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불선 통달한 탄허, 밝은 미래 전해(천지일보) 201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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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2-05-01 10:17 조회10,853회 댓글0건본문
“유불선 통달한 탄허, 밝은 미래 전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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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 탄신100주년 학술대회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의 일원이자 유불선을 통달한 탄허스님의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27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한국불교학회(회장 김용표)와 오대산 월정사(주지 정념)가 공동으로 춘계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내년 탄허(1913-1983)스님 탄신 100주년을 앞두고 탄허스님의 원융사상(불교사상을 분리시켜 보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엮는 교리통합론)을 조명하는 자리였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는 “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은 모두 유학자 출신으로 선교(불교의 선종(禪宗)과 교종(敎宗)을 아울러 이르는 말)겸수와 선교융합을 시도하고 실천했다”며 “한암과 탄허 모두 지눌의 수행법과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장진영 원광대 연구교수는 “간화선의 창시자라고 알려진 종고스님으로부터 지눌, 한암, 탄허스님에 이어지는 사상적 흐름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해 간화선의 전통 맥을 이어온 인물로 탄허스님을 지목했다. 김성철 교수(동국대 경주, 불교학부)는 “탄허스님의 도참(앞날의 길흉을 예언하는 술법)사상은 선의(善意)가 가득한 미래를 담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국민에게 나라의 밝은 미래와 희망을 선사해 큰 힘을 주었다”고 밝혔다. 탄허스님은 독립운동가 김홍규 선생의 아들로 태어나 20세까지 유학을 공부했다. 17세에 결혼해 아들을 두고 있었지만 22살에 오대산을 찾았다가 한암스님을 은사로 만나 출가했다. 유불선 사상에 두루 통달했던 탄허스님은 1955년 지금은 폐쇄된 한국대학의 요청으로 노장철학을 강의해 명성을 얻었다. 당시 수강생에는 함석헌 선생부터 양주동 박사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사상가와 학자들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스승의 유촉(죽은 뒤의 일을 부탁함)을 받들어 1961년부터 10년에 걸쳐 ‘화엄경’ 80권을 집필했다. 부처가 행한 49년 설법 중에서 가장 심오하고 위대하며 광대무변하다는 ‘화엄경’은 원문이 10조 9만 5048자에 달하며 탄허스님이 번역, 주석해 집필한 원고지가 6만 2500여 장을 헤아렸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엄론’을 자국어로 번역한 탄허스님은 원효·의상대사 이래 최대의 불사로 평가받은 이 일을 혼자서 해내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3살부터 20살까지는 유가를 공부했고, 20대에는 불교를, 30대에는 도가를 스스로 깨우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대 최고의 학승으로 이름을 떨친 탄허스님은 인류 운명에 대한 예언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유불선 3교 융합을 나침반 삼아 우주관과 생사관을 꿰뚫어 본 탄허스님은 50년 전 일본열도의 침몰 등을 예측했다. 그는 1956년 불교와 사회 전반에 걸친 인재 양성을 위해 월정사 수도원을 설치하고 후학 양성과 수행, 연구, 경전번역 등에 매진하다 1983년 법랍 49세로 월정사 방산굴에서 입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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