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의 인문학](17) 오대산 패밀리(경향신문) 2014.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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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10-25 09:20 조회8,592회 댓글0건본문
[우리 산의 인문학](17) 오대산 패밀리
* 기사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10242056015&code=210100
ㆍ천축국서 중국·한국까지… 불교 전파의 자취 ‘문수보살 로드’
오대산 상원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문수동자좌상이 있다. 동자머리를 튼 천진한 어린이 보살상이다.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가 봉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나 등창이 나았다는 설화와 연관되어 있다. 이렇듯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오대산은 문수신앙의 본산이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대승보살이다. 여느 사찰의 대웅전에 들어서면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왼편에 문수보살이 있는 것만 보아도 한국불교에 문수신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드리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자취는 한국의 산 이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문수산, 길상산, 오대산, 청량산, 사자산은 명칭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서로 다른 산이지만 문화적으로는 같은 갈래의 산 이름이다. 모두 불교의 문수보살과 관련되어 이름을 얻은 산이다. 문수는 문수사리의 준말로 길상(吉祥)이고 청량산(오대산)에 머물며 사자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오대산 문수신앙이 전파되면서 공간적으로 파생된 산 이름 갈래들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오대산은 중국의 오대산에서 유래된 산 이름이다. 그렇다면 중국 오대산은 어디서 왔을까? 인도의 불교 경전에 있는 가상의 산인 청량산에서 왔다. 인도의 청량산이 시조산인 것이다.
■ 범아시아적 산악문화의 소산, 오대산
요즘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세계를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손오공의 부처님 손바닥이 따로 없구나 하고 느껴진다. 부처님처럼 앉아서 세상을 보는 글로벌 시대에 생각하면 옛날에도 그랬을까 싶지만 국제 교류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었다. 산의 문화사도 그랬다. 한국의 명산과 명산문화는 세계사적 흐름의 텍스트 속에 놓여 있었다. 오대산과 오대산 문수신앙도 인도를 뿌리로 중국에서 생겨나 한국과 일본으로까지 전파된 범아시아적 산악문화의 소산이다.
강원도 강릉과 홍천, 평창에 걸쳐 있는 1563m의 오대산과 이 산에서 펼쳐진 불교 문화전통은 7세기경 중국 산시성의 오대산에서 도입한 것이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도 그랬다. 우리보다 늦은 10세기경 중국의 오대산 문화를 수입했다. 983년에 송나라에 들어갔던 조연(?~1016)이 귀국한 후 중국의 오대산 신앙을 교토의 아타고산(愛宕山) 신앙에 이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오대산 문화는 자국의 문화코드에 맞게 토착화하였고 전래의 신사와 결합된 신불(神佛) 혼합적인 모습을 띤다고 한다. 이처럼 오대산은 아시아적 공간스케일의 산이었다.
■ ‘화엄경’ 상상속 산 청량산의 재해석
몇 해 전 중국 산시성 흔주에 있는 오대산을 답사한 적이 있다. 우리 오대산을 봐와서 마음에 담아둔 터라 중국 오대산은 어떤 모습일지 적잖이 궁금했다. 오대산에 당도한 순간 어마어마한 산의 덩치에 그만 입이 떡 벌어졌다. 높이만 하더라도 화북지방에서 가장 높은 3058m였다. 산만 보고 놀란 게 아니었다. 산 아래 눈길 닿는 곳마다 사찰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불국토가 재현된 듯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여기는 2009년 불교건축경관이 탁월한 산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된 세계유산 가치는 이렇게 평가됐다. “중국 오대산은 종교건축과 산악이 조화롭게 결합된 문화경관으로, 자연경관과 불교문화의 융합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잘 보여준다. 산이 불교의 성소가 되는 사상적 교류를 반영하며 산이 종교적인 수도처로 진화된 문화전통의 증거다.”
