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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과 교림출판사(불교신문) 2014.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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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07-26 09:20 조회9,3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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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허스님과 교림출판사
[근현대불교출판 역사] 1970년대 (5)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도서출판 교림은 1979년 7월25일 등록한 이래 지금까지 고집스럽게 탄허스님 관련 서적을 출간하는 곳이다. 서우담(77)대표는 “유산이 될 만한 책이 아니면 만들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35년간 교림을 지키고 있다.
 
지금껏 26종 58권을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용성스님의 <귀원정종>과 각성스님의 <능엄경> 외에는 모두 탄허스님 저술이다. 그만큼 교림은 탄허스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교림 설립의 발단은 탄허스님의 명저로 <신화엄경합론>(1975) 탄생과 관계가 깊다. 이 책은 <화엄경> 80권과 청량국사의 화엄소초 150권, 통현론 40권 등 화엄경 관련 저술 287권을 집대성한 것으로, 원효스님 이후 1300년 만에 탄허스님이 집대성한 것이다. 이 공로로 탄허스님은 조계종 종정상과 동아일보사가 제정한 제3회 인촌문화상을 수상했다.
 
스님이 경전을 번역하고 토를 단 것은 승가교육을 위해서였다. 1939년 월정사에서 문을 연 ‘강원도 3본산 승려연합 수련소’에서 <화엄경>과 화엄론을 11개월간 강의한 탄허스님은 은사 한암스님으로부터 화엄경과 화엄론에 우리말로 토를 달라는 당부를 듣고 경전 현토와 역해 작업을 시작했다.
 
1956년 월정사에 수도원이 설립되고, 탄허스님은 강의교재용으로 <신화엄경합론>과 경전 번역을 착수했다. 10년만인 1967년 <신화엄경합론> 6만2500장의 원고를 탈고했다. 그 사이 <육조단경> <보조법어>를 간행했다. 이 과정에서 스님은 견비통을 얻어 10년 넘게 고생했다고 한다.
 
출가자였던 서우담 대표는 탄허스님이 저술을 완성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출판을 제안했다고 한다. 집필을 끝내고 쉬고 있던 스님은 출판제의를 받자 상기된 얼굴로 “내 상좌들도 못하는 일을 해준다고 해 고맙다”고 인사했다고 한다.
 
스님과 함께 부산으로 가 책을 제작했다는 이 일이 계기가 돼 서 대표는 탄허스님의 제자가 됐다. <신화엄경합론> 원고가 완성된 후 스님은 부산 삼덕사에서 약 8개월간 머물며 원고를 교정했다. 교정 작업에는 각성, 무비, 통광스님 등 대강백들이 함께 했다고 한다.
 
1975년 전 47권의 초판이 나왔다. 번역을 시작한 지 18년 만이다. 교림출판사 설립 전이라 탄허스님이 1972년 설립한 서울 낙원동의 화엄학연구소 이름으로 나왔다. 이 책을 출간한 뒤 출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스님은 서 대표와 함께 교림을 만들었다.
 
“유교에 유림처럼 불교는 교림이 어떠냐”는 서 대표의 의견을 들어 <주역>에서 의미를 찾았다. 불법을 전하기 위해 설립했지만, 제작비용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되도록 신도의 시은을 입지 말고 불사를 하라”는 스님 뜻이 커 “종이 인쇄 제본 등 각 회사에 스님의 인격을 담보로 출판 불사를 했다”고 한다.
 
교림은 현행 표준교과과정 도입 이전 승가대학의 사미, 사집, 사교, 대교반 교재를 제작, 보급했다. 1980년 <초발심자경문> <치문>을, 1981년 <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기신론>을 출판했으며, <주역선해>(1982) <도덕경>(1983)을 간행하고 1976년 화엄학연구소에서 나온 <서장> <도서> <절요> <선요>를 재간행했다.
 
이밖에 스님의 법어집 <부처님이 계신다면>(1979)을 냈고, 스님 입적 후에는 <피안으로 이끄는 사자후>(1998)를 간행하기도 했다.
 
[불교신문3029호/2014년7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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