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허 스님 숨 쉬는 ‘허공의 방산굴’ 백미(현대불교) 2014.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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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6-05 14:55 조회10,027회 댓글0건본문
탄허 스님 숨 쉬는 ‘허공의 방산굴’ 백미 | ||||||||||||||||||||||||||||||||||||
新 사찰 건축 9. 탄허기념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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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준공
외벽 금강경으로 장엄 전통에서 배운 현대적 동선 ‘교육’계승위해 강당 크게 지어
격납고문 등 새로운 시도 처마·단청 현대적으로 재현
스님의 유품을 모아놓은 전시장(일소대)을 비롯해 강당으로 쓰이는 보광명전과 법당인 방산굴 등으로 이뤄진 탄허기념박물관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현대식 건축물로, 2010년 11월 26일 개원했다. 대지면적 1,984.28㎡, 건축면적 987.04㎡,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축가 이성관(65·한울건축 대표)이 설계한 탄허기념박물관은 탄허 스님을 기리는 뜻과 함께 건축적인 가치를 조명 받은 건물이다. 격납고식 창문을 통한 개폐식 외벽, 공간 속에 떠있는 법당 등 새로운 시도를 도입한 기념관은 전통적인 사찰 공간을 현대건축 속에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설계자인 이성관 건축가는 탄허기념박물관으로 2010년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제1회 김종성건축상을 수상했다.
한 권의 경전을 건축으로
탄허기념박물관 앞에 서면 ‘금강경’부터 만난다. 유리로 되어 있는 외벽의 한 쪽 면을 금강경(한문) 전문으로 장엄했기 때문이다. 스님의 유지를 받드는 성전(聖殿)이며, 학림임을 상징한다. 모든 건축이 독특함을 가지고 있겠지만 탄허기념박물관이야말로 독특함으로 가득 차 있는 건축이다. 그 중 하나가 금강경으로 장엄된 외벽이다. 유리벽면이 받아들이는 변화무쌍한 빛의 변화가 매 순간 변화무쌍한 금강경을 보여준다. 또한 금강경 한 글자 한 글자를 지나온 빛은 건물 안쪽에 또 다른 금강경을 새긴다. 설계를 담당했던 이 건축가는 철재와 콘크리트로 지은 이 집이 단순한 ‘돌집’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건물의 가장 퍼블릭한 벽면을 건축적인 측면이 아닌 종교적인 ‘의미’의 비쥬얼을 담당하게 하고 싶었다. 탄허불교재단 이사장이며, 탄허기념박물관 관장인 혜거 스님이 금강경을 추천했다. 이 건축가는 이 변화무쌍한 문자들로 ‘무상(無常)’을 은유하고 싶었다고 했다. 탄허기념박물관은 한 권의 경전이기도 하다. 전통에서 배운 현대적 동선
기념박물관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108개의 녹슨 철주들을 지나게 된다. 108개의 철주는 108번뇌를 상징하는 것으로, 녹슨 철을 소재로 하여 우리의 본성을 가리고 있는 번뇌 망상을 떨쳐버리는 수행의 필요성을 나타내고 있다. 또 하나의 독특함이다. 이 건축가는 내부로 진입하는 과정을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우리나라 전통의 가람배치 형식에서 가져왔다. 외벽에서 시작되는 출입문을 통해 바로 내부로 진입할 수도 있지만 이 건축가는 일주문을 연상케 하는 캐노피(덮개 형태)와 108개의 철주를 지나는 긴 동선을 두어 내부로 들어서는 과정을 최대한 확장시켜놓았다. 제한된 공간을 분할함으로써 전통 가람에서 가질 수 있는 공간적 과정, 즉 입정의 시간을 마련한 것으로, 전통에서 배운 현대적 동선인 것이다. 탄허 스님의 삶의 궤적을 볼 수 있는 전시관과 가람의 최종 공간인 법당은 건물의 가장 끝인 3층에 있다. 이 또한 과정적 공간을 두기 위함이다.
