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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 따라 적멸보궁까지… 순백의 길 걸으며 ‘깊은 묵상’(문화일보)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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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1-24 15:36 조회10,0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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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法 따라 적멸보궁까지… 순백의 길 걸으며 ‘깊은 묵상’
겨울 오대산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밤새 폭설로 내려 쌓인 눈이 소리를 빨아들여서 그랬을 것이었다. 강원 평창의 오대산 아래 월정사로 드는 전나무 숲길에는 적막이 가득 고여 출렁거렸다. 이런 순백의 고요한 공간 속을 스님 셋이 눈 딛는 발자국 소리만 남기며 묵언으로 지나고 있었다.

월정사 절집 아래 사하촌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오대산 적멸보궁 아래 경사면에 들어선 중대 사자암. 비탈을 따라 짓다보니 암자는 다섯 층이 됐다.

오대산 비로봉 정상을 딛고 올라서서 바라본 오대산의 능선들. 길게 이어진 산의 뼈대가 부드럽되 힘찼다. 산 너머로는 멀리 강릉의 바다까지 바라다보였다.
대설주의보의 분분한 눈발 속에서 오대산으로 들어갑니다. 신새벽 산중의 눈 쌓인 오솔길은 아무도 딛지 않은 순백으로 빛났지만, 오래전에 이 길을 먼저 건너간 이들이 있었습니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율사, 신라 신문왕의 아들 법천, 스물일곱 해 동안 산문 밖에 한 발짝도 나서지 않았다는 한암선사…. 그들의 걸음을, 아니 차고 맑은 그들의 정신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을 거쳐 오대산 비로봉까지 닿는 길. 그 길에서 화려한 눈꽃보다 더 아름다웠던 건 세속의 것들을 훌훌 버리고 떠나온 이의 걸음걸이, 혹은 평생 수도의 자세를 잃지 않은 이의 용맹정진이었습니다. 눈은 오래 그치지 않았고, 눈에 파묻힌 암자 마당에는 눈보다 더 맑은 정신이 가득 고여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 강원도 산간에 대설주의보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건 지난밤부터였다. 세상의 모든 경계란 경계는 다 지워진 이른 아침.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눈으로 오대산 일대는 온통 ‘눈세상’이었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쏟아지곤 하는 눈발 속에서 월정사로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에 들었다.

눈밭 속에서 전나무 둥치는 굵은 붓으로 힘차게 찍어낸 먹빛이었고, 실핏줄 같은 가지마다 설화(雪花)가 만발했다. 눈의 무게로 휘어진 가지에서는 이따끔 풀썩 눈이 쏟아져서 바람에 흩어졌다. 순백으로 포위된 침묵의 숲. 아는 이들은 안다. 눈 내린 직후의 숲이 얼마나 고요한지, 눈이 얼마나 깊은 진공의 침묵을 만들어내는지를….

그 적막의 숲길 저쪽 끝에서 스님 셋이 숲길로 걸어들어왔다. 아마도 깊은 산사에서 수도의 긴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도반(道伴)들이리라. 뽀드득…. 순백으로 적막한 세상에 묵언의 스님들이 딛고 가는 눈밟는 소리. 마음을 수시로 어지럽히곤 했던 색깔들이 다 지워진 무채색의 길. 스님 셋이 나란히 낸 첫 발자국을 먼 발치서 따라가다가 왜 갑자기 그 문장이 떠올랐을까. ‘눈 쌓인 길 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자취가 뒤에 올 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서산 대사의 ‘답설(踏雪)’)

다른 계절도 마찬가지지만, 겨울 오대산의 백미라면 단연 월정사까지 1㎞ 남짓 이어지는 전나무 숲길이다. 오며 가며 40분쯤, 아니 속도를 늦추자면 왕복 1시간쯤 걸리는 길. 눈발을 뒤집어쓴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우람하게 서 있는 그 길이야말로 겨울 오대산을 찾는 보람이다.

본디 이 숲길의 시작은 ‘아홉 그루의 나무’였다고 했다. 이름하여 ‘아홉 수(樹)’라고 부른다던가. 수령 500년을 넘긴 아홉 그루의 전나무 고목. 고목들이 수백 년 동안 뿌린 씨들이 이렇듯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전나무 숲을 만들어냈단다. 500년의 시간을 건너온 아름드리 전나무 사이로 스님들이 이른 아침 눈밭에 찍어놓은 발자국 앞에서 ‘모든 것의 처음’의 모습을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새해를 시작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강원산간의 대설주의보는 여전히 발효 중이었다.



# 월정사, 불법의 경계를 이룬 절집

월정사는 스스로 ‘경계’를 이룬다. 오대산을 중심에 두고 봐도 그렇고, 불법(佛法)의 의미에서 본대도 그렇다. 월정사는 오대산 깊은 숲으로 드는 관문이기도 하고, 저자의 세속과 산중의 피안을 가르는 문의 역할도 한다. 하지만 오대산 본래의 정신과 깊이는 경계에서는 알 수 없는 법. 전나무 숲길의 정취와 월정사가 품은 고즈넉함을 폄훼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월정사에서 더 깊은 상원사로, 중대 사자암으로, 적멸보궁으로, 거기서 오대산 비로봉까지 올라봐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만나게 된다.

