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근현대 선불교 법맥이 확정될 수 있을까. 법맥은 사자상승의 뚜렷한 계보로 이어졌다. 선종에서 법맥은 깨달음의 전승으로, 법계·법맥·법통·종통으로 뿌리찾기와 적자 상속의 강한 집착을 포함한다. 1인이 수법제자가 되어야 법이 전승되는 것으로 인식한다.
한국불교에서 법맥이 관심거리가 된 것은 ‘청허 휴정’을 시작으로 ‘나옹법통설’, ‘태고법통설’, ‘보조법통설’로 확대됐다. 근현대불교에서 법맥 논란의 대표는 ‘경허 성우’의 법맥이다.
경허 법맥은 크게 ‘만공계’ ‘한암계’ ‘혜월계’
경허 스님의 법맥은 한국불교 최대문중인 ‘덕숭문중’과 직접 연관이 있지만 덕숭문중의 일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국불교의 전체 문중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안이다. 경허 스님의 법맥은 크게 ‘만공계(덕숭문중 수덕사)’와 ‘한암계(오대산 월정사)’, ‘혜월계(영남계)’ 셋으로 구분된다.
만공의 제자는 보월성인, 용음법천, 고봉경욱, 혜암현문, 전강영신, 원담진성, 설봉학몽, 벽초경선, 효봉원명, 청담순호, 포산, 춘성 스님 등이다. 비구니 법희, 만성, 일엽, 선복, 지복, 명순 스님도 만공 스님의 제자다.
이 가운데 보월성인의 법을 이은 금오태전이 법주사와 불국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월자(月字)‘ 문중을 형성한다. 월산, 범행, 월남, 탄성, 혜정, 월주, 월서, 월탄 스님이 그들이다. 원담 진성은 전 수덕사 방장으로 덕숭산을 지켰고, 청담 순호는 ‘청담문도’를 형성한다.
한암의 제자로는 보문·난암·탄허 등이 있다. 현재 월정사는 ‘탄허 택성’의 제자들이 주를 이룬다. 혜월의 제자로는 운봉 성수-향곡 혜림으로 이어져 현재 조계종 종정인 진제 법원 대종사로 이어진다. 경허의 세 달 중 한명으로 불리는 수월 스님은 그 행장과 제자가 알려지지 않았다. 혜월계는 1902년 경허의 친필로 여겨지는 ‘등등상속’의 경허-혜월 간의 전법을 적통으로 인정한다. 영월 봉율-만화 보선-경허 성우-혜월 혜명-운봉 성수-향곡 혜림-진제 법원으로 이어지는 법맥으로, 여기서는 ‘청허 13세손 환성 9세손설’을 따른다.
경허 법맥 조계종 교구본사 문중·형성운영에 영향
법맥은 조계종 교구본사의 문중형성과 운영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법맥을 이해하는 것은 각 본사를 형성한 문중을 이해하고, 조계종 총무원과 중앙종회 등 중앙정치 무대를 형성하는 근원을 추적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법맥은 1:1로 전승된 ‘선맥’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예로 청담 순호는 경허-만공-보월의 맥을 이었지만, 한영 문하에서 수학해 선운사 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백파 문도’와도 관련이 깊다. 때문에 ‘배타적 인맥중심의 법맥관’으로는 근현대 한국불교의 법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효탄 스님(전 전국비구니회 기획실장)은 21일 경허선사 열반 100주년 기념세미나에서 ‘경허성우의 법맥과 계승자’ 발표를 통해 경허 스님의 법맥을 둘러싼 3가지 설을 소개하고 한국불교 문중간 갈등 해소와 다변화하는 불교계에서 선불교 중심의 법맥을 변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허는 청허와 환성의 몇 대손인가, 이설 분분
경허 스님의 법맥 산정의 근거는 4차례에 걸쳐 편집·간행·증보된 <경허집>이다. 경허 스님의 법맥설은 △청허(휴정, 서산대사) 11세손 환성 7세손설 △청허 12세손 환성 8세손설 △청허 13세손 환성 9세손설 등 3가지다.
‘청허 11세손 환성 7세손설’의 근거는 한암 스님의 ‘선사경허화상행장’과 만해 한용운의 ‘약보’이다. 이 설은 경허가 말하는 법맥의 계승이 ‘직접적 인가’를 법맥의 필수요건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한상길 교수(동국대 불교학술원)는 ‘청허 11세손 환성 7세손설’이 경허의 육성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한암의 ‘선사경허화상행장’과 만해의 ‘약보’ 모두 경허가 자신의 법맥을 스스로 말한 게 아니고 부연설명한 것 뿐이라는 주장이다. 한암과 만해의 기록 모두 주어가 ‘화상은’인 것은 경허의 말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근거다.
