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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겸손했던 한암 스님(현대불교) 201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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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6-07 12:59 조회8,6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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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겸손했던 한암 스님
〈1〉한서운(韓瑞雲) 보살님에게
윤창화 <민족사 대표>  changhwa9@hanmail.net
한암선사(漢岩, 1876~1951)의 편지를 연재한다. 한암선사는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으로 종정을 네 번이나 역임했으며, 오대산 상원사 선원에서 27년 동안 거의 두문불출하고 납자지도와 좌선에 매진하셨다. 한암선사의 편지는 약 45통이 남아 있다. 스님들에게 쓴 편지는 순한문체이고, 거사들에게는 국한문체, 보살님들에게는 순 한글로 썼다. 윤창화 대표의 번역과 해설로 선사의 면면 너머 스님의 법향을 편지 속에서 만나본다.
〈편집자 주〉
 
한서운(韓瑞雲) 보살님에게
다녀가신 후 지금까지 기력이 강건하시고, 염불 잘 하신다니 반가운 말씀 다 아뢰올 수 없사오며, 법문 못 들으신 것을 한하시니, 법문은 신심으로 만나보는 것도 법문이요, 선지식이라고 믿고 생각하시는 것이 모두가 법문이오며, 재수형통하기를 기도하시는 것도 법문이오며, 화두는 별도로 찾으실 것 없이 일심으로 염불하시는 것이 화두와 다르지 않습니다. 화두도 일심, 염불도 일심, 모두가 일심이라야 성취하오니, 온갖 사무 보시는 중에 일심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간단없이 염불하시면 일거양득으로, 세(世) 출세간이 다 구족하게 성취하십니다. 보내신 금액은 잘 찾았습니다. 이곳은 다 무사합니다. 이만 그치옵나이다.
기축(1949년) 삼월 초삼일
산승 한암 사상(답장 올림)
 
〈추신〉 보내신 금액은 잘 받았사오나 생일은 이 어려운 때에 무슨 생일 여부가 있습니까? 너무 황공 감사합니다. 생축 망축 축원은 다 전과 여히 성심 거행합니다.
이 편지는 한암선사가 1949년 3월 3일에 강원도 홍천에 살고 있는 한서운(韓瑞雲) 보살에게 보낸 편지이다. 법명은 일여행(一如行)인데, 아마도 홍천 지역에서는 가장 신심 있는 보살님이었던 것 같다.
한암(漢岩)선사는 경봉선사 등 스님들과 왕래한 편지에서는 100% 한문을 사용했으나 여성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순 한글 편지이다. 아무래도 보살님들은 한문 독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세심하게 배려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한글 편지가 아주 단아하고 예술적이다. 당시 한암선사는 오대산 상원사에 계실 때였고, 입적(1951년)하기 2년 전으로 74세셨다.
〈편지의 법문〉 : 한서운 보살이 정월 해제 때 상원사에 왔었으나 대중공양 준비 등으로 바빠서 미쳐 한암선사의 해제법문을 듣지 못했던 것 같다. 한서운 보살이 그것을 한탄하자 한암선사는 법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신심으로 상원사에 와서 이렇게 만나는 것도 법문이고, (나를) 선지식이라고 믿고 생각하는 것도 법문이고, 재수형통하기를 기도하는 것도 법문이고, 모두가 다 법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문 듣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말라하셨다.
그리고 화두는 별도로 찾을 것 없이 일심으로 염불하는 것이 화두와 다르지 않으니 화두도 일심, 염불도 일심, 모두가 일심이라야 성취된다고 일러주신다. 이 역시 한 편의 법문이다.
신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한자로 써야할 것도 모두 한글로 쓰셨다. 예컨대 편지 끝에 ‘산승 한암 사상’에서 ‘사상’은 한자 ‘謝上’으로 ‘올림’이다.
〈추신〉에서 ‘전과 여히 성심거행’한다는 말이 있는데, ‘여히’는 한자 ‘如히’이다. 이와 같이 한자는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으셨다.
〈추신〉에서 “생일은 이 어려운 때에 무슨 생일 여부가 있습니까? 너무 황공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한암선사의 생신은 음력 3월 27일이고, 이 편지를 보낸 날자는 3월3일이다.
아마 한서운 보살님이 한암선사께 편지를 보내 곧 다가올 큰스님 생신을 걱정한 모양이다. 당시는 남한에도 좌우익이 대립하여 도시는 물론 산 속 오대산에도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때였다. 한암선사는 이렇게 어려운 때에 생일은 무슨 생일잔치를 하느냐고 기겁하고 있다.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황공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편지 내용에서도, 그리고 추신에서도 너무 겸손한 모습이다.

 
* 기사원문보기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79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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