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동자승에게 혼쭐난 수양대군...’비움'을 배우는 선재길(헤럴드 경제)2014.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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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1-16 09:03 조회11,274회 댓글0건본문
[테마여행] 동자승에게 혼쭐난 수양대군...’비움'을 배우는 선재길
[헤럴드경제=신상득 기자] 1464년 어느 날 강원도 오대산 상원사. 세조가 문수보살을 배알하려고 법당에 들어서려는데 난데없는 고양이 두 마리가 나타나 옷소매를 물어뜯으며 가로막았다. 옆으로 비켜서 들어가려고 해도 고양이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울부짖었다. 순간 기이한 예감이 든 세조는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지도록 하였고, 마침내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숨어있던 자객을 찾아냈다. 세조는 고양이를 잘 기르라는 뜻을 담아 상원사에 사방 팔십리 땅을 하사였고, 고양이 한 쌍도 돌로 조각해 법당 앞뜰에 세워두게 했다.
평창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23년(940년) 처음 등장한다. 1074년의 긴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고장이다. 평창의 정기를 상징하는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이 두 사찰을 연결하는 선재길에는 ‘세조와 고양이’ 같은 이야기가 숱하게 전해진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의 정기는 만만찮다. 고찰을 잇는 선재길엔 순수의 힘이 넘친다. 흐벅지게 한바탕 눈이라도 내린다면 더없이 웅숭깊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련만. 지난날 받은 갖은 상처 더욱 보듬는 시간 될 수 있으련만.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을 따라 걷는 9.6㎞ 길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후 많은 스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르내렸다. 고려 말 나옹선사(1320~1376)를 비롯해 방한암 스님(1876~1951), 탄허 스님(1913~1983) 등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수행에 정진했다.
▶세조와 문수동자의 일화는 “탐욕 내려놓으라”는 새해 설법
이번 선재길 산행은 일기예보를 통해 함박눈 내리는 날로 미리 잡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은 내다버려야 할 비루한 시간이 아니다. 외려 오늘을 사는 동력이고, 내일을 사는 자양분이다. 함박눈은 풍성함의 상징이다. 상원사 입구에서 벚꽃처럼 흩날리는 눈 담뿍 맞으며 지난 삶으로 인해 앞으로의 삶이 더욱 풍성하리라 믿어보자.
오대천은 치유다. 조카인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세조는 왕위에 오른 뒤 알 수 없는 피부종양으로 극심한 고생을 한다. 어떤 명약도 소용없었고,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산을 지나던 세조가 월정사에 들러 참배하고 선재길을 따라 상원사로 오르다가 계곡에서 목욕을 하게 됐다. 추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신하들을 멀리하고 홀로 목욕하던 세조의 눈에 숲에서 노니는 동자승이 들어왔다. 세조는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임금의 옥체에 함부로 손을 댄 자는 처벌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동자승은 “대왕도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발설하지 말지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세조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으나 동자승은 사라진 뒤였다. 기이하게도 몸은 다 나아 있었다. 훗날 세조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준 문수보살의 모습을 화공에게 그리게 하여 이곳에 봉안했다. 또 친히 권선문을 작성해 본래 ‘진여원’이었던 이름을 임금보다도 높다는 의미를 담아 ‘상원사’로 바꾸도록 했다.
상원사에서 전해지는 세조의 이 일화는 세상의 권력과 부(富)가 부처님 앞에서는 하잘 것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석가모니가 ‘중생이 곧 부처’라 설법하였으니, 권력과 부는 중생 앞에서도 하잘 것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행자가 행여 가졌을지 모를 탐욕을 잠시 내려놓아야 할 이유다.