오대산 문화의 기원은 <화엄경>의 청량산에서 유래한다. 불경에 등장하는 심상의 산을 중국인들이 실제 산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오대산도 그 원류는 멀리 인도인들의 사유에 닿는다. <화엄경>에 “동북쪽에 청량산이라는 곳이 있다. 과거에 보살이 항상 머물고 있었는데 현재는 문수보살이 있어 일만보살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하고 있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불교를 받아들여 토착화하면서 이 청량산을 자기 나라의 오대산으로 해석하였다. 장소의 동일시와 경관화를 통해 가상을 실제로 단단히 굳히는 문화정치적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의 오대산도 인도의 청량산처럼 영토의 동북쪽에 있고 기후조건도 비슷하다는 것이 근거가 되었다. 북위의 낙양 천도(494) 이후에 오대산이 북방 경계에 위치했다는 점도 지정학적인 이유가 되었다. 오대산은 나라를 수호하는 불산(佛山)으로 지정된 것이다.
■ 다섯 봉우리마다 불교 성지… 불국토의 꿈
신라도 산악 불교문화가 강성했던 터라 중국에서 벌어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남의 일로 모른 체할 리 없었다. 7세기에 이르자 신라는 문수보살이 우리 영토의 오대산에도 머물고 오대의 각 봉우리마다 일만보살씩 총 오만보살의 진신(眞身)이 나타난다고 했다. 우리 오대산은 중국 오대산과 높이나 규모는 크게 다르지만 영토의 위치나 산의 모양새는 비슷하다. 축소판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대산 문화를 도입한 자장율사는 636년 왕명으로 파견되어 중국 오대산을 직접 보았고 귀국 후에 신라에서 비슷한 산을 골랐던 것이다. 7년 후 그가 어렵사리 찾아낸 닮은꼴 산이 강원도 오대산이었다. 두 산 모두 지리적으로도 영토의 동북방에 있었고 모양새도 토산으로 정상부가 다섯 봉우리의 평평한 대지(臺地)로 이루어져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 그 역사적 현장을 분명히 기록했다.
“자장이 오대산의 태화지 곁 문수보살 석상에서 일주일간 기도를 했더니 꿈에 부처가 나타나 네 구절의 시를 주었다. 이튿날 한 스님이 와서 시구의 뜻을 알려줬다. 그 스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사, 바리때, 부처의 머리뼈 한 조각을 자장에게 건네면서 부탁했다. ‘이것은 석가세존의 것이니 잘 보관하십시오. 당신 나라의 동북쪽 명주(溟州) 경계에 오대산이 있는데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고 계시니 가서 뵈십시오’라고 하고 사라졌다. 자장이 귀국하려 하는데 태화지의 용이 나타나 전날 만난 스님이 문수보살이라고 했다. 귀국해 오대산 기슭에 이르러 띠집을 짓고 살다가 드디어 문수보살을 만났다.”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가져온 불사리는 강원도 오대산의 적멸보궁에 모셔졌다. 오대산에는 월정사, 상원사를 비롯하여 다섯 봉우리마다 모두 절이 들어서면서 한국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가운데 중대에는 사자암(獅子庵)이 있다. 문수의 사자로 얻은 이름이다. 자장은 오대산(상원사) 외에 설악산(봉정암), 태백산(정암사), 사자산(법흥사)에도 불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모두 부처 진신의 뼈가 묻힌 성산(聖山)이 된 것이다.
오대산 이름과 오대산 문화는 지방 곳곳에도 전파되었다. 중국에서는 광주, 호북, 광둥 등 다른 지방에서도 비슷한 산을 오대산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오대산의 원래 이름인 청량산이 전국 각지에 생겨났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870m)을 위시하여 인천 청량산(173m), 경기 안성 청량산(340m)과 남한산 청량산(482m), 경남 마산 청량산(318m), 전북 완주 청량산(713m)과 고창 청량산(622m) 등으로 우뚝우뚝 솟아났다.
