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승지에 한 가닥 오솔길이여(현대불교) 201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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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5-02 09:26 조회9,274회 댓글0건본문
천년의 승지에 한 가닥 오솔길이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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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강화학파’를 계승한 학자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은 고증(考證)을 역사의 생명으로 여겼다. 그의 대표적인 저술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도 객관성과 공정성 등을 중시하며 지은 책이다. <연려실기술> 별집 제16권 ‘산천의 형승’ 부분에 오대산을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강릉부의 서쪽 1백 40리의 거리에 있다. 동쪽에는 만월봉(滿月峯), 남쪽에는 기린봉(麒麟峯), 서쪽에는 장령봉(長嶺峯), 북쪽에는 상왕봉(象王峯), 중앙에는 지로봉(智罏峯) 등 다섯 봉우리가 둘러섰는데 각 봉의 대(臺)마다 각각 한 암자가 있다. 산 아래에 월정사(月精寺)가 있고 절 곁에는 사고(史庫)가 있다. 또 금강연이라는 못이 있는데 사면이 모두 반석이며, 폭포가 10척(尺)을 흘러 굽이쳐 돌아서 못이 되었다. 서대(西臺) 밑에 통을 댄 수함(水檻)이 있는데 곧게 솟아오르는 샘물은 그 빛과 맛이 보통 물과 다르다. 이것이 서쪽으로 흘러서 한강의 원류가 된다.’ 오늘날의 오대산과 다를 것이 없는 설명이다. 중앙의 지로봉은 오늘날의 비로봉(1537)이다. 다만 서대 밑의 ‘우통수’가 한강의 발원이라는 설은 수그러지고 태백 삼수령 너머 검룡소가 발원이라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아무튼, 오대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문수신앙의 성지로서 예나 지금이나 매우 사랑받는 산임에 틀림없다. 월정사로 들어가는 전나무 숲길을 요즘 ‘천년의 숲길’이라 부른다. 조선 중기에도 그 숲길은 아주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길이었을 것이다. 선비들은 월정사를 시로 읊으면서 이 길을 먼저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름 난 절과 명품 길의 조화는 시인들에게 더 없는 흥취로 다가 왔을 것이다. 송증음삼일경통(松橧陰森一逕通)
입문초견전비홍(入門初見殿扉紅) 천층보탑회비조(千層寶塔回飛鳥) 팔각신령향반공(八角神鈴響半空) 법질만전왕자적(法帙漫傳王子迹) 거승나식세존공(居僧那識世尊功) 종명홀작문수회(鍾鳴忽作文殊會) 옥좌향연만학풍(玉座香烟萬壑風) 솔 그늘 우거진 속 길 한 가닥 뚫렸는데
문 앞을 당도하자 홍살문이 보이누나. 일천 층 보탑에는 나는 새가 맴돌고 팔각의 방울 소리 반공에 메아리치네. 불경은 부질없이 왕자의 자취만 전해라 여기 사는 승려들 세존 공덕 어찌 알리. 종 울리자 갑자기 문수회가 시작되니 옥좌의 향 연기에 만 골짝의 바람일레. 이 시의 제목은 알 수 없다. 지은이는 박광우(朴光佑 1495~1545)로 을사사화 때 화를 입어 젊은 나이에 죽은 선비다. 이 시는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제30권 ‘시문문(詩文門)’에 소개되고 있다. 이익은 시를 소개하며 “사간(司諫) 박광우는 호가 잠소당(潛昭堂)인데, 바로 을사(乙巳)의 유직(遺直)이었다. 그가 강릉(江陵) 월정사(月靜寺)에 제(題)한 시는 다음과 같다”라고 전제했다. 그리고 시의 말미에 “이로써도 넉넉히 그 기개를 엿볼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익이 ‘기개를 엿볼 수 있다’고 했듯이 박광우는 월정사를 매우 장엄하게 읊고 있다. 시는 숲길과 일주문으로 펼쳐져 팔각구층석탑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옮아가더니 시각과 청각을 두루 동원해 월정사 안쪽의 경치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은연중 ‘불경이 왕자의 자취만 전한다’고 하고 ‘승려들이 세존의 공덕을 어찌 알겠느냐’며 절에 부합할 수 없는 자신의 심정을 보여준다. 왕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카필라국의 왕자로 태어났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는 마지막에 반전을 보인다. 법회가 시작되니 향연기가 만 골짝의 바람이라는 표현은 매우 그윽하다. 문수회라는 것은 월정사가 속한 오대산이 문수신앙의 성지임을 강조한 것이고 옥좌는 부처님을 모신 상단이다. 그리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연기는 법향(法香)이니 부처님의 가르침일 것이다. 그 향기가 만 골짝의 바람이 되어 중생계로 퍼져 나간다는 것이다. 맑고 맑은 귀의처
숲길을 통해 들어간 월정사의 풍경과 부처님의 공덕이 산과 절만큼이나 장엄하게 묘사된 시 한 수를 더 보자. 보지천년승(寶地千年勝)
잠통일경유(潛通一徑幽) 거승경세월(居僧輕歲月) 과객석엄류(過客惜淹留) 비조피령탑(飛鳥避靈塔) 신룡장고추(神龍藏古湫) 오대지불격(五臺知不隔) 타일득중유(他日得重遊) 천년의 승지라 보배로운 이곳
한 가닥 오솔길 그윽이 뚫렸어라. 살고 있는 스님은 세월을 가벼이 여기나 지나는 손은 머무는 시간 아까워라. 나는 새는 영험한 탑을 피해 가고 신령한 용은 옛 못에 잠겨 있도다. 오대산이 멀지 않음을 알겠나니 훗날 다시 와서 노닐 수 있으리. 이 시는 조선 중기의 문신 이행(李荇 1478~1534)의 문집 <용재집(容齋集)> 제2권에 ‘월정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행은 <성종실록>의 편찬과 <동국여지승람>의 신증(新增)에 동참했으며 요즘의 국립대학 교수부장에 해당하는 성균관대사성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다.
이행 역시 ‘한 가닥 오솔길’로 월정사로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답고 귀한 월정사 풍경 속에서 시간이 흐르는 것을 아까워하고 있으며 탑과 연못을 매개로하여 절의 엄숙함을 찬탄하고 훗날을 기약하는 것으로 시를 마무리하고 있다. 처음에는 월정사를 잔잔하게 묘사했으나 탑을 피해 날아가는 새와 옛 못에 잠겨 있다는 신령한 용을 동원하여 시의 흐름을 전환시키는 힘이 대단하다. 천년의 숲길을 따라가면 천년의 고찰이 있고 거기 무량한 시간을 따라 전해 온 진리의 향기가 있으니, 조선의 선비들에게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나 월정사는 맑고 맑은 귀의처임에 틀림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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