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년 종단개혁 이후 처음으로 선거 없이 조계종 총무원장이 선출됐다. 새 역사의 첫 번째 이유는 무엇보다 선거 후유증에 대한 종단 적 공감대 일 것이다. 둘째로 출가자-신도-재정 감소의 시대적 위기감과 불교중흥의 대의가 배경이 됐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종단 적 염원과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진우스님의 개인적 역량이 더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과거 필자는 백양사 교구장을 지낸 진우스님이 전 총무원장 설정스님의 사서실장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몇 군데 스님의 평판을 수소문했었다. 진우스님에 대한 평가는 공통적으로 ‘스마트’와 ‘인내’로 압축됐다. 특히 인내는 아마 동진출가와 은사스님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진우스님은 강릉출신으로 동진 출가한 본사는 월정사이다. 그런데 출가본사 스님의 뜻에 따라 백양사 문중의 대강백 백운스님의 상좌가 됐다. 백운스님은 만암 대종사의 맏상좌인 석산 대종사의 상좌이지만, 만암 대종사와 용성 대종사의 약속에 따라 부산 범어서 동산스님의 상좌로 입실했다. 진우스님의 재적본사는 두말할 것 없이 백양사 이고 백양사 교구장까지 역임했지만, 진우스님이 범어문중이기도 한 이유이다. 몇 차례 인생의 갈림길에서 진우스님은 그때마다 전적으로 은사스님의 뜻에 따랐다고 한다. 은사 스님이 완도 신흥사로 내려가 주지를 살라 하니, 이전에 일군 모든 기반을 뒤로하고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중앙종단에 올라온 계기 또한 설정스님이 사서실장을 맡으라 하니, 교구장 까지 역임했지만 이를 따랐다. 오늘의 진우스님이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달 29일 한중문화우호협회가 주최한 ‘한중초서달인 60인전’ 개막식에 다녀왔다. 거기서 최재천 전 국회의원은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초서이기에 리듬을 가지고 있기에 음악성을 가지고 있기에 선과 중력을 넘고 국경을 넘어서 전시회가 성사됐다”고 말했다. 개막식에 앞서 만난 최재석 서예가는 “문자에 사로잡히면 그걸 읽어야 하고 단순히 내용을 의미하는데 국한 돼 있는데 선으로만 보면 그걸 넘어 선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전시회 부제를 '선 너머 선' 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문자가 국경을 넘고, 문자의 의미를 버리면 더욱 크게 확장 할 수 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개인적으로는 그 말을 듣고 선(線)이 선(禪)으로 다가왔다.
생각은 준비된 행동이다. 행동은 말과 글로 잉태된다. 그런 점에서 말과 글은 어쩌면 이미 그 자체가 행동일 것이다. 개인과 조직, 인류의 성과들은 모두 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말과 글의 힘으로 다짐하고 꿈꾸며 이뤄졌다. 새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취임사에서 밝힌 불교중흥 선언은 그런 점에서 이미 시작된 것이다. 내년 2월 국경의 선을 넘어 시작될 상월결사 인도순례가 선(線) 너머의 선(禪)으로 불교중흥의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