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흐르기도 하지만 한편 쌓여가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세계 유일의 분단된 남북 대립 속에서 통일 대박을 부르짖으며 기원해 본다. 지구상에서 70여 년간 아물지 않는 상처 속에서 나는 조선왕조실록과 의궤의 오대산 제자리 환수를 기원하면서 국정의 집행 그리고 또 왕위 계승의 절대적 신물인 고종황제의 옥새가 조속히 미국에서 한국의 제자리로 돌아와야 된다고 기원해 본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한 뒤 황제국의 권위에 알맞도록 거북이 손잡이를 용으로 변경해 만든 것이 황제지보의 옥새다. 1910년 일본에 의해 강제 병합되자 조선 총독 데라우치는 순종의 옥새를 빼앗아 일본 국내청 천황궁으로 보냈다. 그 후 1946년 8월15일 맥아더는 미군정청 하지 중장을 통해 옥새 5개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중 2개가 분실되고 만 것이다.
미국 국무부 관리가 작성한 미군의 문화재 절도사건 기록은 미국 메릴랜드의 국가기록보존소에 `아델리아 롤 레코드'라는 문서에 전쟁기간 미군이 종묘와 궁궐에서 임금의 도장을 훔쳤고 한국정부가 47개의 옥새를 주미한국대사관에 분실 신고한 내용이다.
그러던 중 LA카운티 박물관에 조선 8대 임금 중종의 왕비 옥새가 확인되고 문정왕후 어보 반환을 노력한 덕에 2013년 9월 박물관 측이 사실을 인정하고 반환하겠다 하여 이 같은 보도를 보고 미국 골동품상의 신고로 LA 인근 샌디에이고 용의자 집을 수색하여 9점의 옥새를 추가로 발견, 그중에 황제지보의 옥새가 있었다. 1946년 맥아더가 광복 1주년을 맞아 한국으로 돌려주었던 바로 그 옥새였다.
한편 옛날 우리 조상은 실록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방충·방습의 목적으로 한지에 먹으로 인쇄한데다 밀랍으로 도포하여 특수처리하고 보관 장소도 전주 경기전에서 내장산의 깊숙한 암자로 또 임진왜란 시 묘향산의 보현사 별전으로 옮겼다.
이처럼 유일한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은 전화에 살아남아 5대 사고본의 저본이 된 기구한 운명은 끝이 없었다. 이 정족산본의 밀랍본이 영변부 객사를 거쳐 강화부 사고에서 서울로 반출, 재 간행을 한 뒤 재봉안됐다. 청군의 병자호란 등 전쟁터와 장마철 등의 악조건 속에서 일제의 조선총독부에서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또 1946년 서울대에서 1950년 북한군이 의정부까지 운반 도중 적상산본 1질만 가져갔다. 남은 것은 전시 수도 부산의 창고 속에서 1954년 서울대 중앙도서관으로, 1975년 관악캠퍼스 중앙도서관에서 1990년 지금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신축서고로 이삿짐을 거듭 쌌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정신의 문화재인 의궤, 실록, 옥새의 역사는 지금도 제자리에 안주하기보다는 이삿짐으로 살아간다.
오대산 왕조실록, 의궤의 보관소였던 오대산사고의 선원보각 빈 공간과 6·25전쟁에 아군에 의하여 폐허로 소실되었던 월정사 복원을 기원하며, 4월의 새벽 예불 후 월정사 탑돌이를 봉행하면서 이러한 실록과 의궤 또 옥새가 제자리에 안주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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