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필·정통성 '한국의 큰스님 글씨, 월정사의 한암과 탄허'(뉴시스)201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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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4-17 14:30 조회8,133회 댓글0건본문
【서울=뉴시스】유상우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은 16부터 상설전시관 서화관 서예실에서 테마전 ‘한국의 큰스님 글씨-월정사의 한암(漢岩)과 탄허(呑虛)’를 연다. 탄허(1913~1983)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고 석가탄신일과 연계해 기획된 전시회다.
오대산 월정사의 두 큰스님인 한암(1876~1951)과 탄허의 글씨를 중심으로 구성한다. 평창 월정사, 대전 자광사, 양산 통도사, 안양 한마음선원, 서울 탄허기념박물관, 탄허불교문화재단에서 빌린 서예작품, 탁본, 현판 등 80여점이 소개된다.
이들의 글씨는 한국 서예 전통에서 선필(禪筆)의 범주에 속한다. 선필은 품격과 개성의 표현 방식으로 깨달음을 표출하는 글씨지만 넓게는 스님의 글씨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두 승려의 글씨는 넓은 의미에서의 선필과 전통성을 기반으로 한다. 글씨 내용은 불교의 경전과 깨달음, 고전의 경구, 삶의 자세 등 다양하다. 유연하게 쓴 한문 글씨뿐 아니라 잔잔한 한글 글씨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선승이자 학승인 한암은 한국 불교의 선풍을 지키고 법맥을 계승, 근대 한국 불교를 중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학문을 닦던 중 불교에 귀의했다. 당대의 유학과 불교학의 권위자인 한암의 학문과 인품을 존경해 가르침을 받고자 했던 승려와 지식인들이 많았으며, 그 수제자 중 한 명이 탄허다.
한암은 참선을 중시했지만, 계율을 지키고 경전을 연구하고 학문하는 자세를 함께 갖춰야만 올바른 수행, 올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고 평생 이를 실천했다.
1951년 1·4 후퇴 때 오대산 상원사의 소각 위기를 온몸으로 지켜내기도 했다. 1941년 조계종이 새로 출범할 때 초대 종정을 지냈다.
한암의 글씨풍은 단정하고 정적인 필치로 격조 높은 선비의 글씨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탄허는 20세기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이자 유불도 3교에 능통한 석학이다. 독립운동가 김홍규의 아들로 기호학파 학통을 이은 스승 이극종을 통해 한학 연구를 하다가 해결되지 않는 도(道)의 근원에 대한 답을 찾고자 당시 최고 선승 한암과 3년간 학문에 대한 서신 문답 끝에 22세 때 그의 제자가 됐다.
탄허는 스승의 법통을 계승했고, 이를 불교학 연구와 불교의 중흥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상원사의 대화재로 소실된 한암의 연구와 관련 자료도 복원했다. 또 스승의 뜻을 이어 전소한 월정사를 중건하고 화엄경과 불교 경전 번역 사업을 펼쳤다. 화엄경의 완역인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은 그의 여러 업적 중 가장 높이 평가된다.
늘 대중과 가까이 한 탄허는 필묵을 즐겨 생전에 많은 글씨를 남겼다. 그의 글씨는 스승의 글씨와는 달리 활달하고 기세가 빠른 필치가 특징이다.
전시와 연계해 15일 오후 2시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에서 철학자 도올(檮杌) 김용옥이 강연한다. 출품 유물과 관련 논고를 실은 전시 도록도 나온다. 전시는 6월16일까지 계속된다.
swry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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