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단풍 숲길 만행 (여성동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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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11-16 09:44 조회10,616회 댓글0건본문
오대산 단풍 숲길 만행 |
발그레 물든 산에 눈꽃 피고 지고 |
글·김화성 동아일보 스포츠레저 전문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
월정사 들머리 전나무 숲에 불이 붙었다. 단풍잎들이 노릇노릇 알맞게 익었다. 껑충 큰 전나무 푸른 잎 틈새로 키 작은 활엽수들이 울긋불긋 수줍게 숨어 있다. 앙증맞다. 이 단풍은 하루 25km 속도로 남하한다. 곧 태백산~소백산~월악산~속리산의 산줄기를 따라 지리산으로 번질 것이다. |
오대산은 5장의 연꽃잎으로 둘러싸여 있다. 비로봉(해발 1563m),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이 그렇다. 꽃술에 해당하는 적멸보궁(1150m)은 중대(1050m)에서 비로봉을 향해 20분쯤 올라가다 보면 나온다. 부처님 사리를 모신 곳이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포효하는 지형’이다. 부처님 사리는 바로 용의 정수리 부분에 안치됐다.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양산 통도사, 태백 정암사, 영월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과 함께 한국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다.
오대산 동서남북 산허리와 그 한가운데에는 보살들이 살고 있는 다섯 ‘대’가 있다. ‘대(臺)’는 불상을 받치고 있는 좌대나 같다. 동대 관음암에는 1만 관세음보살, 서대 수정암에는 1만 대세지보살, 남대 지장암에는 1만 지장보살, 북대 상두암에는 미륵불이 머무른다. 중대 사자암은 1만의 문수보살이 있는 곳이며 비로자나불을 모신다.
한마디로 오대산은 부처님이 꽃술 부분(적멸보궁)에서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고 있고 이를 중심으로 중대, 동대, 서대, 남대, 북대에 살고 있는 보살들이 부처님을 우러러보며 설법을 듣는 형상이다.
월정사~상원사 선재길 9km, 쉬엄쉬엄 3시간
서대 수정암(水精庵·염불암)은 고즈넉하다. 사위가 쥐 죽은 듯하다. 서대는 오대산 5대 암자 중 서쪽에 은근슬쩍 숨어 있는 ‘너와지붕 암자’다. 가는 길도 지도에 뚜렷이 나와 있지 않다. 오직 알음알음으로 불자들과 스님들의 발길이 이어질 뿐이다. 조선 시대 한강의 시원으로 알려진 우통수(현재 시원은 검룡소) 옆에 있다. 하얀 눈 모자를 쓴 동대산 머리가 눈앞에 수굿하다. 땡그랑~때애앵 땡땡~ 풍경 소리가 아득하다. 암자 주위 남새밭엔 고추, 배추, 방울토마토가 토실하다. 겨울용 장작더미가 정갈하게 쌓여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 따라 걷는 길은 ‘깨달음의 길’이다. 고려 말 나옹선사(1320~76), 한암 스님(1876~1951), 탄허 스님(1913~83)이 오가던 길이다. 옛날부터 수많은 스님들의 만행(卍行) 코스였다. 화전민들이 밭일 하러 오갔던 오솔길이기도 했다.
요즘 그 길은 선재길로 다시 다듬어져 저잣거리 사람들도 오갈 수 있다. 대신 승용차는 상원사나 월정사 주차장에 두고 갈 일이다. ‘선재’는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에서 비롯된 이름. 선재동자는 지혜를 구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떠돌며 53명의 현인을 만나 깨달음을 얻었다. 선재길은 ‘지혜의 길’이다.
선재길은 월정사(해발 660m)에서 상원사(해발 900m)로 거슬러 오를 수도 있고, 반대로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물을 따라 내려올 수도 있다. 9km 거리. 쉬엄쉬엄 노닐며 가도 3시간이면 너끈하다. 전나무 숲길(1.2km)에서는 월정사 부도 밭을 지나 곧바로 이어진다.
선재길은 오대천 골짜기를 따라 구불구불 가르마처럼 나 있다. 월정사 반야교를 건너 회사거리에서 시작된다. 회사거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목재 회사가 있었던 곳. 한때 화전민 3백60여 가구가 살던 너와집 동네였다.
1 10월 16일 서대 수정암 쪽에서 바라본 동대산은 하얀 눈 모자를 쓰고 있다.
2 선재길을 걸으면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 소낙비가 쏟아진다.
3 해발 1563m를 알리는 오대산 비로봉 정상의 표지석.
