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한반도는 산지가 많아 산림이 울창하였으나 16~17세기를 거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목재 수요도 따라서 증가하면서 산림은 고갈되기 시작하였고, 특히 온돌의 대중화로 장작 수요가 급속히 많아져 더더욱 산림자원 고갈에 시달리게 되었다. 거기다가 일제가 목재를 수탈할 목적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나무들을 마구 베어가면서 사실상 절정에 다다랐다. 또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산림의 황폐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래서 1950년대에 이미 전국 산림의 절반은 헐벗은 민둥산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미 1982년에 식량농업기구(FAO)가 영국, 독일, 뉴질랜드와 함께 우리나라를 세계 4대 조림 국가로 꼽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로 선정한 기적을 일궈냈다. 2019년 FAO 세계산림자원보고서 임업통계 가운데 OECD 주요국 산림률(국토면적 대비 산림면적)에 따르면, 핀란드가 72.9%로 1위, 2위는 스웨덴(68.7%), 3위가 일본(68.5%), 한국이 63.0%로 서방선진국들 보다 월등히 높은 4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조림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는 희생적으로 헌신한 선구자들이 있었다. 맨 먼저 연료림 조성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낳은 유명한 임학자 현신규 박사를 꼽을 수 있다. 일본 소나무를 개량해 병충해에 강하고 보다 크게 자라는 신품종을 개발해서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에까지 공급했다. 그리고 필생의 야심작 ‘은(銀)수원 사시나무’ 개발에 성공하였다. 그는 철저한 산림부흥론자였는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거국적인 식목사업에 그를 동참시켰다. 1964년 서독 방문에서 박 대통령은 유럽의 우거진 숲을 보고는 우리나라 산들이 푸르게 변할 때까지 다시는 유럽 땅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여기에 정부에서는 그린벨트 제도를 도입해 과도한 도시화로 말미암는 산림파괴를 방지하였다. 이 사업을 지시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립수목원 ‘숲의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다. 이 명예의 전당에는 4명이 더 올라 있다. 이 땅에 자라는 나무 종자를 수집하고자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국토의 구석구석을 누빈 ‘나무 할아버지’로 불렸던 김이만(1901~1985), 전직 미 해군 대위로 1962년부터 40년 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충남 태안군의 산림을 1만 300여 식물종이 사는 천리포수목원을 조성한 민병갈(Carl Ferris Miller, 1921~2002), 1950년대 종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전남 장성군의 임야 54헥타르를 제일가는 조림성공지로 만든 임종국(林種國, 1915~1987), 그리고 활엽수 단지 조성과 조림지를 교육기관에 기증하고 임업 교육에 힘쓴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 헌정되어 있다.
경상국립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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