선재길은 ‘선재동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선재동자는 문수동자라고도 한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따르면 선재동자는 인도의 복성장자(福城長者)의 아들로, 쉼 없이 구도의 길을 간 모범적인 구도자의 표상이다. 그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안내를 받아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천하를 역방(歷訪)하며 53명의 선지식을 두루 만났다. 마지막으로 보현보살(寶賢菩薩)을 만나 십대원(十大願)을 듣고 그 공덕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극락정토에 왕생(往生)하여 입법계(入法界)의 큰 뜻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지난 미련 버리라”고 속삭이는 선재길
구도자의 표상인 선재길에 들어섰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내리막 산행을 시작해보자. 선재길은 자동차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수도 없는 수도승과 불자들의 걷던 수행로였다. 개울 옆으로 계속된 이 길은 큰 굴곡 없이 평탄하면서도 사계절 내내 수려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오대천은 백두대간에서 오대산 비로봉을 감돌아 흐른다. 지금도 매년 1월 1일이면 월정사와 상원사 스님들이 10시간 넘게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며 이 길을 오른다.
선재길은 빼어난 웅려함과 선재동자의 구도를 향한 유행(遊行), 고승들의 심오한 가르침으로 사시사철 여행객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봄은 섬세함과 아련함으로, 여름은 호쾌(豪快)함과 장려(壯麗)함으로. 가을은 넉넉함과 숭려(崇麗)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겨울 선재길은 언뜻 보아 삭막하고 황량하기만 하다. 개울은 꽁꽁 얼어붙었고, 잎이 져 헐벗은 나무는 간간히 부는 칼바람을 맞아 허허롭게 가지만 흔든다. 풍요롭게 내리는 눈마저 없다면, 휑하니 멍든 가슴 어찌 다독이랴.
하지만 귀 기울이면 전나무, 느릅나무, 피나무, 졸참나무, 자작나무로 가득한 선재길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지난 한 해 수확한 곡식을 알곡과 쭉정이로 갈라 알곡은 내년 씨앗과 양식으로 쓰고, 쭉정이는 땔감으로 쓸 일이라고. 가슴 켜켜이 쌓은 지난해의 미련을 찬바람에 씻겨 버리라고. 바람이 매섭지 아니하고는 숱한 앙금을 털어낼 길이 없다고. 골이 깊을수록 산이 높듯, 고통이 깊을수록 희열은 높은 법이라고. 자신들처럼 옷 훌훌 벗고 스스럼없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라고. 함박눈이 선재길의 모든 흔적을 고요히 덮은 것처럼 우리도 지난 한 해 살아온 아픔을 고요히 품으라고.
게다가 선재길이 어떤 길인가. 1000년 이상 고승들이 수행한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길 아니던가. 해마다 삼보일배하는 고행으로 다듬어진 길 아니던가. 자신의 실체를 찾아 헤매던 숱한 수행자들의 눈물 배인 길 아니던가. 어찌 춥다고 움츠러들 일인가. 어찌 몸을 꽁꽁 싸매기만 할쏜가.
▶맑은 하늘 나뭇가지는 눈을 꽃가루처럼 뿌리고
일기예보를 볼 때 눈이 내리는 시각과 그치는 시각을 잘 점검하면, 눈 온 뒤 맑게 갠 선재길을 하산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눈 그친 선재길은 눈에 잡히는 모든 풍광이 한 폭의 수채화다. 하얀 물감으로 온통 덧칠을 해도, 이런 장관을 그려내진 못한다. 하산하는 내내 신선이 된다. 꽁꽁 언 개울과 개울가 바위에는 눈이 소담스럽다. 이름 모를 산새가 푸드득거리고 날아오르면, 주변에서는 눈보라가 하얗게 인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전나무 가지와 이파리에서 쉬고 있던 눈은 바람이 불 때마다 수시로 하얀 꽃가루를 머리 위로 흩뿌린다. 지난 한 해 잘 살았다는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올 한 해 잘 살라는 기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무다리, 섭다리, 오솔길, 바윗길 등을 걸어 월정사에 당도하면 3시간 선재길 산행은 끝이다. 아쉬움이 남거든 선재길 남쪽 발왕산에 올라보자. 상고대로 가득한 산 정상에서 평창의 산야를 발 아래 굽어보면 그 장쾌함이 가슴 가득 안겨온다. 새해 희망과 자신감이 한없이 밀려온다./par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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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갈까
상원사나 월정사를 승용차로 가는 방법은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빠져나가면 월정사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월정사가 나온다. 월정사에서 다시 5분 정도 올라가면 상원사로 갈 수 있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먼저 진부터미널로 이동한 뒤 다시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오전 6시50분부터 오후 8시5분까지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하루 25회 운행한다. 진부령터미널에서 월정사로 가는 버스는 하루 14회, 이 중 상원사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9회 운행한다.
