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기미년, 탄허 큰스님과 정승화 / 원행 스님(한겨레)2012.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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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12-11 16:29 조회10,182회 댓글0건본문
[왜냐면] 기미년, 탄허 큰스님과 정승화 / 원행 스님 | |
우리의 역사에서 1979년(기미년) 10월26일의 사건은 매우 다층적인 해석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날 대통령이었던 박정희를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사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국무총리였던 최규하씨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사령관에는 육군참모총장 정승화 대장이 임명됐다.
그해는 탄허 큰스님의 회갑년이기도 했다. 정초에 문도와 신도들은 큰스님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약간의 모금을 했다. 그것을 아신 큰스님께선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꾸중하며 그 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보내라고 지시하셨다. 기념 축하연은 평상시 음식으로 대신하고 큰스님께 시국에 대한 법문을 청하였다.
당시 시국은 참담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유신체제에 대하여 크게 저항하였다. 큰스님께서는 “금년이 기미년인데 기미가 보인다”고 하시고는 법상에서 내려오셨다. 그러나 문도와 신도들은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몇 번인가 큰스님께 그 뜻을 여쭈어봤지만 “그래서 너는 월정사 멍청이다”라는 꾸중만 들었다. 큰스님은 일체 함구하시고 화엄경 역경 사업에만 전념했다.
1979년 박 정권은 각종 시국사건에 강경대응하여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체포·연행·연금 등이 잇달았다. 더욱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의원직 제명안을 국회에서 변칙 통과시키며 정세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이른바 부마 사태에 이어 10월26일, 서울의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됐다.
10월27일부터 많은 문도와 신도들이 큰스님을 찾아와 법문을 청하였다. 그들 대부분이 연초에 큰스님께서 ‘기미가 보인다’고 하신 것이 바로 이 사건을 예견하신 것 아니냐고 놀라워했다. 큰스님께선 역시 함구하신 채 나더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라 하셨다. 공관으로 전화를 걸어보고 집으로도 걸어보았으나 전화는 불통이었다. 정승화씨는 평소 자주 스님을 찾아뵈었다. 스님은 정씨를 만날 때 “당신은 우유부단해. 본분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약속할 수 있어?” 하는 식으로 다그치듯 대하곤 하셨다.
큰스님께선 나더러 서울로 가서 정승화를 만나고 오라고 하셨다. 전하는 말씀은 간단했다. 오대산에 다녀가든지 전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급히 서울 육군참모총장 공관까지 갔으나 군인들이 새까맣게 에워싸고 있었다. 공관 입구에서 길을 막는 군인에게 나는 통사정을 했다. “참모총장께 전할 말이 있어 왔습니다. 오대산 탄허 큰스님의 전갈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웬 정신 나간 중인가 하는 표정으로 위협하며 내쫓았을 뿐이다. 하는 수 없이 다시 오대산으로 돌아와야 했다.
마침 큰스님께선 신도에게 법문을 하고 계셨다. 1919년 기미년을 기억하느냐, 당시 3·1운동이 일어났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기미년은 양의 해인데 양은 순진무구한 민초를 뜻하지만 이 양에게 뿔이 두 개가 있다. 양은 뿔이 물체에 닿으면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하는 속성이 있다. 민중들이 억압과 탄압에 못 견뎌 봉기하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이런 요지의 말씀이었다.
12월12일 저녁,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지시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국군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강제 연행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씨의 측근이 스님을 방문했다. 감옥에 있는 정씨가 스님께서 강설하신 화엄경을 보내주십사 한다는 것이었다. 스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은 내 책을 읽을 자격이 없소. 나와 한 약속을 어찌하여 지키지 못했느냐고 묻더라고 전하시오.” 모두는 어리둥절해했다.
스님과 정승화씨의 약속은 무엇이었을까? 10·26 이후 혼란기에 정승화씨가 자기 역할에 충실했다면 그때 민주정부가 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야욕 때문이었는지 우왕좌왕하다가 우리 역사의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쳐버렸음에 분명하다.
기미년에 기미가 있었으나 또다른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그 기미는 또 긴 세월 유보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 5·18 광주에서 민중의 엄청난 피를 부르고 말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 큰스님께서 정승화씨와 했다는 약속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어쩌면 정승화씨 본인도 스님의 말씀을 듣고는 무슨 소린가 어리둥절했을지 모른다. 뜻이 깊이 통하는 사이라야 약속도 할 수 있는 법이니까.
원행 스님 오대산 월정사 부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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