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말을 걸다] 최승자 ‘장마’ (불광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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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22-09-07 09:17 조회2,362회 댓글0건본문
오대산 월정사에 내리는 빗줄기
장마
_최승자
넋 없이 뼈 없이
비가 온다
빗물보다 빗소리가 먼저
江을 이룬다
허공을 나직이 흘러가는
빗소리의 강물
내 늑골까지 죽음의 문턱까지
비가 내린다
물의 房에 누워
나의 꿈도 떠내려간다
(최승자 시집, ‘이 시대의 사랑’, 문학과지성사 1981)
[감상]
장마의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작품입니다. 하염없이 비가 내릴 때 우리도 최승자 시인과 같은 감상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한없이 침잠하는 느낌이지만, 그런 시심도 괜찮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선사의 마음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뭉실뭉실 구름이 산당(山堂)을 지나가네(英英玉葉過山堂)
나뭇가지 절로 울고 새들도 바빠지는데(樹自鳴條鳥自忙)
눈 뜨자 어둑어둑 빗발이 지나가누나(開眼濛濛橫雨脚)
향 사르고 단정히 앉아 푸르름 바라보네(焚香端坐望蒼蒼)
-함허득통(涵虛得通, 1376~1433), ‘빗속에서(雨中)’
선시에서는 빗발이 성글게 지나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비가 세차게 쏟아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향 사르고 앉아 저 먼 산을 바라보는 것, 그것으로도 마음이 한결 맑아집니다.
태풍 피해 보신 분들의 빠른 복구를 기원합니다.
동명 스님
조계종 교육아사리. 1989년 계간 『문학과사회』를 통해 등단, 1994년 제13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인으로 20여 년 활동하다가 지난 2010년 출가했다. 저서로는 시집 『해가 지지 않는 쟁기질』(제1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미리 이별을 노래하다』, 『나무 물고기』, 『고시원은 괜찮아요』, 『벼랑 위의 사랑』과 산문 『인도신화기행』, 『나는 인도에서 붓다를 만났다』 등이 있다.
출처 : 불광미디어(http://www.bulkw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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