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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인정한 통합 · ‘자각의 힘’ 일깨운 교육 강조(강원도민일보)2013.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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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5-28 09:44 조회8,80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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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인정한 통합 · ‘자각의 힘’ 일깨운 교육 강조
탄허대종사 인재양성·교육이념 시대정신
다양성 차별 아닌 화해·조화 역설
불교 외전 이해·인식… 외연 넓혀
“탄허 역경 저변엔 교육결사 정신”
2013년 05월 22일 (수) 최경식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오대산 월정사(주지 퇴우 정념)는 올해 한국불교의 대강백(大講伯) 탄허 스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 중이다. 지난 2월 탄허 스님 탄신 100주년 다례제를 봉행하고 탄허 증언집과 유묵집 등을 발간한데 이어 4월에는 ‘2013년 한국불교학회 춘계학술대회’를 개최해 탄허 스님의 사상과 업적 등을 재조명해 관심을 모았다. 지난 4월 26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월정사와 한국불교학회 주최로 ‘탄허대종사의 인재양성과 교육이념의 시대정신’을 주제로 열린 학술대회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싣는다.


 

   
▲ 지난 4월 26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탄허대종사 탄신 100주년 불교학술대회’ 모습. <사진제공=월정사>


■ 세계속 화해·조화 강조

자현(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스님은 ‘탄허스님의 미래인식과 현대사회의 다양성’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탄허의 예지에 국민적인 통합과 미래의 비전제시가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급속한 가족의 해체와 개인의 대두 및 가치평등의 관점에 따른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사회적인 혼란과 양상을 파생하고 있는 현 시대에서 ‘국민적 통합’이 주는 메시지가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은 “탄허의 사상에는 예지의 문제를 넘어서는, 화엄이라는 모든 가치들의 다양성을 용인하는 완성의 문제가 존재한다”며 “화엄은 잡화엄식(雜華嚴飾)을 의미한다. 이는 다양성 그 자체의 조화와 완성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어 “탄허가 제시하는 ‘국민적인 통합과 미래의 비전제시’와 ‘화엄을 통한 다양성의 완성’은 시대문제를 극복하는 훌륭한 대안이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며 “탄허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통한 차별이 아닌 세계 속에서의 화해와 조화를 역설한다”고 설명했다.



■ 인재양성 온 힘 쏟아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탄허스님의 인재양성과 교화활동’이란 주제발표에서 탄허에게 교육은 가장 큰 기쁨이었고, 도(道)와 조우한 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암의 참선과 경학에 대한 균형적인 조화, 계율에 대한 청정성을 이어받아 탄허는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줬다고 말했다.

그는 “탄허 스님의 교화활동은 인재양성이라는 하나의 말로 집약될 수 있을 정도로 후진을 길러내는 교육에 온정신을 쏟아부었다”며 “자신의 방대한 역경사업 조차 모두 인재양성을 위한 이력본을 역주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날 교육이 탄허의 삼교회통 정신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불교는 도교이면서 유교이고, 불교를 불교답게 하는 것은 삼교가 설파하고 있는 자각의 힘을 깨닫는 것”이라며 “자각의 힘을 일깨워주는 것이 교육이고 탄허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유불선 전수 道와 만남

김광식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는 ‘탄허스님의 교육이념과 그 정신’을 주제로 발제, 탄허의 교육은 불교를 정점으로 한 동양사상의 ‘생활화’와 ‘현재화’였으며, 그 당대의 시대성과 역사상을 통섭한 ‘지성의 구체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탄허의 교육 정신을 7가지로 요약했다. 그는 첫째로 탄허의 교육에 대한 지성과 실천은 1955년부터 그가 입적했던 1983년까지 30여년간 지속됐다며, 탄허교육의 내용은 유불선의 전수를 통한 도(道)와의 만남이었다고 설명했다.

셋째로 탄허교육의 저변이 됐던 유불선을 대중들에게 전수함에서는 불교가 중심이었으며, 넷째로 탄허교육 지표로 부각됐던 도의적 인재양성은 탄허의 동양사상에 대한 신뢰에서 나왔다고 봤다. 또 탄허의 교육, 도의적 인재양성은 인재양성의 기관 설립 및 운영을 촉발했으며, 탄허교육은 승속을 막론하지 않는 개방성을 가졌고 미래의 한국, 한국인에 대한 신뢰에서 배태됐다고 주장했다.



