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검다리 건너 원색의 가을 숲으로… 단풍객 유혹하는 오대산(국민일보 쿠키뉴스) 201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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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3-10-17 07:58 조회9,471회 댓글0건본문
징검다리 건너 원색의 가을 숲으로… 단풍객 유혹하는 오대산
설악산 대청봉에서 시작된 단풍이 가을비에 떠밀려 남하를 서두르고 있다. 설악산과 오대산 등 강원도 북부의 백두대간 정상은 지난 주말에 나무의 잎이 떨어지는 등 만추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산 중턱은 만산홍엽을 한껏 뽐내고, 아래 계곡은 나날이 울긋불긋 덧칠을 하고 있다. 전나무숲길과 선재길, 그리고 등산로가 삼색의 멋을 연출하는 오대산으로 가을 단풍여행을 떠난다.
바람에도 색깔과 무늬와 냄새가 있다. 오대산 전나무숲길 산책로에서 만나는 바람은 향긋한 피톤치드를 머금고 있다. 또 오대천 징검다리를 건너는 선재길 바람은 빨강 주황 노랑 등 원색의 무늬가 새겨져 있고, 비로봉 낙엽길에서 만나는 바람은 갈색 추억을 선사한다.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 단풍여행은 천년의 숲길로 유명한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숲길에서 시작된다. 30m 높이의 전나무 1700여 그루가 솟아있는 전나무숲길은 약 1㎞.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이 걸었다는 이 길은 푸른 전나무 사이사이 단풍나무가 있어 가을에는 파스텔화 같은 풍경을 그린다.
수령 100년 안팎의 아름드리 전나무 가로수 사이로 가을햇살이 쏟아진다. 싱그러운 숲 냄새와 부드러운 흙길의 감촉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오후 햇살에 형광색으로 빛나는 단풍이 천년의 숲길을 환하게 밝힌다.
전나무숲길이 끝나고 월정사를 지나면 오대산 옛길인 선재길이 시작된다. 화전민들이 다니던 선재길은 회사거리에서 상원사 입구까지 약 9㎞. 오대천을 사이에 두고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 차도와 나란히 오대산 선재길이 이어지지만 울창한 숲에 가려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선재길의 시작점은 월정사 주차장에서 출발한 포장도로가 흙길로 바뀌는 회사거리.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운영하던 연필 만드는 ‘회사’가 있어 명명된 회사거리를 중심으로 상원사 입구까지 화전민 360여 가구가 살았지만 1968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모두 소개됐다.
회사거리에서 오대천으로 내려와 징검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숲 속 옛길은 조붓하다. 연인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딱 맞을 아담한 숲길은 물소리와 산새소리가 정겹다. 길섶에는 단풍나무를 비롯해 온갖 활엽수들이 빨간색과 노란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황홀하다. 에메랄드 색을 닮은 3개의 소(沼)가 이웃한 ‘삼형제 소’는 선재길에서 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곳. 여인의 피부처럼 하얀 너럭바위 뒤로 울긋불긋한 단풍터널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선재길은 울창한 숲이나 커다란 바위에 가로막히면 계곡으로 내려와 징검다리를 건너도록 되어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사이의 징검다리는 모두 17개. 여기에 나무다리와 섶다리가 각각 하나씩 놓여 운치를 더한다. 선재길과 찻길을 연결하는 추억의 섶다리는 굵은 소나무로 기둥을 만들고 그 위에 통나무를 얹은 후 소나무 잔가지를 얽어 놓고 흙을 덮어 만들었다.
여느 옛길과 달리 숲 속으로 이어지는 선재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정도로 폭이 일정하다. 일제가 두로령 등 오대산 봉우리에서 벌채한 나무를 주문진항으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었던 산림철도에 산책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협궤철도인 산림철도는 광복 이후에도 사용되다가 전쟁과 홍수 등으로 파괴되고 주민들이 고철로 팔기 위해 뜯어가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다. 하지만 섶다리와 상원사 중간쯤에는 녹슨 철도가 5∼6m 남아 일제의 침탈을 증언하고 있다.
상원사가 가까워지자 색색으로 단장한 오대산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육산(흙으로 된 산)인 오대산은 바위산인 설악산처럼 화려하거나 날카롭지 않고 갖출 것은 다 갖추고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소박한 품성을 지녔다. 전나무 등 침엽수가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한 오대산과 오대천 곳곳에는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얽혀있다.
선재길이 끝나는 상원사 입구의 관대걸이에도 세조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온다.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다녔다. 어느 날 오대산을 찾은 세조는 상원사 아래 오대천에서 우연히 몸을 씻고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돌로 만든 관대걸이는 당시 세조가 의관을 걸어두었던 곳.
관대걸이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오대산 산행이 시작된다. 국보 제38호 상원사종으로 유명한 상원사를 지나 가파른 등산로로 진입하면 4층짜리 기와지붕이 멋스런 사자암이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조붓한 산길을 오르면 적멸보궁이 위치한 삼거리. 적별보궁에서 비로봉까지 1.5㎞는 낙엽이 두툼하게 깔린 푹신푹신한 산길이지만 비로봉을 400m 앞두고는 흘림골 만큼 가파른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다.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3m)을 중심으로 상왕봉(1491m), 두로봉(1422m), 동대산(1434m), 호령봉(1561m) 등 다섯 개의 봉우리가 꽃봉오리처럼 생겼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는 멀리 주문진과 동해바다가 보이고, 남쪽으로는 바람개비를 닮은 풍력발전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자령과 황병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비로봉을 비롯해 오대산 봉우리의 정상은 만추를 지나 벌써 초겨울이다. 매서운 바람이 휩쓸고 간 정상 부근의 키 작은 나무들은 불과 며칠 전 화려했던 가을의 기억을 모두 벗어버리고 나목이 되었다. 그리고 비로봉 정상 아래로는 하산하는 가을이 등고선을 따라 골골마다 화려한 색깔로 수를 놓고 있다.
평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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