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힐링, 세상을 감싸다] 4. 산사의 둘레길 (법보신문)2013.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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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1-02 10:29 조회10,817회 댓글0건본문
- [불교 힐링, 세상을 감싸다] 4. 산사의 둘레길
- 숲속 부처님 향한 순례의 길, 나를 치유하다
숲에는 도시보다 산소 많아
나무가 먼지 걸러내기도
둘레길 걷기, 건강에 ‘만점’
몸·마음 조화 추구하는
‘순례길’ 치유의 본질은
공감을 통한 심리적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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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둘레를 굽이굽이 흐르는 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길에는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사연과 사계절의 변화가 소복하게 쌓여있다. 어디에선가 산들바람이 불어와 땀에 젖은 얼굴을 시원하게 적신다. 푸른 하늘 저편에선 새소리가 들리고 계곡의 물은 낮은 곳을 향해 몸을 숙인다. 오탁악세(五濁惡世)에 찌든 몸과 마음이 어느새 숲길처럼 맑아진다.
길모퉁이를 지나면 고즈넉한 산사가 객들을 맞는다. 부처님 세상에서 생명들은 평등하다. 사찰에 이르면 누구나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부처님께 인사드린다. 숲길서 털어낸 속세의 먼지들은 사찰에 닿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 앞에서 벌거벗은 스스로의 모습을 마주한다. 새들도 날갯짓을 멈추고 잠시 쉬어가는 곳, 하심(下心)의 공간 산사에서는 사람의 향기가, 생명의 싱그러움이 짙게 배어있다.
‘힐링’ 열풍이다. 사람들은 갖가지 ‘힐링’ 수단을 통해 저마다의 상처를 치유하겠다고 아우성이다. 고도의 압축성장과정에서 다양한 부작용을 온몸으로 뚫고 나와야 했던 한국인들이기에 2012년의 ‘힐링’ 열풍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수십 년 동안 곪은 상처는 터져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힐링’ 열풍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지금 세간에 알려진 수많은 치유방법론 중에서도 산사의 숲길을 걷는 ‘순례의 길’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사찰을 품은 전국 곳곳의 숲길에는 부처님의 자비에 몸을 맡기고 자연의 혜택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순례의 길, 산사의 둘레길은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치유하는 것일까?
먼저 건강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둘레길 걷기’를 통해 심장병과 당료병, 비만 등을 예방할 수 있다. 또 근력을 키우는데 산행만큼 좋은 운동은 없다. 근력운동은 골밀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골다공증을 막는데도 효과가 있다. 숲길을 걸으며 아래로 내려온 혈액이 다시 심장으로 올라오며 자연스럽게 혈액순환이 되는 것도 산행의 효과 중 하나다.
우울증을 줄이는데도 효과적이다. 울창한 숲속에서는 흔히 말하는 ‘숲 향기’를 맡을 수 있다. 이것의 정체는 바로 나무가 만들어내는 ‘피톤치드(phytoncide).’ 피톤치드는 나무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분비하는 살균물질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좋은 영향을 끼친다.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며 살균작용도 이뤄진다.
음이온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도시에서는 매연과 전자파 등 양이온이 넘쳐나는데 반해 숲에서는 음이온이 많이 나온다. 음이온은 혈액의 미네랄 성분인 칼슘, 나트륨, 칼륨 등의 이온화 율을 상승시켜 혈액을 정화한다. 칼슘과 나트륨의 이온화율의 상승은 혈액정화, 피로회복, 체력 회복뿐 아니라 통증부위의 세포를 건강하게 활성화시켜 통증을 완화한다.
심리적 안정은 또 다른 효과다. 나뭇잎을 통과한 햇빛은 비타민D 합성과 세로토닌 분비작용을 돕는다. ‘행복의 씨앗’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세로토닌의 분비는 일상의 활력과 생기로 이어진다. 산행 다음날 혈액 내의 ‘베타 엔돌핀’ 양도 20%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타 엔돌핀’은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효력을 발휘한다고 알려졌으며 무엇보다 면역력을 높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또 세균에 감염된 질병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에 강한 저항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효과들은 대부분 풍부한 산소와 관련 있다. 숲에는 도시보다 산소가 2% 많다. 산소의 양만이 아니다. 산소의 질 또한 도시의 그것과 차이가 크다. 오염물질이 바람을 타고 돌아다니는 도시와 달리 숲에서는 나무가 먼지를 걸러내기 때문에 공기가 맑다. 도시 공기 1리터에는 10만~40만 개의 먼지가 있지만 숲의 공기에는 수천 개에 불과하다. 숲이 먼지를 걸러내는 효과는 도심 풀밭의 100배이며, 활엽수 1㏊는 매년 68t의 먼지를 걸러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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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숲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산림청에서는 2017년까지 50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해 100만 명이 산림치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를 위해 장성·횡성·산음 등 3곳에 불과한 ‘치유의 숲’을 25곳으로 증원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지자체차원에서도 ‘치유의 숲’이 조성되고 있다.
하지만 숲길이 주는 영향을 건강에만 국한시킨다면 ‘힐링’의 진정한 의미는 퇴색된다. 건강과 심리적 안정이 조화롭게 어울릴 때 진정한 치유는 이뤄진다. 복잡한 도심을 떠나 산사의 길에 들어서 나무, 바람, 소리, 물, 그리고 사람 아닌 생명들과 마주친다. 그리고 길의 끝에서 한없이 자애로운 부처님을 만난다. 자연과 부처님을 동시에 품은 마음은 요동치는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풍요로워진 마음에 바람 따라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들어오면 부처님이 이 땅에 심으신 자비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속세의 고민과 번뇌는 어느새 저 멀리 도망가 버리고 부처님을 닮은 자애로움이 내면에 들어선다.
산사를 향한 ‘순례의 길’에서는 또한 일상의 혼란스러움을 탈피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얻을 수 있다. 객관적 시야는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상을 조화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우리는 객관적 시야를 무기로 좌절과 번뇌의 늪에서 공감을 건져 올릴 수 있고 공감을 무기로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치유는 공감에서 시작되고 공감은 나와 네가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내가 안고 있는 번뇌가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결국 우리는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한다. 산사로 이어지는 숲에서 나와 너, 우리를 만나고 병든 자아를 ‘힐링’ 할 수 있다. ‘산다는 것’이 ‘물질’과 연결되는 세상에서 ‘물질’이 병든 마음의 원인이라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 우리는 문을 나서야하는 것이다. 어렵지 않다. 주말의 나른함을 극복할 사소한 용기만으로도 충분하다. 산사를 향하고 있는 길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순례의 길’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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