인천의 청량산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중국 오대산의 징관조사(738~839)가 열반에 들면서 “내 법은 동쪽의 해 뜨는 나라에서 꽃피운다”고 했다. 조사의 법통을 이은 두 수제자가 백마를 타고 동쪽나라를 향해 달렸는데 송도의 청량산 중턱에 다다르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더란다. 중국 오대산 문화의 전파를 암시하는 설화다. 고창의 청량산도 자장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에서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깨닫고 귀국한 자장은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산세가 중국의 청량산(오대산)과 너무도 비슷해 기이하게 여겨 바위굴에서 7일간 기도를 했다. 문수보살이 땅속에서 솟아나오는 꿈을 꾸고 땅을 파 보니 문수석상이 있었다. 그 뒤부터 이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 문수·사자·청량·길상·오대… 근원 같은 산
문수산, 사자산, 길상산 이름도 같은 오대산 갈래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 북쪽에 문수산(1207m)이라고 있다. 조선 초에 봉화 고을의 진산이었다. 신라시대 때 평창의 수다사에서 수도하던 자장이 이 산에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문수산이라 했단다. 또 다른 문수산은 김포에도 있고 울산에도 있다. 울산 문수산(600m)은 고려시대에 라마교의 전당이었다는 전설이 있어 중국 오대산에서 성행한 라마교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에 있는 사자산(1167m)에는 어느 도승이 사자를 타고 이 산으로 왔기에 이름 지어졌다는 지명 유래가 전한다. 그 도승은 자장임에 분명하다. 사자산 적멸보궁 옆에는 자장이 수도했다는 토굴이 있고 당나라에서 사자 등에 진신사리를 싣고 온 석함(石函)도 있단다. 사자산의 모양새도 영락없이 사자를 빼닮았으니 오대산처럼 닮은꼴을 찾아서 고른 것일 게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의 길상산(336m)도 마찬가지다. 이 산에는 왕에게 진상했던 유명한 약쑥이 나는데 흥미롭게도 ‘사자발쑥(獅子足艾)’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수의 사자와 연관 있는 이름으로 보인다.
이처럼 오대산 갈래의 산 이름만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지역적으로 다채로운 문화사가 펼쳐진다. 서로 다른 산 이름이지만 같은 갈래의 한 꼬지로 묶을 수 있다. 문수보살의 오대산 패밀리다.
< 최원석 | 경상대 HK교수>
오대산 상원사에는 국보로 지정된 문수동자좌상이 있다. 동자머리를 튼 천진한 어린이 보살상이다.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가 봉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나 등창이 나았다는 설화와 연관되어 있다. 이렇듯 조선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오대산은 문수신앙의 본산이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하는 대승보살이다. 여느 사찰의 대웅전에 들어서면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왼편에 문수보살이 있는 것만 보아도 한국불교에 문수신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드리웠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자취는 한국의 산 이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문수산, 길상산, 오대산, 청량산, 사자산은 명칭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서로 다른 산이지만 문화적으로는 같은 갈래의 산 이름이다. 모두 불교의 문수보살과 관련되어 이름을 얻은 산이다. 문수는 문수사리의 준말로 길상(吉祥)이고 청량산(오대산)에 머물며 사자를 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오대산 문수신앙이 전파되면서 공간적으로 파생된 산 이름 갈래들이다. 알다시피 한국의 오대산은 중국의 오대산에서 유래된 산 이름이다. 그렇다면 중국 오대산은 어디서 왔을까? 인도의 불교 경전에 있는 가상의 산인 청량산에서 왔다. 인도의 청량산이 시조산인 것이다.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단기출가학교 입교자들이 삭발을 하고 일주문에서 대웅전 앞까지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 이상훈 선임기자
■ 범아시아적 산악문화의 소산, 오대산
요즘 누구나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세계를 들락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손오공의 부처님 손바닥이 따로 없구나 하고 느껴진다. 부처님처럼 앉아서 세상을 보는 글로벌 시대에 생각하면 옛날에도 그랬을까 싶지만 국제 교류는 동서고금이 따로 없었다. 산의 문화사도 그랬다. 한국의 명산과 명산문화는 세계사적 흐름의 텍스트 속에 놓여 있었다. 오대산과 오대산 문수신앙도 인도를 뿌리로 중국에서 생겨나 한국과 일본으로까지 전파된 범아시아적 산악문화의 소산이다.
