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 가르침 세상 나아갈 지남으로”(불교닷컴)2013.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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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02-24 12:37 조회8,716회 댓글0건본문
“탄허 스님 가르침 세상 나아갈 지남으로” | ||||||||||||||||||||||||
오대산 월정사, 탄신100주년기념다례·‘방산굴의 무영수’ 봉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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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이도(天下無二道). 천하에 두 가지 길이 없다. 이런 것을 깨닫는 성인에게는 두 마음이 없다는 탄허 스님(1913~1983)의 말이다. 한국불교 근현대 최고 학승 탄허 스님은 유·불·선 삼교에 두루 능통했던 선지식이었다.
탄허 스님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된 24일 오대산 월정사는 탄신 100주년 다례재와 스님의 수행·삶에 대한 증언집 <방산굴의 무영수> 봉정식을 봉행했다. <방산굴의 무영수>는 문헌 중심의 법어집 <방산굴법어>과 달리 스님의 정신, 사상, 수행가풍을 스님과 인연 있던 출·재가자 65명 증언을 채록·정리한 수행일화집이다. 월정사, 한암문도회, 김광식 연구교수(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는 지난 2011년 8월부터 각성·통광·무비·법등·성파·명성·계호 스님, 김희옥 총장(동국대), 김동건 변호사 등으로부터 증언을 듣고 정리한 원고 17만 장을 추려 <방산굴의 무영수>에 담았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간행사에서 “탄허 스님의 족적은 오대산 역사일 뿐만 아니라 조계종단사 및 근현대 한국불교사였다”며 탄허 스님을 ▷오대산 법통의 주역 ▷유불선 회통 ▷역경의 대가 ▷교육 실천자 ▷인재양성 강조한 사상가 ▷인류사회 미래 진단한 철학가였다고 평가했다. 스님은 “탄허 스님을 탄신 100주년을 맞아 역사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와 후학들의 가슴 절절한 인연 이야기를 담아 <방산굴의 무영수>를 편찬했다”며 “한암문도회와 월정사는 탄허 스님 자료를 지속적으로 수집·정리해 스님의 수행정신과 사상이 혼미한 시대에 세상이 나아갈 지남이 되도록 선양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암문도회 운영위원장 월면 스님은 봉정사를 통해 “<방산굴의 무영수>가 탄허 스님의 정신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연구 활성화의 촉매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다례재와 봉정식에는 혜거 스님(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 각수 스님(월정사 선덕), 삼보 스님(동국대 이사)과 월정사·상원사·지장암 등 오대산 산중 사암 대중, 명호근 前 대불련총동문회장, 김동건 변호사, 최문순 강원도지사, 이석래 평창군수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에 앞선 불기2556년도 동안거 해제법회에서는 탄허 스님의 1981년 미국 고승대법회 법문으로 해제법어를 대신했다. “우리가 삼라만상 속에서 보면 이 차별은 어떻게 정의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지만은 허공자리에 앉아서 볼 것 같으면 삼라만상이 한 덩어리 되고 마는 것입니다.”
행사 후 월정사 만월선원 20명. 상원사 청량선원 20여 명, 지장암 기린선원 20여 명 등 오대산에 방부 들였던 80여 운수납자가 한 철 공부를 마치고 만행에 나섰다.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주지 정념 스님은 “탄허 스님은 100년 전 허공을 토해 내며 세상에 오셨고 30년 전 허공을 삼키고 원적삼매에 드셨다”며 “허공을 토하고 삼킨 한물건을 바로 알면 오늘 다례에서 스님의 진신을 친견할 것이고, 한물건을 모른다면 스님의 그림자만 좇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정사는 이날 행사를 시작으로 다양한 탄허 스님 선양 사업을 전개한다. 스님의 수행일화집에 이어 유묵·법어·사진을 모은 책을 차례로 발간한다. 오는 4월 26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는 스님의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가, 4월부터 내년 2월까지는 서울·공주·춘천 등에서 탄허 스님과 은사 한암 선사의 유묵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오는 5월 3~7일에는 세계적인 불교 수행자 틱낫한 스님이 ‘치유ㆍ행복ㆍ상생’을 주제로 진행하는 명상수행학교도 예정됐다. 탄허 스님은 예지력이 뛰어났던 것으로 유명하다. 월정사에서 수행하던 1949년, 개미들이 서로 싸워 법당 등에 수백 마리씩 죽어 있는 것을 보고 6·25전쟁 발발을 예견해 상좌들과 미리 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를 예견하기도 했다. 스님은 정신 기강을 강조하며 바른 정치를 희구하는 사상가였다. 스님은 “정치가 국민 의사를 묵살하고 권력 쟁취에 휘말려 싸우는 것은 귀신 혓바닥 장난보다 못한 짓”이라고 경계했다. 그러면서 “지도자가 먼저 국민에게 신뢰를 줘야 법(法)과 영(令)이 바로 서고, 나라의 기강도 잡힌다.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고, 허물을 지적하면 기꺼이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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