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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길에서 탄허 대종사의 사자후를 듣다 (법보신문)20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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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2-24 12:09 조회9,44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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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길에서 탄허 대종사의 사자후를 듣다
월정사, 탄허 대종사 탄신 100년 다례재
탄허스님 문도 등 사부대중 300명 동참
전국 98개 선원서 2217명 동안거 해제
2013.02.24 10:44 입력 | 2013.02.24 10:59 수정

 

▲월정사는 2월24일 임진년 동안거 해제와 탄허 대종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사부대중 300명이 동참한 가운데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우리가 우주 삼라만상 속에서 보면 차별이 존재하지만 허공자리에 앉아서 볼 것 같으면 우주 삼라만상이 한 덩어리가 됩니다. 그렇듯 팔만대장경의 교리도 그 학설이 한정이 없지만 화합의 차원에서 보면 한 덩어리인 것입니다. 일체 현인이니 성인이니 하는 선과 악은 한이 없지만 부처님 자리에 이르러서는 모두 한 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2월24일 오전 월정사 적광전에는 탄허 대종사의 육성법문이 흘러나왔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풀어내는 자상한 스님의 육성법문은 지난 석 달간 안거를 마치고 이제 막 만행 길에 오르는 후학들에게 진리를 향한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후학들을 향해 던지는 스님의 사자후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임진년 동안거 해제날이자 탄허 대종사의 탄신 100주년을 맞은 이날 오대산 월정사는 탄허 스님의 탄신을 기리는 다례재와 함께 스님의 수행일화를 담은 책 ‘방산굴의 무영수’ 봉정식을 봉행했다. 다례재와 봉정식에는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을 비롯해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 혜거 스님, 월정사 선덕 각수 스님, 동국대 이사 삼보 스님 등 문도회 스님들과 최문순 강원도지사, 민병희 강원교육감, 권성동 국회의원, 이석래 평창군수 등 사부대중 300여명이 동참했다.


탄허 스님은 근현대한국불교사에서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추앙받았던 인물이었다. 선과 교를 겸비한 당대 최고의 강백이었고 유불선에도 두루 밝았으며 미래를 예지하는 탁월한 혜안을  갖고 있었던 스님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스님은 현재 조계종 강원에서 교재로 사용되는 경론의 대부분을 한역했을 뿐 아니라 화엄경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 번역한 ‘신화엄경합론’을 발간하는 등 역경불사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가 하면 탄허 스님은 교육이야말로 불교의 명운을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오대산 수도원과 삼척 영은사 수도원을 잇따라 세워 스님은 물론 재가자까지 가리지 않고 가르치는 등 후학양성에 정성을 기울였다. 그 결과 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각성, 통광, 무비 스님 등은 현재 한국불교를 이끄는 대강백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 발간한 ‘방산굴의 무영수’는 이처럼 한국불교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탄허 스님의 수행 일화가 올곧이 담긴 책이다. 특히 김광식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가 스님의 도반에서부터 법제자, 직계제자, 재가불자까지 인연을 맺었던 총 65명의 기억을 더듬어 스님이 걸었던 발자취를 하나하나 되짚은 것이다.


지근거리에서 시봉했던 상좌 스님들에 따르면 탄허 스님은 입적하는 그날까지 수행자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강의로 보내면서도 틈을 내 경전번역에 매진했고, 길을 걷으면서도 늘 입으로는 염불을 했다. 특히 스스로에 대해 엄격해 1분 1초도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 한 번 정한 약속은 반드시 지켰고, 계획했던 일은 언제나 목숨처럼 지켜졌다. 이런 한결같은 모습은 마치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해가 지는 것 같았다고 상좌들은 기억했다.  


이처럼 스스로에게 철저했던 까닭에 스님은 후학들의 나태함에 관해서는 결코 너그럽지 않았다. 삼척 영은사 수도원 시절 스님을 시봉했던 인보 스님에 따르면 탄허 스님은 단 10분의 여유도 용납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스님이 칠판에 빼곡히 적은 한문을 정리하는 데에만 서너 시간이 걸렸다. 또 복습과 예습, 스님이 내주는 숙제까지 완전히 마치려면 하루가 꼬박 걸렸다. 여기에 사중에서 정해진 소임까지 하고 나면 정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때가 많았다. 인보 스님은 “그 당시에는 스님이 너무 힘들게 공부를 시킨다고 불평을 했었다”며 “그러나 돌이켜보면 여유가 생기면 잡념이 생길 것을 염려한 스님의 배려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회고했다.

 

▲탄허 대종사 탄신 100주년 다례재에서 문도대표 스님들이 헌다와 헌화를 하고 있다..

 


유불선을 모두 섭렵할 만큼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님은 배움의 끈을 놓지 않았다. 특히 대학교수들이 오대산을 찾을 때면 스님은 언제나 주석처에서 내려와 상좌들과 함께 강의를 청해 듣기도 했다. 마땅히 출가수행자라면 배움을 멈춰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1965~69년 탄허 스님을 시봉했던 삼보 스님은 “큰스님께서는 늘 출가수행자의 가장 큰 덕목을 공부에 두었고, 이를 상좌들에게도 끊임없이 강조했다”며 “이런 남다른 배움의 열정은 큰스님이 불교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는 비결이 됐다”고 설명했다. 


월정사는 탄허 스님 탄신 100주년과 열반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선양 사업을 준비 중에 있다. 특히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례재를 시작으로 4월 ‘탄허 스님의 인재양성과 교육이념의 시대정신’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이 개최된다. 또 탄허 스님의 유묵집 발간 및 특별전 등이 마련되며 5월에는 틱낫한 스님과 함께 하는 ‘치유·행복·상생’명상수행학교를 개설된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탄허 스님의 고뇌와 행보, 역사는 한국현대사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위대한 발자취였다”며 “그럼에도 오대산 월정사와 문도회는 그동안 탄허 큰스님을 선양하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이제라도 큰 스님을 선양하고 관련 기록들을 정리하는 작업에 나설 것”이라며 “이를 통해 스님의 역사와 사상, 지성이 올곧게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안거 결제기간동안 월정사 만월선원에서 용맹정진에 임했던 선방대중들이 해제법회 이후 만행에 나서고 있다.

 


한편 이날 월정사 만월선원을 비롯해 전국 98개 선원에서 일제히 동안거 해제 법회를 진행했다. 법회를 끝으로 동안거 결제를 마친 스님들이 일제히 만행 길에 올랐다. 조계종 선원수좌회는 이번 동안거 결제 동안 전국 98개 선원에서 비구·비구니 등 총 2217명의 대중들이 정진했다고 밝혔다.


월정사=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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