어물 가게를 꾸려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연신 건어물을 정리하고 있고 가게 주인의 어머니는 양미리를 철판 석쇠에 구으면서 "한번 잡숴봐요. 우리 아저씨가 먼 바다에서 직접 잡아온 거라 정말 맛있어요"라며 우리에게 권했다. "네"라고 말하며 나와 아내가 망설이고 있는데, 가게 주인은 쓴 담배연기를 토해놓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 요즘은 양미리가 제철이다. | |
ⓒ 손영대 |
나는 장모님께 점수를 따야겠다고 생각하고 흐뭇한 미소를 흘릴 처남을 떠올리며 반건조된 양미리와 가자미를 처가에 택배로 보냈다. 그러나 차마 신용카드로 계산하지는 못했다.
오대산 전나무 숲은 치유의 길
이번 여행은 아내를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한 이후로 아내는 참 고생이 많았다. 아니 어쩌면 결혼 전 장인어른의 사업 실패 이후부터 아내의 삶은 고생길이었는지도 모른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출산 후 100일 만에 아이를 시댁으로 보낸 아내는 아이와 함께 살기 위해, '인간답게' 살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던 10월의 어느 날, 이미 중년이 된 아내는, 옛날에 수학여행으로 설악산을 갔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강원도에 가자고 성화였다. 사실 나도 설악산에 간 지 20년이 넘었으니 도대체 설악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결국 설악산의 품에 들어가지는 못했다. 대신 2박 3일 동안 오대산 월정사와 소금강, 대관령 양떼 목장, 속초 대포항 그리고 낙산사를 둘러보았다. 모두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문득 나는 '40년이 넘도록 뭐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 오대산 전나무 숲은 치유의 길이었다. | |
ⓒ 손영대 |
특히 숲길에 가득한 전나무 내음은 살아 있는 치유의 향이었다. 중국산 싸구려 운동화가 축축해져서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사람이 거의 없는 숲길을 걸으니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져 이내 마음마저 여유로워졌다. 이런 게 바로 삼림욕의 자연 치유력인가 보다 싶어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신기해했다.
길을 걷는 것은 힘들 수도 있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어깨도 무거워지니까 말이다. 그러나 함께 숲길을 걸으면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걸을 수 있다. 혼자서든 여럿이서든 여행이란 결국 걷는 것 아니겠는가. 일상에 얽매인 현실의 질곡을 초월하여 대자연의 무궁한 품속에서 자유롭게 노닐던 장자의 '소요(逍遙)'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아내와 함께 계속 길을 걷고 싶다.
소금강이 강이 아니었어?
▲ 오대산 소금강 계곡. 구룡폭포에 이르는 나무계단 사이로 단풍이 한창이다. | |
ⓒ 손영대 |
금강산(金剛山)도 있고 금강(錦江)도 있고 해금강(海金剛)도 있으니 오대산 소금강이 오대산 옆에 있는 소금이 나는 강인지 소금물로 짠 강인지 헷갈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바쁜 나머지 나에게 여행 일정을 일임한 아내는 오대산 소금강을 강으로 안 것이 분명하다. 나 또한 처음엔 강인 줄 알았다.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대승불교에서 최고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을 모시는 도량(道場)이 오대산인데, 우리는 정말 국립공원 오대산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 하지만 대중을 속이고 결국 자기를 속이는 짓을 할 바에야 나는 차라리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오대산 소금강 계곡에 위치한 금강사. | |
ⓒ 손영대 |
소금강을 지나 구룡폭포에 이르는 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오르내림이 거의 없이 평탄한 편이다. 간혹 어떤 산을 오르노라면 내가 등산을 하러 온 것인지 극기 훈련을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리기도 하는데, 오대산의 넉넉한 품은 우리를 편안하게 맞아 준다. 산행에서 마주치는 너무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소박하지도 않은 은은한 단풍에 고개를 들어 자꾸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횟집 주인아저씨의 깊은 한숨 "장사가 너무 안 돼"
강원도 여행이 좋은 점은 무엇보다 산과 바다를 모두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오대산 근처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는 비릿한 바다 내음을 상상하며 속초 대포항으로 향했다. 한옥을 좋아하는 아내가 강릉의 선교장을 보고 싶어 했으나 시간상 그곳에는 들르지 못하고 저물녘이 되어서야 속초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숙소를 아직 정하지 못하였으나 우리 두 사람 몸 뉠 곳이 없으랴 생각하며 요기를 채우기 위해 대포항 근처 횟집을 찾았다. 조그마한 횟집들이 밀집해있는 장터마당에는 가게 주인들이 밖으로 나와 "3만 원에 푸짐하게 회 드세요"라며 손님들을 끌고 있었다. 저녁때라 사람들로 북적댈 거라 예상했지만 평일이라서 그런지 장터마당은 한산한 편에 가까웠다.