4 오대산에 첫눈이 내려 나무마다 눈꽃이 피었다.
* 기사 원문보기 http://woman.donga.com/docs/magazine/woman/2013/10/28/201310280500032/201310280500032_1.html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단풍나무 숲길 만행(卍行). 바람이 불 때마다 우수수! ‘나뭇잎 소낙비’가 쏟아진다. 다람쥐가 멀뚱멀뚱 입을 주억거린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도무지 피할 생각을 않는다. 자갈길은 낙엽으로 푹신하다. 푸른 조릿대와 붉은 낙엽 더미가 한데 버무려져 넉장거리로 누워 있다. 돌돌돌 돌을 감고 흐르는 물소리, 웅얼웅얼 끝없이 중얼거리는 바람 소리, 삐삐! 종종! 뭔지 종종걸음으로 바쁜 새소리…. 계곡물 웅덩이엔 나뭇잎 배들이 빙빙 떠돈다.
계곡 벼랑길을 비스듬히 막은 채 누워 있는 나무 터널을 만난다. 사람들이 허리를 굽혀 그 나무 아래를 지난다. 거제수나무 하얀 껍질이 부얼부얼하다. 옛 사람들은 그 껍질을 벗겨 편지지로 썼다. 나무껍질 가을 편지다. 섶 다리 위에 사람들이 오간다. 섶은 솔가지나 작은 나뭇가지를 말한다. 물푸레나무나 버드나무로 다리 기둥과 상판을 엮고, 그 위에 섶과 흙을 덮은 게 섶 다리다. 한여름 큰물 나면 한순간에 휩쓸려가는 어설픈 임시 다리다.
오대산 북대 상두암 부근엔 나옹선사가 좌선을 하던 나옹대가 남아 있다. 큰 바위에 작은 돌을 쌓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았다. 나옹선사가 남긴 시가 마음을 울린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1 너와지붕을 머리에 인 서대 수정암과 암자 주변 남새밭.
2 상원사 문수전은 조선시대에 건립됐으나 화재로 소실되고 1947년 금강산 마하연 건물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3 수정암 뒤란 나무굴뚝에서 푸른 연기가 포르릉 포르릉 솟는다.
◆ 올해는 탄허 스님 탄생 100주년
2013년은 탄허(呑虛, 1913~1983) 스님 탄생 1백 년 되는 해다. 탄허 스님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 역학, 노장 철학 등 유불선에 두루 눈이 밝았다. 평생 불교 경전 연구와 번역에 매달렸다. 1975년에 간행된 ‘신화엄경합론’이 좋은 예다. 원고지 6만2천5백 장 분량으로, 번역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불가에서 ‘원효·의상 대사 이래 최대의 불사’로 평가받았다.
일반인들에게 탄허 스님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로서 더욱 친숙하다. 스님은 동양의 역학 원리로 앞날을 내다봤다. 실제 6·25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고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에서 경남 양산 통도사로 거처를 옮겼다. 1968년 경북 울진 무장공비 침투 한 달 전엔, 번역 중이던 ‘화엄경’ 원고를 오대산 월정사 암자에서 삼척 영은사로 옮겼다. 나중에 월정사로 돌아와 보니, 암자 주변은 쑥대밭이 돼 있었다. 오대산으로 도주한 공비를 소탕하느라 수많은 참호가 파여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운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오래지 않아 위대한 인물이 나와서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평화 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문화가 전 세계의 귀감이 될 뿐더러 전 세계로 전파된다고도 했다. 생전 탄허 스님의 예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계 인구의 60~70%가 소멸되고, 바다가 솟아나 육지의 면적이 지금의 3배로 늘어날 것이다. 지진에 의한 핵폭발로, 핵보유국들은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본다. 둘째, 일본 영토의 3분의 2가 침몰되고, 우리나라는 동남해안 쪽 1백여 리 땅이 피해를 입을 것이다. 하지만 서해안 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 영토는 오히려 늘어난다. 셋째, 중러전쟁과 중국 본토의 균열로 만주와 요동 일부가 우리나라로 편입된다. 작은 섬나라로 졸아든 일본은 우리나라 영향권 내에 들어온다. 한미 관계는 더욱 밀접해진다.
*교통 승용차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부나들목에서 빠져 월정사로 가면 된다. 서울에서 버스를 이용하려면 동서울터미널(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진부행을 탄다. 소요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다. 진부에선 월정사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7시 40분까지 하루 12회 있다. 이 중 상원사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6회. 월정사까지는 25분 걸린다. 월정사~상원사 간 거리는 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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