강원도 강릉과 홍천, 평창에 걸쳐 있는 1563m의 오대산과 이 산에서 펼쳐진 불교 문화전통은 7세기경 중국 산시성의 오대산에서 도입한 것이었다. 한국만 그런 게 아니라 일본도 그랬다. 우리보다 늦은 10세기경 중국의 오대산 문화를 수입했다. 983년에 송나라에 들어갔던 조연(?~1016)이 귀국한 후 중국의 오대산 신앙을 교토의 아타고산(愛宕山) 신앙에 이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오대산 문화는 자국의 문화코드에 맞게 토착화하였고 전래의 신사와 결합된 신불(神佛) 혼합적인 모습을 띤다고 한다. 이처럼 오대산은 아시아적 공간스케일의 산이었다.
■ ‘화엄경’ 상상속 산 청량산의 재해석
몇 해 전 중국 산시성 흔주에 있는 오대산을 답사한 적이 있다. 우리 오대산을 봐와서 마음에 담아둔 터라 중국 오대산은 어떤 모습일지 적잖이 궁금했다. 오대산에 당도한 순간 어마어마한 산의 덩치에 그만 입이 떡 벌어졌다. 높이만 하더라도 화북지방에서 가장 높은 3058m였다. 산만 보고 놀란 게 아니었다. 산 아래 눈길 닿는 곳마다 사찰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불국토가 재현된 듯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여기는 2009년 불교건축경관이 탁월한 산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된 세계유산 가치는 이렇게 평가됐다. “중국 오대산은 종교건축과 산악이 조화롭게 결합된 문화경관으로, 자연경관과 불교문화의 융합이라는 철학적 사유를 잘 보여준다. 산이 불교의 성소가 되는 사상적 교류를 반영하며 산이 종교적인 수도처로 진화된 문화전통의 증거다.”
오대산 문화의 기원은 <화엄경>의 청량산에서 유래한다. 불경에 등장하는 심상의 산을 중국인들이 실제 산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오대산도 그 원류는 멀리 인도인들의 사유에 닿는다. <화엄경>에 “동북쪽에 청량산이라는 곳이 있다. 과거에 보살이 항상 머물고 있었는데 현재는 문수보살이 있어 일만보살을 거느리고 항상 설법하고 있다”는 문구가 있다. 그런데 중국인들이 불교를 받아들여 토착화하면서 이 청량산을 자기 나라의 오대산으로 해석하였다. 장소의 동일시와 경관화를 통해 가상을 실제로 단단히 굳히는 문화정치적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의 오대산도 인도의 청량산처럼 영토의 동북쪽에 있고 기후조건도 비슷하다는 것이 근거가 되었다. 북위의 낙양 천도(494) 이후에 오대산이 북방 경계에 위치했다는 점도 지정학적인 이유가 되었다. 오대산은 나라를 수호하는 불산(佛山)으로 지정된 것이다.
중국 오대산의 불교 경관. 가운데 불사리를 모신 백탑이 보인다. | 최원석 교수 제공
중국 산시성 오대산에서 독경하고 있는 승려들의 모습. | 최원석 교수 제공
■ 다섯 봉우리마다 불교 성지… 불국토의 꿈
신라도 산악 불교문화가 강성했던 터라 중국에서 벌어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남의 일로 모른 체할 리 없었다. 7세기에 이르자 신라는 문수보살이 우리 영토의 오대산에도 머물고 오대의 각 봉우리마다 일만보살씩 총 오만보살의 진신(眞身)이 나타난다고 했다. 우리 오대산은 중국 오대산과 높이나 규모는 크게 다르지만 영토의 위치나 산의 모양새는 비슷하다. 축소판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오대산 문화를 도입한 자장율사는 636년 왕명으로 파견되어 중국 오대산을 직접 보았고 귀국 후에 신라에서 비슷한 산을 골랐던 것이다. 7년 후 그가 어렵사리 찾아낸 닮은꼴 산이 강원도 오대산이었다. 두 산 모두 지리적으로도 영토의 동북방에 있었고 모양새도 토산으로 정상부가 다섯 봉우리의 평평한 대지(臺地)로 이루어져 있다. 일연은 <삼국유사>에 그 역사적 현장을 분명히 기록했다.