낮에 산행을 한 터라 우리는 배가 몹시 고팠다. 우리 두 사람의 빈 뱃속을 위해 보시(布施)할 물고기들을 생각하며 나는 잠시 위선적인 '관세음보살'을 읊조렸다. 바닷가 근처라 회는 푸짐하게 나왔고 나는 빈 뱃속에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생선들을 허겁지겁 우겨넣었다.
둘러보니 이 가게도 온 가족이 각자의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딸은 조개를 굽고 아내는 생선회를 뜨고 어설픈 아들은 매운탕 거리를 나르며 잔심부름을 하고 있다. 주인아저씨는 주문 받기와 음식 나르기 등 전반적인 일을 맡고 있었다. 맛있게 먹고 계산할 즈음, 묻지도 않았는데 어눌한 발음의 주인아저씨가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돼요. 정말 경기가 너무 안 좋아 죽겠어요."
나는 주인아저씨의 말이 괜한 푸념이 아니라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 경험상 자영업자들에게 장사 잘 되냐고 물으면 그들은 대체로 근근이 먹고 산다고 말한다. 웬만한 호경기가 아니라면 자기 입으로 장사 잘 된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영업자들 거의 대부분은 매출이 일정하기 않기 때문에 항상 불투명한 미래와 불안하게 씨름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애쓰며 자식들에게만큼은 장사하지 말고 좋은 대학 들어가서 버젓한 직장인이 되라고 말한다. 안정적인 직업이 최고라고 말이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 낙산사 해수관음상의 자비로운 미소. | |
ⓒ 손영대 |
산과 바다가 공존하는 사찰. 그리고 격한 풍랑 속에서 어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는 해수관음상의 인자한 미소. 지금까지 수많은 사찰을 찾아 산행을 해봤지만 낙산사처럼 아름답고 독특한 절은 많지 않았다.
낙산사는 제법 큰 사찰이었다. 화마(火魔)의 상처는 거의 아물었지만 지난달 태풍 산바의 영향으로 대웅전 옆 담장의 기왓장이 날아가서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찰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한 시간은 족히 걸렸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30분. 한 건물에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이 보였다. 뭔가 하고 다가가 보니 무료로 국수를 공양하고 있었다. 때마침 출출한 터에 '공짜 심리'까지 발동하니 국수를 먹기 전부터 심리적 포만감이 오는 듯했다. 이심전심이었는지 아내도 내게 흐뭇한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 낙산사 무료 국수 공양실. | |
ⓒ 손영대 |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보호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고 산과 바다 사이에 사람이 산다. 하지만 산과 바다가 기르는 것들이 어찌 산나물과 약초와 물고기뿐이겠는가. 인간도 산과 바다에 깃들어 사는 존재일 뿐이다. 다른 생명들이 그 생명을 다하지 못하면 결국 우리 자신의 생명도 온전히 보존할 수 없다.
산은 높아 하늘로 향하고 물은 제 몸을 한없이 낮추어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 산과 바다 사이에 뭇 생명들이 어울어져 살아간다. 사람들은 사라져서 산으로 가 흙이 되거나 강물에 흘러들어 바다에 이르겠지만 하늘과 땅, 산과 바다는 사라지지 않는다.
▲ 낙산 해수욕장. | |
ⓒ 손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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