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에세이/1월 25일] 두두물물(頭頭物物), 세상의 모든 길(한국일보) 2014.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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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2-04 09:51 조회9,244회 댓글0건본문
[토요 에세이/1월 25일] 두두물물(頭頭物物), 세상의 모든 길
새벽이면 늘 나무에게로 달려갔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숲은 고요하고 청신한 바람을 머금고 있었다. 두 팔을 활짝 열어 600년의 수령을 버티었다는 전나무를 부둥켜안고 있으면 생명이 다한 나무인데도 알싸한 침엽향과 은은한 온기가 느껴졌다. "애쓰셨습니다."란 마음속 호흡을 나무의 수피에게 불어넣고 있을 때, 누군가 등 뒤로 다가와 속삭였다. "무슨 소리가 들려요?" 수행의 철칙이던 묵언을 깨고 그녀와 내가 나눈 첫 대화였다.
행자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오대산의 월정사로 출가한지 보름여가 지났다. 23명의 행자들과 한방에서 먹고 자며 똑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 제한된 공간에서 복닥거리며 엄정하고도 혹독한 일정을 함께 나누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산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출가 전 이야기는 말하지 말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다스리며 수행에 몰두하는 까닭은 각자 형편은 다르더라도 그 근원은 모두 같을 것이다. 안일과 타성에 젖은 삶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온몸을 뒤흔들었을 간절함이 없었더라면, 방황과 고통을 딛지 않았더라면 이곳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120ℓ 물통을 가득 채우는 것이 이 공동체를 위해 내가 맡은 소임이다. 수행 초기엔 속도와 효율을 내세우며 요령을 부렸다. 우두커니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주전자 두 개로 수돗가를 동시에 점령하거나, 몇 번에 나눠 채워야 할 물통을 한꺼번에 들이붓겠다며 주전자 뚜껑을 억지로 닫았다. 그렇게 뺀질거렸더니 아뿔싸, 수돗가엔 홍수가 났고, 뒤뚱거리던 무게중심은 나동그라졌으며, 스님께는 칠칠치 못하다고 경책을 받았다. 그 이후론 물을 긷는 일이 훨씬 즐겁고 수월해졌다.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순간, 주전자 든 팔을 고요히 지탱하는 순간, 한 걸음 한 걸음을 교차해 내딛는 순간, 하나의 일에 전체의 찰나와 온 마음을 깃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수행 일정이 중반으로 접어들자 드디어 악명 높은 '발우공양'이 시작되었다. 배불리 양껏 먹는 것보다 남김없이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 식사법은 자체적인 세정, 정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식사를 마칠 때쯤 숭늉이 돌면 단무지를 수세미 삼아 그릇의 기름기를 깨끗이 닦아낸다. 부유물과 기름기가 둥둥 떠 있는 숭늉을 꿀꺽 마신 후엔 다시 맑은 물을 부어 그릇을 꼼꼼히 씻는다. 규율과 순서를 엄격히 지켰더라면, 남아있는 물은 맑디맑을 것이다. 23명이 설거지한 이 물을 한데 모았을 때 밥알 한 톨, 고춧가루 하나, 깨 한 알이라도 남아있으면 모두가 나눠 마셔야 한다. 쌀뜨물과 김 가루가 떴다는 이유로 몇 번씩이나 설거지물을 되돌려 받았다. 두 명의 도반이 웩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수행기간 동안, 오대산의 여러 능선을 올랐다. 설악산이 화려한 기암으로 장쾌한 뼈대를 드러낸다면, 오대산은 둥글고 온유한 산세를 품은 살과 같은 산이었다. 북대 미륵암에서 우러러보았던 짙푸른 창공을 잊을 수 없다. 중대 적멸보궁, 손바닥 위 쌀알을 채어가던 박새의 가벼운 몸짓과 남대 지장암을 공명하던 도반들의 유쾌한 웃음소리도 오래도록 기억날 것이다. 동대 관음암, 노스님의 따뜻한 미소는 가파른 산비탈 위 삽으로 헤치며 오른 함박눈을 일거에 녹일만한 온기와도 같았다. 오대산의 능선은 그렇게 길에서 길로 이어졌다. 안으로 깊이 감기며 발음되는 '길'의 그윽한 모음처럼 눈앞의 풍광엔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지난밤 꿈, 꿈에도 그리던 너를 만났다. 카메라를 어깨에 걸쳐 메고 한여름 숲길을 당당히 걷던 너에게 나는 기쁨에 들떠 말을 건넸다. 그때는 차마 몰랐었다고, 이 전나무 숲길을 너의 이름을 부르며 오체투지로 걷게 될지 그땐 꿈에도 몰랐었다고, 네가 아니었다면 이 길을 알지 못했을 거라고, 네 덕에 다시 이 길로 돌아왔다고…. 너는 대답도 없이 빛을 향해 걸어갔다. 나의 주인이자 붓다의 모습이었다.
