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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강원인물]실존 인물이면서 신화적 인물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재탄생(강원일보) 2013.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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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7-18 09:14 조회9,5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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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강원인물]실존 인물이면서 신화적 인물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재탄생



강릉 출신의 한 소설가는 사석에서 강릉단오제의 국사성황신과 국사여성황신을 소재로 장편소설 하나를 꼭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스님이 남성황신으로, 마을 처녀가 여성황신으로 신격화된 경우는 그 유래가 없고, 신격화의 과정 역시 참으로 드라마틱해 그 자체로 이미 한 편의 유장한 소설이 된다고 했다.

소설가의 말처럼,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의 주신(主神)인 범일국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우리의 상상력을 역사에서 문학으로, 문학에서 신화로 무한히 확장시킨다. 범일국사는 불교사에 기록된 실존적 인물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민속축제의 한복판에 주신으로 좌정하는 신화적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존인물로서의 범일국사(梵日國師)는 810년(신라 헌덕왕 2년) 강릉 학산에서 태어나 889년(진성여왕 3년) 고향의 굴산사에서 입적한 당대의 고승이다.

선종의 역사를 기록한 `조당집(祖堂集)'에는 범일국사의 행적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성은 김()씨이고 시호는 통효(通曉)이며 이름은 품일(品日)이다. 그의 할아버지는 명주도독 김술원이고 어머니는 문씨이며 13개월 만에 태어났다. 15세에 출가, 829년(흥덕왕 4년) 경주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고 왕자인 김의종을 따라 당나라에 들어가 마조도일의 제자인 염관, 제안에게 6년간 사사하였다.”

범일국사는 스승인 제안선사가 “도는 닦는 것이 아니라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부처나 보살에 대한 소견을 내지 않는 평상의 마음을 곧 도라고 한다”라고 말하는 데서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제안선사의 가르침은 자신의 스승인 마조선사가 강조한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를 전한 것으로, 범일의 법맥이 혜능, 남악, 마조로 이어지는 남종선의 적통에 닿아있음을 보여준다.

`조당집'은 그가 847년(문성왕 9년) 귀국해 백달산에서 수행하다가 명주도독 김공의 청으로 굴산사 주지로 부임해 이후 40년을 이곳에서 보냈다며 “경문왕, 헌강왕, 정강왕 등 세 왕으로부터 왕사(王師)가 되어 주기를 권유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수도와 불경 연구에만 전념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연구자들 사이에서 범일국사(國師)를 `범일선사(禪師)'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이 같은 그의 행적 때문이다. 그가 생전에 왕사가 되기를 거부했고, 그의 불교사상이 선불교의 적통을 잇고 있기 때문에 선사라는 칭호가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그가 선불교에 남긴 족적이 참으로 뚜렷하기 때문이다. 범일국사는 굴산사에 주석하면서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문의 종조가 되었다.

강원도에는 통일신라 말 구산선문의 문파를 만든 스님이 세 분 주석했는데 가지산문의 종조인 양양 진전사의 도의국사와 사자산문의 종조인 영월 흥녕사(현 법흥사)의 도윤국사, 그리고 범일국사가 이들이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구산선문 중 가장 융성했던 문파는 굴산사를 본찰로 했던 범일국사의 사굴산문으로, 범일국사의 영향력은 강릉을 중심으로 북으로는 고성, 남으로는 울진 평해에까지 미쳤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범일국사는 이러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동해 삼화사, 강릉 신복사 등을 창건하기도 했다.

최근 연구자들은 사굴산문의 법맥이 후대에도 꾸준히 이어져 한국선불교의 중심이 되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려후기에 수선사 운동을 일으키며 한국불교에 일대 바람을 몰고 온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사굴산문이 배출한 스님인 점은 이를 잘 입증해 준다.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1206~1289년)이 14세의 나이에 강원도 양양 진전사에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가 훗날 저술한 `삼국유사'에서 낙산사, 월정사 등 진전사 인근 대찰들의 역사와 설화를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진전사에서 삭발염의한 뒤 주변 사찰을 순례하며 수행자로서의 소양을 길렀던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불교에 갓 입문한 푸릇푸릇한 시절에 들은 인근 대찰의 신이한 창건설화와 고승들의 일대기는 그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다가 훗날 `삼국유사'에 그대로 옮겨졌다.