● 무얼 먹을까
겨울 평창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송어회가 최고다. 섭씨 5도의 용천수에서 양식으로 길러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송어는 맑고 찬물에서 자라야 육질이 좋기 때문이다. 때마침 2월 2일까지 진부리 오대천 둔치에서 송어축제가 열린다. 축제에서 직접 송어를 잡아 인근 식당으로 가져가면 회를 떠준다. 횟집에서 직접 시켜 먹어도 된다.
진부리 명진왕갈비의 갈비탕. 국산 돼지갈비로 만든 갈비탕은 양이 풍부하고 맛이 담백해 관광객은 물론 지역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진부리에 있는 진부령송어횟집(033-336-7744), 평강배당송어횟집(033-336-1472) 등이 유명하다. 강원도 명물인 산채비빔밥으로는 진부리 부일식당(033-335-7232)이 좋고, 풍성하면서도 저렴한 왕갈비탕을 파는 명진왕갈비탕(033-335-8988) 등에서 먹을 만하다.
● 어디서 잘까 호텔 펜션 2~3곳
선재길이 있는 월정사 인근에는 용평리조트(033-335-5757)가 가장 찾기 쉽다. 송어축제가 열리는 진부리엔 오투모텔(033-335-0098)이, 수항리에는 스노우힐 펜션(033-3286-0077) 등이 있다.
● 여행 문의
평창군청 문화관광과 (033)330-2399, 오대산 월정사 (033)339-6800
평창이라는 이름은 고려 태조 23년(940년) 처음 등장한다. 1074년의 긴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고장이다. 평창의 정기를 상징하는 오대산 월정사와 상원사, 이 두 사찰을 연결하는 선재길에는 ‘세조와 고양이’ 같은 이야기가 숱하게 전해진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평창의 정기는 만만찮다. 고찰을 잇는 선재길엔 순수의 힘이 넘친다. 흐벅지게 한바탕 눈이라도 내린다면 더없이 웅숭깊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으련만. 지난날 받은 갖은 상처 더욱 보듬는 시간 될 수 있으련만.
선재길은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계곡을 따라 걷는 9.6㎞ 길이다. 신라의 자장율사가 오대산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후 많은 스님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오르내렸다. 고려 말 나옹선사(1320~1376)를 비롯해 방한암 스님(1876~1951), 탄허 스님(1913~1983) 등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수행에 정진했다.
눈 내린 다음 날 걷는 선재길은 나무마다 이와 같은 눈꽃이 활짝 피어 겨울 여행객을 맞이한다. 선재길의 남쪽에 있는 발왕산의 설경은 추위를 잊고 사색에 잠기게 한다. [신상득 기자/param@heraldcorp.com] |
▶세조와 문수동자의 일화는 “탐욕 내려놓으라”는 새해 설법
이번 선재길 산행은 일기예보를 통해 함박눈 내리는 날로 미리 잡아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은 내다버려야 할 비루한 시간이 아니다. 외려 오늘을 사는 동력이고, 내일을 사는 자양분이다. 함박눈은 풍성함의 상징이다. 상원사 입구에서 벚꽃처럼 흩날리는 눈 담뿍 맞으며 지난 삶으로 인해 앞으로의 삶이 더욱 풍성하리라 믿어보자.
