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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悟後의 생애’ 한암만의 어구(현대불교) 201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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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6-23 08:42 조회8,3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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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悟後의 생애’ 한암만의 어구
한암(漢岩) 선사의 편지 〈12〉경봉(鏡峰)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6)
윤창화 <민족사 대표>  changhwa9@hanmail.net
경봉(鏡峰)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 경봉(鏡峰)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오랫동안 적조하던 차에 한 통의 서신을 받으니 병중(病中)의 회포에 위안이 되었습니다. 서신을 받아보고서 법체가 인연 따라 자적(自適)하다고 하니, 매우 안심이 됩니다. 나는 여전히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오후(悟後)의 생애(生涯, 깨달음 후의 보임)에 대하여 옛 선승들께서 하신 말씀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한 조각 바위처럼 하라.”고 하셨고, 어떤 분은 “죽은 사람의 눈같이 하라.”고 했으며, 어떤 분은 “고독(蠱毒, 뱀, 지네, 두꺼비 따위의 독충)이 있는 곳을 지날 때 한 방울의 물도 묻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또 우리나라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진심직설(眞心直說)》 십종식망(十種息忘) 편에서 첫째는 알아차림[覺察, 自覺], 둘째는 마음을 쉼[休歇], 그리고 열 번째 ‘체용에서 벗어남[透出體用]’에 이르기까지 중요하고 간절하지 않은 법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그 묘(妙)를 터득한 후에야 얻어지는 것이므로, 이 몇 가지 법문 가운데 하나를 택해서 오래도록 공부하면 자연히 묘처(妙處)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 수용(受用) 여부는 자기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그 밖의 천 마디 만 마디 말들은 모두 나 자신의 일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또 옛 선승이 이르기를, “문으로 부터 들어온 것은 집 안의 보배가 아니다[從門入者, 不是家珍].”라고 하신 바와 같이, 그저 남의 말만 듣고 수행한다면 말은 말대로 나는 나대로가 됩니다. 마치 물 위의 기름 같아서 단박에 모든 망념을 끊어 버리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약 진실로 번뇌망상으로부터 벗어난[灑落] 경지에 이르고자 한다면, 항상 한 생각(망념)이 일어나기 전에 나아가 참구하고 또 참구하여 홀연히 화두를 타파[失脚]하면, 가슴속의 오색실(胸中五色絲, 번뇌 망상)이 자연히 끊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이 참으로 깨닫고 진실로 증득하면 그곳이 바로 천하 사람들의 혀(언어 문자)를 끊는 곳[坐斷天下人舌頭處]입니다. 지극히 빌고 지극히 빕니다. 그러나 내가 앞에서 말한 것들은 눈 밝은 사람에게는 섣달 겨울의 부채[臘月扇子]에 불과합니다(쓸모없는 말이라는 뜻). 허허, 허물이 적지 않습니다.

내원암(內院庵, 통도사 내원암)에 선방을 여는 일은 매우 좋은 일입니다. 보내온 편지와 같이 계획을 파기하신다면 참으로 아깝습니다. 운봉(雲峰, 향곡스님의 은사)이 좋은 사람인데, 다시 이러한 사람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문하에는 이러한 사람이 없으니, 탄식할 뿐입니다. 나는 이동한다면 내년 3,4월 사이에나 어디로 이동하고, 금년 동안거는 이곳에서 겨울을 지낼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선원(禪院)이 될 수 있도록 주선하십시오. 이만 줄이고 답서(答書)의 예(禮)를 갖추지 않습니다.

경오(1930년) 9월 13일
한암은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해설] 이 편지는 경봉스님이 깨달음 이후의 삶[悟後生涯]에 대하여 질문한 것에 대한 답서(答書)이다. 오후생애(悟後生涯)는 오후수행(悟後修行, 깨달음 이후의 수행)과 같은 말로 보임을 뜻한다. 한암선사는 오후의 생애(깨달음 후의 보임)에 대하여 옛 선승들의 말씀을 인용하여 매우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깨달은 후 보임하는 방법은 마치 ‘한 조각 바위처럼,’ ‘죽은 사람의 눈처럼’ 일체 사물과 대상에 대하여 의식을 끊으라는 것이다. 또 뱀, 지네, 두꺼비 등 독충[蠱毒]이 있는 곳을 지나갈 때와 같이 독물이 한 방울도 묻게 않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조국사의 《진심직설》의 십종식망(十種息妄) 편을 참고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오후생애(悟後生涯)’ ‘흉중오색사(胸中五色絲, 俗塵, 번뇌망상)’라는 말은 여타 선승들은 거의 쓰지 않는 한암선사 특유의 어구이다. 매우 문학적이고 현장감 나는 용어이다. 이 편지는 매우 고구정녕(苦口叮嚀, 간곡)한 편지로 깨닫기 이전보다 깨달은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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