‘청허 12세손 환성 8세손설’은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의 <경허법어> ‘선호경허화상행장’이다. <경허법어>는 수덕사 덕숭문중이 간행한 것이어서 ‘덕숭문중’의 공식 법맥인 것으로 오인된다. 하지만 <경허법어>는 11세손설과 12세손설, 13세손 설의 근거가 되는 내용을 모두 담고 있어 덕숭문중의 공식 법맥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 경허가 청허의 12세손이라는 주장은 만화 보선이 명백한 강학승이어서 법맥에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만화 보선은 동학사의 강사로 경허에서 경학을 수학한 인물로 ‘조선제일의 강백’으로 이름 떨쳤다.
‘청허 13세손 환성 9세손설’은 만화 보선을 인정하는 설이다. 이 설은 ‘용암 혜언-영월 봉율-만화 보선-경허 성우로 이어진다. 한국불교 근현대 법맥을 정리한 경운의 <해동불조원류>도 이 설을 따르고 있다.
경허 법맥 불교사 맥락서 이해해야
그렇다면 경허의 법맥은 어떻게 정해져야 할까? 이봉춘 교수는 ‘조선후기 선문의 법통고’를 통해 “선불교의 법통은 한국불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고 오늘날에도 비중과 의미는 변함없다”면서 “경허의 법맥은 불교사 전체의 맥락에서 파악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경허의 행장에 법계를 통해 청허 11세손 환성 7세손 설을 지지한다. 하지만 현재 덕숭문중은 경허 13세 환성 9세손설이 행해지고 있다.
이교수는 “경허의 법통은 그 자신이 연명한 그대로 환성 7세손으로 할 것인지 현행 9세손으로 지킬 것인지의 문제는 ‘제3자가 간여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한다. 문중 자체에서 해결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덕숭문중이 경허의 법맥을 결론내릴 수 있냐는 것이다. 한국 근대선불교의 중흥자라는 경허 스님의 위치로 볼 때 한 문중에 법맥을 확정토록 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법맥의 문제는 ‘직접적인 인가’를 받지 않고도 법맥의 계승을 인정하는 경허의 태도에 합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경허의 법맥은 △경허자설 해석 △법맥의 불교사적 해석 △법맥에 부정적 입장 또는 문중 자체 해결과제 등으로 보는 입장이 존재한다.
경허는 자신의 ‘오도송’을 통해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고,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고. 사방을 둘러봐도 사람이 없는데”라고 한다. 전법의 연원이 끊어져 깨달음을 인가할 사람이 없고, 이를 주고받을 상대가 없는 것을 탄식하고 있다.
종정 스님의 혜월계는 엉터리 법맥?
이처럼 선불교의 전통을 회복하면서 전등의 연원을 밝히고자 하지만 전법의 연원이 단절됐다고 밝히는 경허의 입장은 선불교의 법통이 이미 단절됐음을 드러낸다.
경허의 법맥을 확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현재 한국불교를 주도하고 있는 문중들의 ‘합의’가 필요하다. 1:1 사자상승의 법계만을 인정하기도 어렵다. 보이지 않는 문중간 갈등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경허가 스스로 밝히는 ‘청허 11세손 환성 7세손설’을 따르면 ‘등등상속’의 법계를 주장하는 현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의 혜월계는 엉터리 법맥을 주장한 셈이 된다. 합의가 쉽지 않은 대목이다.
또 법(法) 중심이 아닌 인맥 중심의 건당(建幢) 문화가 만연된 현실과 이판의 수행과 사판의 경력을 모두 요구하는 시대에 법맥의 전승을 어떻게 규정할 지는 종단적 합의가 필요하다.
효탄 스님은 “경허가 일대교주가 되고, 그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배출되고 그 제자들의 활약으로 다시 근현대 선불교가 크게 꽃 피울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법맥에 좀 더 명확한 지평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고 밝혔다.
한상길 “수월 스님은 경허의 직제자 아니다”
한편, 한상길 교수는 경허의 세달 중 수월 스님은 경허 스님의 직제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경허집>을 비롯해 여타의 기록 어디에도 경허와 수월이 사제관계라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며 “수월이 경허와 관련해 등장하는 기사는 한암의 ‘선사경허화상행장’ 뿐이며, 여기에는 직제자인지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수월 스님을 경허의 직제자로 여기는 것은 경허와 수월이 동시대에 활동해 어떤 모습으로라도 인연을 맺었을 것이라는 개연성에서 출발해 별다른 검증없이 경허보다 9살 어린 수월을 사제관계로 설정한 것이라는 게 한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암은 ‘선사경허화상행장’에서 침운, 혜월, 만공, 한암 4명 만을 들고 있다”면서 “수월이 경허의 제자였다면 반드시 그를 언급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월을 만공, 혜월과 묶어 ‘경허의 세 명의 달’로 여기고 경허의 맏상좌로 이해하는 것은 제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