이러한 행적을 지닌 일연스님이 강릉을 중심으로 동해안 일대에 두루 영향을 미쳤던 범일국사를 `삼국유사'에 등장시킨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일연스님은 자신보다 400여 년 앞서 살다간 범일국사의 행적과 신이한 설화를 상세히 전하고 있다. 이처럼 굴산사, 진전사, 낙산사, 월정사 등이 한국불교사의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에는 일연스님이 이곳 진전사로 출가한 인연도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실존 인물이었던 범일국사가 대관령 국사성황신으로 좌정하게 된 시기나 경위에 대해서는 연구자들마다 견해가 분분하다. 그러나 범일국사가 대찰이었음을 추정케 하는 굴산사를 중심으로 선불교를 부흥시키며 영동 일대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 받아온 점, 오랫동안 이 지역을 실제적으로 통치해온 지방 호족들과 일정한 연관이 있는 점 등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고려사' 열전에는, 명주의 장군 김순식이 고려 태조 왕건이 신검을 토벌할 때 군사를 이끌고 도와준 기록이 나온다. 이때 왕건이 김순식에게 이승(異僧)이 갑사(甲士) 3,000 명을 데려와 자신을 돕는 꿈을 꾸었다고 말하자, 김순식이 그 꿈은 자신이 출정할 때 대관령에 이상한 승사(僧祠)가 있어 제사를 지냈는데 아마 그것을 꾼 것이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강릉단오제의 연원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이 기록에서 승려와 관련된 이승과 승사라는 단어는 범일국사가 성황사의 신격으로 모셔질 수 있는 근거로 대두되어 왔다.

범일국사가 명주도독의 요청으로 굴산사에 주석하게 되었다는 `조당집'의 기록은 그가 당시 강한 지역성에 근거하여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강릉 지방 호족들의 존경을 받아왔음을 보여준다. 그의 법제자로 강릉 보현사를 창건한 낭원대사와 호족세력의 중심이었던 김순식이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점은 범일국사가 입적 후에도 지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범일국사의 영향력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져 당시 강릉시내에 있었던 대성황사의 12성황 중 한 분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범일국사는 이러한 추앙 속에 지역민들에 의해 신성화되어 재탄생하게 된다. 그의 탄생담을 요약하면 대략 이러하다. “옛날 학산리에 살던 한 처녀가 물을 길으러 우물로 가 바가지에 물을 뜨니 해가 담겼다. 처녀는 그 물을 마시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아비 없는 자식이기에 몰래 마을 뒷산 학바위 밑에 버렸다. 걱정이 되어 며칠 뒤에 가 보니 학이 붉은 구슬을 입에서 내어 먹이면서 돌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산모는 비범한 아이가 될 것이라 믿고 아기를 데려와 키우게 되었다. 훗날 이 아이는 당(唐)나라에 유학하여 범일국사라는 고승이 되었고, 죽은 뒤에는 대관령 국사성황이 되었다. 해가 뜬 물을 마시고 태어났다고 하여 뜰 범(泛)자를 써서 범일국사(泛日國師)라고 부르기도 한다.”

범일국사의 탄생담은 실존 인물이 신격화되면서 지역민들의 상상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신화라 할 수 있다. 그가 잉태된 우물과 학바위 등은 당연히 성소가 되어 지금도 보호받고 있다.

범일국사의 제자인 낭원대사는 스승이 열반에 들자 “배움 끊어진 슬픔이 훨씬 더했고 스승 잃은 한스러움에 뼈가 저렸다(지장선원 낭원대사 오진탑비).”라고 슬퍼했다. 일찍이 낭원이 깨달음을 구하러 찾아왔을 때 범일국사는 “어찌 그리 늦었는가. 오랫동안 너를 기다렸다”라며 제자를 반긴 바 있다. 스승은 제자를 알아보고, 제자는 또 그 스승을 깊이 존경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로 사굴산문의 법맥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신라 효공왕 때의 문신으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빈공과에 합격한 바 있는 당대의 문장가 박인범은 `범일국사영찬(梵日國師影贊)'에서 “최상의 법은/ 깊고 깊어 아득하네/ 맑고 밝은 달이 흰 것과/ 장강이 맑은 것은/ 이미 상(相)이 있지만/ 이는 이내 형(形)이 없네/ 형이 없는 그 형을/ 단청으로 나타내리”라고 읊었다. 범일국사의 법력이 이미 당대 최상에 이르렀음을 알게 해준다.

한국불교사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역사와 문학, 그리고 신화로까지 펼쳐지는 범일국사의 일대기는, 일체의 기교를 거부하는 굴산사의 당간지주처럼 언제나 맨얼굴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끝을 알 수 없는 그의 일대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홍섭 시인 프로필

■ 1965년 강릉 출생. 동국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 1990년 `현대시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각각 등단.

■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가도가도 서쪽인 당신' `터미널'

■ 산문집 `곱게 싼 인연'

■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시인시각 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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