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한암스님에게 ‘독신의 선수행’ 답을 얻다(세계일보) 2014.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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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4-16 08:56 조회9,490회 댓글0건본문
석전·한암스님에게 ‘독신의 선수행’ 답을 얻다
월정사·선운사 공동 학술대회
월정사 주지 정념(58) 스님과 선운사 주지 법만(53) 스님이 청정 승가공동체 구현에 앞장서 주목된다. 이들 두 본사급 주지 스님은 18일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석전과 한암, 한국불교의 시대정신을 말한다’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어 이 시대 여전히 중요한 계율의 중요성을 환기시킨다. 석전(石顚·1870∼1948)과 한암(漢岩·1876∼1951) 스님은 한국불교의 초석을 다졌던 주역이다. 한국승단은 과거 일제에 의해 청정 가풍이 어지럽혀지고, 한국불교의 정신이랄 수 있는 독신의 수행자상이 심하게 오염됐다. 석전과 한암은 대처육식(帶妻肉食) 일본불교 관행을 보급하려는 일제에 강력히 저항하며 계율과 교학, 선수행을 통해 한국불교의 종풍을 세우는 등 스스로 청정비구의 사표가 됐다.
오늘날 조계종이 비구승가로 남게 된 데는 석전과 한암의 기여가 가장 컸다. 티베트부터 동아시아까지의 대승불교권에서 독신의 선수행을 오롯이 지켜온 것은 한국불교가 유일하다.
석전스님(왼쪽)과 한암스님. |
석전은 ‘계학약전(戒學約詮)’이라는 교재를 펴내는 등 승려교육을 통한 청정성 회복 운동에 나서 각계에 많은 제자를 남겼다. 석전 문하에 최고의 선지식인 운허·운성·운기·남곡 스님이 있고, 당대 최고 지식인들인 서경보·이광수·신석정·조지훈·서정주·김달진·김어수 등 걸출한 동량이 배출됐다.
육당 최남선은 그를 두고 “석전 스승은 모르는 게 없을 만큼 박식했다”고 말했고, 위당 정인보는 “한영(석전의 속명)과 함께 길을 가면 어디를 가도 모르는 것이 없다”고 감탄했다.
한암 스님은 지계청정(持戒淸淨)과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실천한 표상이었다. 1925년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봄날에 말 잘하는 앵무새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며 강남 봉은사 조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오대산으로 들어간 이래 입적할 때까지 27년간 거의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1951년 1·4 후퇴 직전에는 국군이 북한군의 은신처로 이용될 것을 우려해 오대산의 모든 절을 태우고 상원사마저 불태우려 했을 때 한암이 법당에 좌정한 채 “절을 태우려면 나와 함께 불 지르라”고 호령해 천년고찰 상원사를 지킨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군인들은 법당 문짝만 떼내 불사르고 갔다고 한다.
두 스님 모두 조계종 종정을 지냈고, 한국의 정신세계를 이끌었다. 석전 스님의 법맥은 남곡-태허를 거쳐 법만 스님으로 연결되고, 한암 스님은 탄허-만화를 거쳐 정념 스님으로 이어진다. 정념 스님은 한암 스님의 증손상좌이고, 법만 스님은 석전 스님의 증손상좌인 셈이다.
두 스님도 선대 스승을 빼닮아 철저히 계율을 지키며 청정한 삶을 살고 있다. 서로 자신을 낮추는 하심(下心)까지도 석전과 한암을 닮아 주변을 훈훈하게 한다.
법만 스님은 전시회와 ‘석전축전’ 등을 열어 석전 사상을 뿌리내리고 있고, 내년에는 석전기념관도 조성할 예정이다. 정념 스님은 화쟁문화아카데미(가칭)를 설립해 남북문제와 사회갈등까지 다룸으로써 한암 사상을 시대에 맞게 구현할 계획이다.
청정 승가공동체 구현에 의기투합한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왼쪽)과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 |
정념 스님은 “두 분 스승은 청정 비구승단의 귀감으로 삼을 만하다”고 말했고, 법만 스님은 “계율은 오늘날에도 절실히 요청되며, 종교인에게는 더욱 중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주제발표에 나서는 월정사 교무국장 자현 스님은 “석암과 한암 스님의 사상은 갈수록 윤리의식이 희박해지는 한국불교와 현대인들에게 경종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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