인재양성 정신 계승한 공간, 강당
신을 벗고 내부로 들어서면 사무공간과 우측으로 강당으로 쓰이는 보광명전이 있다. “강당을 크게 지었습니다.” 설계를 맡았던 이성관 건축가는 탄허기념박물관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를 이렇게 설명했다. 설계를 맡은 이 건축가는 탄허 스님의 가장 큰 업적을 후학을 기른 ‘인재불사’로 보았다. 탄허 스님은 평소 “법당 100채를 짓는 것 보다 스님 한 사람 공부시키는 것이 더 큰 불사다.”며 인재양성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 건축가가 강당을 크게 설계한 이유는 교육을 중요시 했던 스님의 정신을 표현하고 계승하기 위한 것으로, 스님의 업적을 진정으로 기리는 길은 기념관이 그 스님이 강조했던 ‘인재양성’, 즉 교육의 ‘장(場)’으로 활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강좌와 강연 등 배움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보광명전’이란 현판을 달고 있는 대강당은 불교 경전, 한문학, 민족학, 고대사 등의 학술대회와 백일장을 열고 있다. “대부분의 기념관, 박물관은 주인공의 유물을 전시하고 고인이 살아낸 삶의 궤적을 알리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일반적이다.”고 건축가는 말했다. 이 건축가는 과거에 머무르는 화석화된 ‘기념관’에서 진일보한 기념박물관을 짓고 싶었다. 일반적으로 기념관의 강당은 핵심 공간이 아니다. 하지만 이 건축가는 기본적인 유물전시에 필요한 공간을 만들고 난 후 나머지 공간을 모두 강당에 할애했다. 기념박물관이 과거의 업적만을 전시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고, 미래지향적인 공간으로서의 진정한 ‘탄허기념박물관’을 실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탄허기념박물관은 스님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는 ‘공간’이면서 스님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는 ‘시간’이 공존하는 건축인 것이다. 그리고 보광명전에는 이 건축가가 오랜 시간을 투자하면서 어렵게 완성한 ‘시도’가 있다. 출입문이 아닌 벽면을 외부와의 소통의 과정으로 설정한 것이다. 벽면을 뚫어 만든 길이 7.5미터 짜리 접이식(격납고 개폐문 형태) 창문이다. 창문을 들어 올리면 건물 중앙에 만든 연못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엣지가 없는 형태의 연못이 사라진 벽면을 채우면 안과 밖의 경계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탄허기념박물관의 백미 방산굴 탄허 스님은 역경불사를 통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기억되는 것은 역시 〈신화엄경합론〉일 것이다. 〈신화엄경합론〉은 이통현의 〈화엄론〉과 징관의 〈화엄경〉주석서를 역해해 묶은 것으로 스님의 불사 중에서도 대작불사이다. 스님이 오랜 동안 주석했던 월정사 ‘방산굴’은 이통현이 〈화엄론〉을 지은 장소인 중국 북경의 ‘방산토굴’에서 온 것이다. 또한 방산굴은 스님이 속세에서의 인연을 끝내고 적멸에 든 의미 있는 공간이다. 탄허기념박물관에도 방산굴이 있다. 전시실과 함께 메인 층인 3층에 자리하고 있는 방산굴은 강당인 보광명전 안에 있는데 허공에 떠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스님의 법명인 ‘탄허(呑虛)’의 허공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으로 탄허기념박물관이 가진 독특함의 백미이다. 탄허 스님은 역경불사를 통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기억되는 것은 역시 〈신화엄경합론〉일 것이다. 〈신화엄경합론〉은 이통현의 〈화엄론〉과 징관의 〈화엄경〉주석서를 역해해 묶은 것으로 스님의 불사 중에서도 대작불사이다. 스님이 오랜 동안 주석했던 월정사 ‘방산굴’은 이통현이 〈화엄론〉을 지은 장소인 중국 북경의 ‘방산토굴’에서 온 것이다. 또한 방산굴은 스님이 속세에서의 인연을 끝내고 적멸에 든 의미 있는 공간이다. 탄허기념박물관에도 방산굴이 있다. 전시실과 함께 메인 층인 3층에 자리하고 있는 방산굴은 강당인 보광명전 안에 있는데 허공에 떠있는 형태를 하고 있다. 이는 스님의 법명인 ‘탄허(呑虛)’의 허공을 떠오르게 하는 대목으로 탄허기념박물관이 가진 독특함의 백미이다. 보광명전을 나와 3층으로 오르면 방산굴이 보인다. 보광명전에서 올려다보이던 방산굴에 들면 이번엔 보광명전이 내려다보인다. 법당의 내부도 또한 새롭게 시도된 ‘독특함’들이 있다. 전통적인 닫집의 형태는 아니지만 현대적으로 새롭게 디자인한 닫집과 그 닫집을 통해 내려오는 조명의 형태다. “전기가 없었던 과거의 법당은 마당에서 반사되는 빛을 이용했죠. 닫집의 형태도 마당에서 올라오는 조명을 고려해 만들었죠.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죠.” 주변의 환경이 변했기 때문에 건축의 형태도 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가람의 끝이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면 탄허기념박물관의 끝은 탄허 스님이 계신 곳이다. 방산굴(법당)을 나서면 탄허 스님의 일대기와 유품이 전시되어 있는 상설전시장(일소대)이 있다. 스님께서 〈화엄경〉을 처음 번역하신 영은사 결사도량 ‘일소굴’을 상징한다.
탄허기념박물관은 기념관과 박물관 그리고 법당(절)이라는 세 가지 개념이 공존하는 건축이다. 다시 외부로 나와 탄허기념박물관을 바라보면 건축가가 끝까지 고민한 마음을 볼 수 있다. 건물의 한 쪽 모서리를 파내고 그 안쪽에 전통 양식에서 볼 수 있는 처마를 현대적인 형태로 들여놓았다. 처마는 오방색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이 역시 전통적 형태에서 볼 수 있는 단청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철근과 콘크리트 그리고 유리로 지어진 현대적 건물 속에 건축가는 오랜 세월 우리 건축의 ‘전통’이었던 처마와 단청을 남겨놓았다. 마치 후손을 위한 힌트처럼, 잊어서는 안 되는 모국어처럼. 이렇듯 탄허기념박물관은 불교적 의미를 상징하는 은유, 그리고 탄허 스님의 정신적 흔적이 곳곳에 스며있는 건축이며, 전통의 힌트를 남겨 놓은 현대건축이며, 전통을 새롭게 해석해 현대적인 불교건축의 모델을 제시한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정림건축 등에서 실무를 익힌 후 도미. 컬럼비아건축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뉴욕 HOK에서 수석디자이너로 다년간 근무. 1989년 (주)건축사사무소 한울건축을 설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주요작품으로 전쟁기념관, 데이콤강남사옥, 수입777, 반포577, 조만식기념관+웨스트민스터홀, EL Tower, 탄허기념박물관, 여초김응현서예관 등이 있으며,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 한국건축가협회상, 서울시건축상 금상, 김종성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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