오대천은 치유다. 조카인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 세조는 왕위에 오른 뒤 알 수 없는 피부종양으로 극심한 고생을 한다. 어떤 명약도 소용없었고, 어떤 명의도 고치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산을 지나던 세조가 월정사에 들러 참배하고 선재길을 따라 상원사로 오르다가 계곡에서 목욕을 하게 됐다. 추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신하들을 멀리하고 홀로 목욕하던 세조의 눈에 숲에서 노니는 동자승이 들어왔다. 세조는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임금의 옥체에 함부로 손을 댄 자는 처벌을 면키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그러자 동자승은 “대왕도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발설하지 말지어다”라고 일침을 가했다. 세조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으나 동자승은 사라진 뒤였다. 기이하게도 몸은 다 나아 있었다. 훗날 세조는 자신의 병을 낫게 해준 문수보살의 모습을 화공에게 그리게 하여 이곳에 봉안했다. 또 친히 권선문을 작성해 본래 ‘진여원’이었던 이름을 임금보다도 높다는 의미를 담아 ‘상원사’로 바꾸도록 했다.
상원사에서 전해지는 세조의 이 일화는 세상의 권력과 부(富)가 부처님 앞에서는 하잘 것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석가모니가 ‘중생이 곧 부처’라 설법하였으니, 권력과 부는 중생 앞에서도 하잘 것 없는 것이기도 하다. 여행자가 행여 가졌을지 모를 탐욕을 잠시 내려놓아야 할 이유다.
선재길은 ‘선재동자’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선재동자는 문수동자라고도 한다. 화엄경(華嚴經) ‘입법계품(入法界品)’에 따르면 선재동자는 인도의 복성장자(福城長者)의 아들로, 쉼 없이 구도의 길을 간 모범적인 구도자의 표상이다. 그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안내를 받아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천하를 역방(歷訪)하며 53명의 선지식을 두루 만났다. 마지막으로 보현보살(寶賢菩薩)을 만나 십대원(十大願)을 듣고 그 공덕으로 아미타불(阿彌陀佛)의 극락정토에 왕생(往生)하여 입법계(入法界)의 큰 뜻을 이루었다고 전한다.
▶‘선재길’에서 치유와 자아성찰을…=겨울 선재길은 언뜻 보아 황량하다. 하지만 오대천 얼음장 밑 옥수(玉水)와 전나무, 느릅나무, 피나무, 졸참나무, 자작나무의 조용한 재잘거림은 따뜻한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신상득 기자/param@heraldcorp.com] |
▶“지난 미련 버리라”고 속삭이는 선재길
구도자의 표상인 선재길에 들어섰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내리막 산행을 시작해보자. 선재길은 자동차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수도 없는 수도승과 불자들의 걷던 수행로였다. 개울 옆으로 계속된 이 길은 큰 굴곡 없이 평탄하면서도 사계절 내내 수려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 오대천은 백두대간에서 오대산 비로봉을 감돌아 흐른다. 지금도 매년 1월 1일이면 월정사와 상원사 스님들이 10시간 넘게 삼보일배(三步一拜)를 하며 이 길을 오른다.
선재길은 빼어난 웅려함과 선재동자의 구도를 향한 유행(遊行), 고승들의 심오한 가르침으로 사시사철 여행객에게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봄은 섬세함과 아련함으로, 여름은 호쾌(豪快)함과 장려(壯麗)함으로. 가을은 넉넉함과 숭려(崇麗)함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겨울 선재길은 언뜻 보아 삭막하고 황량하기만 하다. 개울은 꽁꽁 얼어붙었고, 잎이 져 헐벗은 나무는 간간히 부는 칼바람을 맞아 허허롭게 가지만 흔든다. 풍요롭게 내리는 눈마저 없다면, 휑하니 멍든 가슴 어찌 다독이랴.
하지만 귀 기울이면 전나무, 느릅나무, 피나무, 졸참나무, 자작나무로 가득한 선재길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지난 한 해 수확한 곡식을 알곡과 쭉정이로 갈라 알곡은 내년 씨앗과 양식으로 쓰고, 쭉정이는 땔감으로 쓸 일이라고. 가슴 켜켜이 쌓은 지난해의 미련을 찬바람에 씻겨 버리라고. 바람이 매섭지 아니하고는 숱한 앙금을 털어낼 길이 없다고. 골이 깊을수록 산이 높듯, 고통이 깊을수록 희열은 높은 법이라고. 자신들처럼 옷 훌훌 벗고 스스럼없이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라고. 함박눈이 선재길의 모든 흔적을 고요히 덮은 것처럼 우리도 지난 한 해 살아온 아픔을 고요히 품으라고.