“자장이 오대산의 태화지 곁 문수보살 석상에서 일주일간 기도를 했더니 꿈에 부처가 나타나 네 구절의 시를 주었다. 이튿날 한 스님이 와서 시구의 뜻을 알려줬다. 그 스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사, 바리때, 부처의 머리뼈 한 조각을 자장에게 건네면서 부탁했다. ‘이것은 석가세존의 것이니 잘 보관하십시오. 당신 나라의 동북쪽 명주(溟州) 경계에 오대산이 있는데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고 계시니 가서 뵈십시오’라고 하고 사라졌다. 자장이 귀국하려 하는데 태화지의 용이 나타나 전날 만난 스님이 문수보살이라고 했다. 귀국해 오대산 기슭에 이르러 띠집을 짓고 살다가 드디어 문수보살을 만났다.”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가져온 불사리는 강원도 오대산의 적멸보궁에 모셔졌다. 오대산에는 월정사, 상원사를 비롯하여 다섯 봉우리마다 모두 절이 들어서면서 한국 불교의 성지가 되었다. 가운데 중대에는 사자암(獅子庵)이 있다. 문수의 사자로 얻은 이름이다. 자장은 오대산(상원사) 외에 설악산(봉정암), 태백산(정암사), 사자산(법흥사)에도 불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모두 부처 진신의 뼈가 묻힌 성산(聖山)이 된 것이다.
오대산 이름과 오대산 문화는 지방 곳곳에도 전파되었다. 중국에서는 광주, 호북, 광둥 등 다른 지방에서도 비슷한 산을 오대산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는 오대산의 원래 이름인 청량산이 전국 각지에 생겨났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870m)을 위시하여 인천 청량산(173m), 경기 안성 청량산(340m)과 남한산 청량산(482m), 경남 마산 청량산(318m), 전북 완주 청량산(713m)과 고창 청량산(622m) 등으로 우뚝우뚝 솟아났다.
인천의 청량산에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중국 오대산의 징관조사(738~839)가 열반에 들면서 “내 법은 동쪽의 해 뜨는 나라에서 꽃피운다”고 했다. 조사의 법통을 이은 두 수제자가 백마를 타고 동쪽나라를 향해 달렸는데 송도의 청량산 중턱에 다다르자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더란다. 중국 오대산 문화의 전파를 암시하는 설화다. 고창의 청량산도 자장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중국에서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깨닫고 귀국한 자장은 우연히 이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산세가 중국의 청량산(오대산)과 너무도 비슷해 기이하게 여겨 바위굴에서 7일간 기도를 했다. 문수보살이 땅속에서 솟아나오는 꿈을 꾸고 땅을 파 보니 문수석상이 있었다. 그 뒤부터 이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 문수·사자·청량·길상·오대… 근원 같은 산
문수산, 사자산, 길상산 이름도 같은 오대산 갈래다. 경북 봉화의 청량산 북쪽에 문수산(1207m)이라고 있다. 조선 초에 봉화 고을의 진산이었다. 신라시대 때 평창의 수다사에서 수도하던 자장이 이 산에 문수보살이 나타나서 문수산이라 했단다. 또 다른 문수산은 김포에도 있고 울산에도 있다. 울산 문수산(600m)은 고려시대에 라마교의 전당이었다는 전설이 있어 중국 오대산에서 성행한 라마교와 상통하는 점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수주면에 있는 사자산(1167m)에는 어느 도승이 사자를 타고 이 산으로 왔기에 이름 지어졌다는 지명 유래가 전한다. 그 도승은 자장임에 분명하다. 사자산 적멸보궁 옆에는 자장이 수도했다는 토굴이 있고 당나라에서 사자 등에 진신사리를 싣고 온 석함(石函)도 있단다. 사자산의 모양새도 영락없이 사자를 빼닮았으니 오대산처럼 닮은꼴을 찾아서 고른 것일 게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의 길상산(336m)도 마찬가지다. 이 산에는 왕에게 진상했던 유명한 약쑥이 나는데 흥미롭게도 ‘사자발쑥(獅子足艾)’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문수의 사자와 연관 있는 이름으로 보인다.
이처럼 오대산 갈래의 산 이름만 하더라도 역사적으로 지역적으로 다채로운 문화사가 펼쳐진다. 서로 다른 산 이름이지만 같은 갈래의 한 꼬지로 묶을 수 있다. 문수보살의 오대산 패밀리다.
< 최원석 | 경상대 HK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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