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향연, 물·산새 소리 벗삼아 나에게로 떠나다… ‘오대산 옛길’ (국민일보)2012.05.16 > 언론에 비친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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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향연, 물·산새 소리 벗삼아 나에게로 떠나다… ‘오대산 옛길’ (국민일보)201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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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5-18 10:39 조회10,90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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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의 향연, 물·산새 소리 벗삼아 나에게로 떠나다… ‘오대산 옛길’

오월의 초록은 관념의 색이다. 초록은 동색이라지만 나무만큼 다양한 초록색도 드물다. 국방색에 가까운 초록색은 낙엽송이고, 연둣빛으로 발광하는 초록색은 단풍나무 아니면 박달나무다. 소나무의 초록색에는 기품이 배어있고, 아름드리 전나무의 흑녹색은 오대산의 위엄을 상징한다. 오대산 옛길은 이러한 색들이 만들어내는 오월의 초록숲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사색에 젖어 있다.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국립공원에 위치한 오대산 옛길은 화전민들이 다니던 삶의 실핏줄이다. 월정사 위의 회사거리에서 상원사 입구까지 약 9㎞ 길이의 오대산 옛길은 오대천을 사이에 두고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차도와 나란히 오대산을 오르지만 숲에 가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오대산 옛길의 시작점은 월정사 주차장에서 출발한 포장도로가 흙길로 바뀌는 회사거리.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제재소가 있어 명명된 회사(會社)거리를 중심으로 상원사 입구까지 화전민 360여 가구가 살았지만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모두 소개됐다.

회사거리에서 오대천으로 내려와 징검다리를 건넌 옛길은 조붓한 숲을 홀로 걷는다. 연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정도로 아담한 숲길은 물소리와 산새소리가 정겹다. 길섶에는 노란색 산괴불주머니를 비롯해 제비꽃, 개별꽃, 산작약 등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피고지고를 거듭하고 있다. 야생화는 화전민이 살던 너와집의 허물어진 돌담에도 뿌리를 내려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수달이 사는 오대천은 숲의 색깔을 닮는다. 단풍이 활활 타오르는 가을의 오대천은 붉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황홀하고, 숲이 눈으로 뒤덮이는 겨울에는 오대천도 하얀색 솜이불을 덮는다. 남도보다 두 달 늦은 오대천의 봄은 연두색에서 초록색까지 채도와 명도의 스펙트럼이 여느 계절보다 넓어 연중 가장 화려한 풍경을 연출한다.

오대천을 거슬러 오르던 옛길은 좁은 협곡 사이에 위치한 수심 3∼4m의 소(沼)를 만난다. 보메기라는 이름의 소는 조선시대에 보를 막아 벌목한 통나무를 띄워 놓던 곳이다. 바위굴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는 건너편 골짜기는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던 곳. 벌목꾼들은 장마철에 물이 불면 보를 허물어뜨려 통나무가 한강까지 떠내려가도록 했다. 보메기 상류에서 나무다리를 건넌 옛길은 조붓한 숲길을 따라 점점 깊어지는 초록숲으로 빨려든다.

에메랄드 색을 닮은 3개의 소가 이웃한 ‘삼형제 소’는 오대산 옛길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 여인의 피부처럼 하얀 너럭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산철쭉은 화전민 처녀처럼 수줍음을 타고, 하얗게 부서지는 시냇물은 꽃으로 변신한 화전민 처녀를 유혹이라도 하듯 노래를 부르며 흐른다.

오대산 옛길은 울창한 숲이나 커다란 바위에 가로막히면 계곡으로 내려와 징검다리를 건넌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놓아진 징검다리는 모두 17곳. 여기에 나무다리와 섶다리가 각각 하나씩 놓여 운치를 더한다. 옛길과 찻길을 연결하는 섶다리는 굵은 소나무로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통나무를 얹은 후 소나무 잔가지를 얽어 놓고 흙을 덮어 만든 다리.

섶다리를 스쳐 지나 숲 속으로 들어가면 쉬어갈 수 있도록 벤치 몇 개가 설치돼 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군이 오대산의 박달나무로 목총을 만들던 곳. 옛길에는 박달나무를 비롯해 하얀 수피가 종잇장처럼 벗겨지는 자작나무와 황색 수피가 아름다운 거제수나무가 지천이다. 거제수나무의 황색 수피는 종이가 귀하던 시절에 종이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오대산 옛길은 동피골에서 오대산산장으로 나와 찻길의 왼쪽 구간을 1㎞ 정도 걷다 상원교를 건너 다시 오대천 오른쪽의 신선골로 접어든다. 여느 옛길과 달리 숲 속을 지나는 오대산 옛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갈 정도로 폭이 일정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일제는 두로령 등 오대산 봉우리에서 벌채한 나무를 주문진항으로 운반하기 위해 오대산 옛길에 산림철도를 건설했다. 협궤철도인 산림철도는 광복 이후에도 사용되다가 한국전쟁과 홍수 등으로 파괴되고 주민들이 고철로 팔기 위해 뜯어가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섶다리와 상원사 중간쯤에는 당시 건설한 녹슨 철도가 5∼6m 남아 일제의 침탈을 증언하고 있다.

상원사가 가까워지자 꽃봉오리를 닮은 오대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주봉인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상왕봉(1491m), 두로봉(1422m), 동대산(1434m), 호령봉(1561m) 등 다섯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선 오대산은 중국의 오대산과 형세가 흡사해 붙여진 이름.

오대산은 크고 깊지만 바위산인 설악산처럼 화려하거나 날카롭지 않고 갖출 것은 다 갖추고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소박한 산이다. 전나무 등 침엽수가 하늘에 닿을 듯 울창한 오대산 골골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수가 산을 닮아 영험한 것은 당연한 일로 오대산과 오대천에는 조선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설처럼 얽혀있다.

오대산 옛길이 끝나는 상원사 입구의 관대걸이에도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다녔다. 어느 날 오대산을 찾은 세조는 상원사 아래 오대천에서 우연히 몸을 씻고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돌로 만든 관대걸이는 당시 세조가 의관을 걸어두었던 곳.

신록이 짙어가고 야생화가 만발한 오대산 옛길. 화전민의 애환과 일제의 야욕, 그리고 한국전쟁의 아픔이 서린 오대산 옛길이 초하의 계절을 맞아 나날이 짙은 초록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평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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