산 이름 ‘오대(五臺)’부터 풀어보자. 오대산은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 등의 다섯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산자락마다 방위에 따라 동대, 서대, 남대, 북대의 암자를 놓고 복판에 중대를 들였으니 산중에 다섯 개(五) 대(臺)가 놓인 셈이다. 오대란 이름은 이렇게 얻어졌다.

그렇다면 그 중심은 당연히 산의 가운데 딱 버티고 선 중대의 ‘사자암’을 말함일 텐데, 사자암은 기실 그 위쪽에 세워진 세 칸짜리 전각 ‘적멸보궁’을 건사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니 오대의 중심이자 주인은 ‘적멸보궁’인 셈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 그렇다면 누가 이 깊은 산중에 부처의 사리를 가져다가 두었을까. 신라 때의 고승 자장은 수도를 마치고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이곳 오대산을 비롯해 양산 통도사, 설악 봉정암,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에 모셨다. 이른바 ‘5대 적멸보궁’이다. 이 네 곳의 적멸보궁 중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사리와 부처의 머리뼈를 함께 모셨다는 이곳 오대산의 보궁이다.



# 눈길을 걸어 불법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다

월정사에서 산길을 따라 상원사를 향해 오르는 길. 예로부터 ‘청뢰백석(淸瀨白石)’이라 부르던 월정천 계곡에는 무릎까지 소복이 눈이 쌓여 있다. 비포장길이라지만 눈이 쌓인 길은 부드럽다. 밤새 내린 눈은 다져지지 않은 거친 바닥을 고르고, 계곡가 바위 위에 쌓여 동글동글 모든 선을 부드럽게 다듬어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거리는 8.8㎞. 걷기에는 사뭇 멀다. 상원사까지만 가겠다면 모를까, 적멸보궁까지 가려면 숲길의 들머리가 되는 상원사까지는 차를 타고 눈길을 조심조심 올라가는 편이 더 낫겠다.

상원사는 월정사에 비교하면 규모나 위세는 어림없지만 이야기는 더 풍성하다. 상원사 창건 내력을 뒤져보자. 불법에 뜻을 두고 방랑하던 신라 신문왕의 두 아들 보천과 효명. 이들이 오대산에 이르러 적멸보궁이 환하게 빛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형 보천은 적멸보궁 남쪽에 ‘진여원’이란 암자를, 동생은 지금의 북대 자리에 암자를 짓고 수도 정진한다. 왕위가 끊어질 위기에 처한 신라는 형제를 찾아와 왕위를 이어주길 간청했으나 형 보천은 울면서 끝내 거절했고, 결국 동생 효명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때 왕위를 거절하고 오대산에 머문 보천이 기거했던 ‘진여원’이 지금의 상원사다.

보천·효명, 두 왕자는 오대산에서 정진하던 중에 동대에서 1만 관음보살을, 남대에서 1만의 지장보살을, 서대에서 1만의 대세지보살을, 북대에서 오백 아라한을, 중대에서 1만 문수보살을 만났으며 아침저녁으로 샘물을 길어 차를 달여 공양했다고 전한다. 종교적 귀의에 대한 장엄하고 찬란한 상징으로 읽히는 이런 이야기들은, 적멸보궁이 깃든 오대산이 얼마나 성스러운 공간이었던가를 알려준다.



# 산의 깊이가 상원사를 장엄하다

상원사의 겨울은 다른 계절에 비해 한결 조용하다. 눈 내린 산길을 헤치고 이곳까지 찾아오는 기도객들이 그리 많지 않은 까닭이다. 영산전 앞에 커다란 오대보탑을 새로 짓고, 청풍루에 문수보살 화현도를 그려놓고, 마당을 넓히는 등 불사가 잇따르면서 근래 들어 상원사의 몸집은 크게 불었다. 하지만 거듭된 불사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하게 눈길을 끌어당기는 게 없다.

절집 마당 끝에 오래 묵은 산돌배나무 한 그루 앞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눈에 덮인 오대산의 동대와 서대의 산자락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잎을 다 떨군 앙상한 활엽수 숲 속에서 군데군데 전나무들이 흰 눈을 이고 서 있었다. 상원사에서는 어쩌면 절집의 자태나 전각의 풍모보다는 이런 것을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상원사의 절집을 치장하고 완성하는 것은 건물의 위세가 아닌 ‘산의 깊이’이니 말이다.

상원사에 걸려 있는 이야기는 조선으로 넘어와도 풍성하다. 상원사에는 세조의 자취가 또렷하다. 상원사를 찾은 세조가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의 도움을 받아 피부병을 고쳤다거나, 고양이의 도움으로 자객의 위협을 모면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진다. 문수전의 문수동자상도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만들어 모신 것이라니 상원사와 세조와 얽힌 인연은 질기다.