■ “1929년 출가 결심” 주장

   
 

이원석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는 ‘출가 이전 탄허의 전통학술 수학과 구도입산의 궤적’이란 주제발표에서 탄허가 중국 북송의 학자인 소옹의 ‘황극경세서’를 읽고 시대를 초월한 사업에 뜻을 두기 시작한 것에 주목했다.

그는 “황극경세서는 유불선을 합일하면서도 도를 추구했고, 유가에서 도가로의 학술적 전환과 조선의 후천개벽사상은 실로 모두 여기에서 비롯됐다”며 “탄허의 이같은 행보는 부친의 권유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보에서 노장학의 시작을 20세인 1932년으로 봤고, 이로부터 도(道)라는 새로운 주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 탄허의 출가결심이 비로소 이뤄진 것으로 시사했다”며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빠른 1929년 무렵으로 수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탄허의 입산출가는 만주사변과 무단통치기로의 이행이라는 시대적 배경 등과도 일정한 관련이 있다”며 “일제강점기 상원사와 월정사를 중심으로 오대산 불교계의 동향과 방한암과 탄허의 교류와 인도 등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국가 도움없이 경전 번역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탄허의 경전번역의 의의와 강원교육에 끼친 영향’을 이란 주제발표를 통해 “탄허는 전통강원의 교과서를 비롯해 한국불교에서 중시하는 소의경전은 거의 완역, 간행했다”며 “그 방대한 양을 국가나 종단의 도움 없이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번역, 간행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허가 전통강원의 교재이자 한국불교 소의경전을 완역, 간행한 배경과 목적에 대해서는 “1956년 4월 인재양성을 위해 월정사에 설립한 오대산 수도원의 교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고 피력했다. 그는 “탄허의 역경의 저변에는 인재양성이라는 교육결사 정신이 깊이 내재해 있었다”며 “이는 탄허 스님이 평소 공자가 만년에 교육과 제자 양성에 전심했던 불세지사업을 높이 평가했던 점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탄허의 인재양성을 위한 결사정신과 후학을 위한 중생교화 정신이 아니고서는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을 완역 및 간행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 주변국 관찰 비전 제시

고영섭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탄허의 주역선해 역주와 노·장자 역해-탄허의 삼현관’이란 주제를 통해 “탄허 택성은 불교 내전 뿐만 아니라 불교 외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불도유 삼절의 계보를 이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의 외연을 넓혔다”고 발제했다.

또 “유교와 도가의 외연도 넓혀 이 분야 연구자들에게 큰 시선을 열어주었다”며 “종교인이자 사상가였던 탄허는 한반도의 미래와 동아시아 삼국 및 미국 등 주변국들의 변화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관찰해 비전을 제시해줬다”고 밝혔다.

탄허가 젊은 시절부터 내전은 물론 외전까지 아우르며 수많은 전적을 현토 역해하고 강술·강론한 것에 대해서는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 교재의 편찬이 무엇보다도 급선무임을 자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탄허가 펴낸 수많은 내전의 현토구결 역해와 외전인 ‘주역선해’ 역주와 ‘장자남화경’ 강술 역해 등은 한국 불교와 한국 사상 연구의 기초자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탄허는 이 시대에 새롭게 평가받아야 할 주요한 인물임이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최경식 kyungsik@kado.net


■ 탄허 스님은
탄허는 법호이며 법명은 택성(宅成)이다. 1913년 전라북도 김제군 만경읍 대동리에서 태어났다. 기호학파 최익현 계통의 이극종으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도학에도 상당히 밝았다. 15세부터 도(道)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고승 한암과 서신문답을 주고받은 뒤 1934년 22세의 나이로 오대산 상원사에서 출가, 이후 한암의 밑에서 15년 동안 수행했다.

오대산 월정사 조실과 연수원장을 지냈으며, 동국대 대학선원 원장(1964∼1971)을 지냈다. 1967년에는 조계종 중앙역경원 초대원장이 되어 불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83년 월정사 방산굴에서 나이 71세, 법랍 49세로 입적했다. ‘화엄론’40권과 ‘보조법어’, ‘사교(四敎)’, ‘사집(四集)’, ‘초발심자경문’, ‘반야경’ 등 많은 불전을 번역했다. 인촌문화상을 수상했고, 입적 후 국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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