행자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오대산의 월정사로 출가한지 보름여가 지났다. 23명의 행자들과 한방에서 먹고 자며 똑같은 동선으로 움직인다. 제한된 공간에서 복닥거리며 엄정하고도 혹독한 일정을 함께 나누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사연으로 산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출가 전 이야기는 말하지 말며,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이곳의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밖으로 치닫는 마음을 다스리며 수행에 몰두하는 까닭은 각자 형편은 다르더라도 그 근원은 모두 같을 것이다. 안일과 타성에 젖은 삶을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면, 온몸을 뒤흔들었을 간절함이 없었더라면, 방황과 고통을 딛지 않았더라면 이곳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120ℓ 물통을 가득 채우는 것이 이 공동체를 위해 내가 맡은 소임이다. 수행 초기엔 속도와 효율을 내세우며 요령을 부렸다. 우두커니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주전자 두 개로 수돗가를 동시에 점령하거나, 몇 번에 나눠 채워야 할 물통을 한꺼번에 들이붓겠다며 주전자 뚜껑을 억지로 닫았다. 그렇게 뺀질거렸더니 아뿔싸, 수돗가엔 홍수가 났고, 뒤뚱거리던 무게중심은 나동그라졌으며, 스님께는 칠칠치 못하다고 경책을 받았다. 그 이후론 물을 긷는 일이 훨씬 즐겁고 수월해졌다. 물이 찰랑찰랑 차오르는 순간, 주전자 든 팔을 고요히 지탱하는 순간, 한 걸음 한 걸음을 교차해 내딛는 순간, 하나의 일에 전체의 찰나와 온 마음을 깃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뼈저리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수행 일정이 중반으로 접어들자 드디어 악명 높은 '발우공양'이 시작되었다. 배불리 양껏 먹는 것보다 남김없이 먹는 것을 중요시하는 이 식사법은 자체적인 세정, 정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식사를 마칠 때쯤 숭늉이 돌면 단무지를 수세미 삼아 그릇의 기름기를 깨끗이 닦아낸다. 부유물과 기름기가 둥둥 떠 있는 숭늉을 꿀꺽 마신 후엔 다시 맑은 물을 부어 그릇을 꼼꼼히 씻는다. 규율과 순서를 엄격히 지켰더라면, 남아있는 물은 맑디맑을 것이다. 23명이 설거지한 이 물을 한데 모았을 때 밥알 한 톨, 고춧가루 하나, 깨 한 알이라도 남아있으면 모두가 나눠 마셔야 한다. 쌀뜨물과 김 가루가 떴다는 이유로 몇 번씩이나 설거지물을 되돌려 받았다. 두 명의 도반이 웩웩거리며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수행기간 동안, 오대산의 여러 능선을 올랐다. 설악산이 화려한 기암으로 장쾌한 뼈대를 드러낸다면, 오대산은 둥글고 온유한 산세를 품은 살과 같은 산이었다. 북대 미륵암에서 우러러보았던 짙푸른 창공을 잊을 수 없다. 중대 적멸보궁, 손바닥 위 쌀알을 채어가던 박새의 가벼운 몸짓과 남대 지장암을 공명하던 도반들의 유쾌한 웃음소리도 오래도록 기억날 것이다. 동대 관음암, 노스님의 따뜻한 미소는 가파른 산비탈 위 삽으로 헤치며 오른 함박눈을 일거에 녹일만한 온기와도 같았다. 오대산의 능선은 그렇게 길에서 길로 이어졌다. 안으로 깊이 감기며 발음되는 '길'의 그윽한 모음처럼 눈앞의 풍광엔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이 담겨있었다.
지난밤 꿈, 꿈에도 그리던 너를 만났다. 카메라를 어깨에 걸쳐 메고 한여름 숲길을 당당히 걷던 너에게 나는 기쁨에 들떠 말을 건넸다. 그때는 차마 몰랐었다고, 이 전나무 숲길을 너의 이름을 부르며 오체투지로 걷게 될지 그땐 꿈에도 몰랐었다고, 네가 아니었다면 이 길을 알지 못했을 거라고, 네 덕에 다시 이 길로 돌아왔다고…. 너는 대답도 없이 빛을 향해 걸어갔다. 나의 주인이자 붓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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