상원사에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 동종이다. 1300여 년 전 통일신라 때 주조한, 나라 안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기도 하거니와 하늘옷 자락을 휘날리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이며 연꽃문양이 그윽한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 종을 매단 고리역할을 하는 ‘용뉴’다. 입을 딱 벌린 용이 다리를 앞뒤로 벌린 채 종의 무게를 버티고 선 힘찬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 손바닥 위로 새들을 불러내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윗길과 아랫길 두 갈래다. 두 길은 적멸보궁의 들머리가 되는 중대 사자암에서 만나는데, 아랫길은 절집 차량들이 지나는 제법 너른 길이고, 윗길은 좁은 산길이다. 아랫길이 걷기에는 더 편하지만, 요즘처럼 눈이 많은 겨울철에는 소복한 눈을 딛고 가는 오솔길을 따라가는 윗길의 정취가 더 낫다.

오대산의 적멸보궁을 풍수에서 ‘고개를 쳐든 용의 정수리’쯤으로 치니 그 아래쪽에 있는 중대 사자암은 ‘용의 눈’ 자리라 한다. 사자암에서 솟는 약수를 ‘용의 눈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가운 약수로 숨을 고르고 암자를 둘러본다.

사자암은 지난 2006년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하면서 비탈면에 계단식의 5층 전각을 들였다. 건물 반쪽은 비탈면에 기대고 나머지 반쪽의 지붕으로 치켜 쌓아올린 5층짜리 전각은 독특하기도 하고, 웅장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거대한 건물의 규모며 잔뜩 힘주어 뽑아낸 지붕의 선들이 주변의 풍광과는 어쩐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중대 사자암에서 오솔길을 따라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길. 폭설로 먹이를 찾지 못해서일까. 산길에서 다리 쉼을 하다 보면 어느새 겨울 숲에서 동고비와 곤줄박이들이 날아든다.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를 받아먹다가 이젠 아예 겁도 없이 등산객들의 손바닥 위에 척 하니 올라선다.

오대산을 찾는 등산객들 사이에서는 먹이를 손에 올려놓고 새들을 불러 ‘보시’하는 게 빼놓을 수 없는 재미가 됐다. 하지만 그럴 양이라면 과자보다는 곡식 따위를 미리 준비해가는 것이 낫겠다. 튀겨낸 과자가 산새들에게도 그닥 좋을 리 없으니 말이다.



# 적멸보궁, 어찌 이런 곳을 찾아냈을까

중대 사자암에서 20분쯤 산길을 걸으면 적멸보궁이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돌계단의 눈이 말끔히 쓸려 있다. 허벅지까지 빠질 정도로 퍼부었던 눈더미를 다 쓸어낸 건 보궁을 지키는 불자들과 스님들의 따스한 정성이다.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의 보궁은 단정하고 소박하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으되 자장이 가져왔다는 사리가 어디 모셔져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보궁 뒤에 탑의 형상을 양각으로 새겨놓은 바위만 근방에 사리가 있음을 표식할 뿐이다.

불심 깊은 불자라면 다를지 모르겠으되 그렇지 않다면 적멸보궁에서는 보궁의 모습보다 주위를 둘러치고 있는 산세에 먼저 감탄하게 된다. 오대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이 주변을 병풍처럼 둘러싼 한가운데 적멸보궁은 불쑥 솟아 있다. 어찌 이런 곳을 찾아냈을까. 누구든 ‘천하의 명당’이라 감탄할 만한 자리다.

적멸보궁에서 오대산의 주봉인 비로봉까지는 1시간 남짓의 거리다. 적멸보궁까지 왔다가 내친김에 비로봉을 향한다면 곧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적멸보궁을 지나자마자 가파르게 일어선 산길이 앞을 막아서니 말이다. 그래도 거리는 그닥 멀지 않다.

같은 오대산국립공원 내 계방산 눈꽃산행의 명성 탓일까. 이즈음 비로봉을 찾는 등산객들이 드물다. 하지만 눈 내린 이튿날이라면 비로봉에서도 계방산 못지않은 화려한 눈꽃을 만날 수 있다.

비로봉을 딛고 서면 우우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풍경이 기다린다. 딛고 올라온 길 쪽으로 몸을 돌리면 오대산 동대산과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이 길에 펼쳐놓은 병풍처럼 펼쳐진다. 두로봉과 노인봉 사이로는 강릉일대와 동해까지 눈에 들어온다. 겨울나무를 갈기처럼 세운 눈 덮인 산자락의 능선이 빚어내는 선들이 맥박처럼 힘차다.

비로봉에 오른다면 되돌아 내려서는 것보다는 눈 덮인 늙은 주목들이 화사한 눈꽃과 서리꽃을 피워내는 즐비한 산길을 따라 상왕봉을 지나고 두로봉을 넘어 북대 쪽으로 길게 내려와도 좋겠다. 상원사에서 비로봉만 올랐다가 내려선다면 세 시간 반쯤이 걸리고, 북대 쪽을 거쳐 내려온대도 대여섯 시간쯤이면 충분하다.

평창=글·사진 박경일 기자 park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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