게다가 선재길이 어떤 길인가. 1000년 이상 고승들이 수행한 발자취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길 아니던가. 해마다 삼보일배하는 고행으로 다듬어진 길 아니던가. 자신의 실체를 찾아 헤매던 숱한 수행자들의 눈물 배인 길 아니던가. 어찌 춥다고 움츠러들 일인가. 어찌 몸을 꽁꽁 싸매기만 할쏜가.
상원사의 문수동자상. 악성 피부병에 시달리던 세조의 등을 씻어 낫게 한 일화로 유명하다. |
▶맑은 하늘 나뭇가지는 눈을 꽃가루처럼 뿌리고
일기예보를 볼 때 눈이 내리는 시각과 그치는 시각을 잘 점검하면, 눈 온 뒤 맑게 갠 선재길을 하산하는 행운을 누릴 수도 있다. 눈 그친 선재길은 눈에 잡히는 모든 풍광이 한 폭의 수채화다. 하얀 물감으로 온통 덧칠을 해도, 이런 장관을 그려내진 못한다. 하산하는 내내 신선이 된다. 꽁꽁 언 개울과 개울가 바위에는 눈이 소담스럽다. 이름 모를 산새가 푸드득거리고 날아오르면, 주변에서는 눈보라가 하얗게 인다. 특히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전나무 가지와 이파리에서 쉬고 있던 눈은 바람이 불 때마다 수시로 하얀 꽃가루를 머리 위로 흩뿌린다. 지난 한 해 잘 살았다는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랴. 올 한 해 잘 살라는 기원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무다리, 섭다리, 오솔길, 바윗길 등을 걸어 월정사에 당도하면 3시간 선재길 산행은 끝이다. 아쉬움이 남거든 선재길 남쪽 발왕산에 올라보자. 상고대로 가득한 산 정상에서 평창의 산야를 발 아래 굽어보면 그 장쾌함이 가슴 가득 안겨온다. 새해 희망과 자신감이 한없이 밀려온다./par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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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떻게 갈까
상원사나 월정사를 승용차로 가는 방법은 영동고속도로 진부IC에서 빠져나가면 월정사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월정사가 나온다. 월정사에서 다시 5분 정도 올라가면 상원사로 갈 수 있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먼저 진부터미널로 이동한 뒤 다시 월정사를 거쳐 상원사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동서울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오전 6시50분부터 오후 8시5분까지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하루 25회 운행한다. 진부령터미널에서 월정사로 가는 버스는 하루 14회, 이 중 상원사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9회 운행한다.
● 무얼 먹을까
겨울 평창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송어회가 최고다. 섭씨 5도의 용천수에서 양식으로 길러 전국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송어는 맑고 찬물에서 자라야 육질이 좋기 때문이다. 때마침 2월 2일까지 진부리 오대천 둔치에서 송어축제가 열린다. 축제에서 직접 송어를 잡아 인근 식당으로 가져가면 회를 떠준다. 횟집에서 직접 시켜 먹어도 된다.
진부리 명진왕갈비의 갈비탕. 국산 돼지갈비로 만든 갈비탕은 양이 풍부하고 맛이 담백해 관광객은 물론 지역주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진부리에 있는 진부령송어횟집(033-336-7744), 평강배당송어횟집(033-336-1472) 등이 유명하다. 강원도 명물인 산채비빔밥으로는 진부리 부일식당(033-335-7232)이 좋고, 풍성하면서도 저렴한 왕갈비탕을 파는 명진왕갈비탕(033-335-8988) 등에서 먹을 만하다.
명진 왕갈비탕 |
● 어디서 잘까 호텔 펜션 2~3곳
선재길이 있는 월정사 인근에는 용평리조트(033-335-5757)가 가장 찾기 쉽다. 송어축제가 열리는 진부리엔 오투모텔(033-335-0098)이, 수항리에는 스노우힐 펜션(033-3286-0077) 등이 있다.
● 여행 문의
평창군청 문화관광과 (033)330-2399, 오대산 월정사 (033)339-6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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