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강원도 오대산·치악산] 가는 세월 아쉬워 붉은 눈물 맺혔나 (부산일보) 2014.10.23 > 언론에 비친 월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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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강원도 오대산·치악산] 가는 세월 아쉬워 붉은 눈물 맺혔나 (부산일보) 2014.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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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4-10-23 08:31 조회9,1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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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르던 날이 물드는 날, 나는 붉은물이 든 잎사귀가 되어 뜨거운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지…' 시인 김현성은 단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단풍은 낙엽이 되기 전 마지막 생을 화려한 색을 불태우며 사라진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가는 길의 단풍잎이 행인들의 발걸음을 사로잡고 있다. 김병집 기자 bjk@
평창 오대산은 후덕하다. 날카롭지 않고 넓고 순순하다. 설악산의 뾰족함과는 거리가 멀다. 까치 울면 동구 밖에서 서성이는 우리네 어머니를 닮았다. 해서 모산(母山)이고 육산(肉山)이다. 그 넉넉한 산이 이맘때 거대하고 울긋불긋한 연꽃을 피운다. 부처님 사리 모신 적멸보궁과 다섯 묏부리가 빚은 꽃이다. 적멸보궁은 꽃술로 우뚝하고, 비로봉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은 꽃잎으로 떠받든다. 불성(佛性)의 형세를 두고 일찌기 일연 스님이 적었다. '나라 안 명산 가운데 가장 좋고 불법(佛法)이 길이 번창할 데다.'
 
후덕하고 무욕한 땅이 단풍 천지다. 봄꽃같은 색색 도발에 중생은 속수무책이다. 실실 웃음 흘리고 탄성만 쏟아낸다. 들뜬 걸음 다독이는 건 천년 고찰 월정사와 상원사의 말간 바람이다. 속기 씻어내는 법향이 분다. 나무관세음보살. 


■월정사 전나무 숲길 

오대산 산문은 전나무 숲이다. 고조 할아버지뻘 전나무가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연까지 도열했다. 길이는 대략 1㎞. 들머리부터 코끝이 알싸하다. 전나무가 피톤치드를 뿜어대서다. 갈라진 흑갈색 껍질 두르고 하늘로 줄기를 뻗어올린 전나무는 하나같이 늘씬하고 가을볕 쬔 흙길은 구슬구슬하다.

단풍이 유난히 곱다. 전나무 틈새로 쏟아진 가을볕에 주홍빛과 주황빛이 새빨갛게 익는다. 지형과 기후가 한몫 했다. 평창군의 평균 해발 고도는 대략 700m. 동식물이 지내기 가장 좋은 고도다. 이주진 문화해설사 말이다. 기온도 타지보다 낮다. 해서 오대산의 봄꽃은 늦고, 단풍은 일찍 온다.

어슬렁거리듯 무심히 숲길을 밟는다. 천천히, 그리고 찬찬히. 속도와 감동은 대개 따로 논다. 여느 여행지에서도 적용되지만 숲에선 확신에 가깝다. 숲은 늘 느려서야 겨우 말을 붙여 온다. 고인숙 시인도 그랬지 싶다. '다시 어깨 힘 빼고 스적스적 들어선 산책로/ 모란꽃 이파리 가만 가만 져 내리는 곳에/ 헛된 욕심들 하나씩 내려 놓고/ 나는 하나도 급할 일 없는 나그네/ 찬 이슬 내리기 전까지 천천히 걷고 또 걸을 것이다.' 

전나무 숲을 지나 파란 하늘이 활짝 열리는 자리에 월정사가 앉았다. 643년 무렵, 그러니까 신라 때 창건된 자장율사의 불국토다. 역사와 설화가 뒤엉킨다. 골자는 대충 이러하다. 어느 날 꿈에 등장한 산신령이 오대산을 문수보살 사는 땅이라 지목한다. 자장율사는 귀국 때 가져왔던 부처님 정골사리를 그 땅에 봉안하고 적멸보궁을 올린다. 이후 월정사는 수차례 중건을 거쳐 대찰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불법도 한국전쟁을 피해가진 못했다. 전각 십수 동이 소실되는 참화를 겪었다. 본당인 적광전 앞 팔각구층석탑은 석탑이어서 살아 남았다. 몸돌과 지붕돌에 그 시절의 자국이 선명하다.

팔각구층석탑 옆에 석조보살좌상이 탑 향해 왼쪽 무릎 세워 앉았다. 공양상이다.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옮겨졌다. 풍화 막는 방편이다. 탑 공양상은 강원도에서만 발견되는 특이한 양식이다. 넓적한 턱과 두툼한 뺨, 그리고 짧은 인중. 조형적인 균형미 떨어져도 정 가는 얼굴에 석탑보다 시선이 오래 머문다.

월정사 나서니 금강연이다. 오대산 여러 물줄기가 몸을 섞어 넓은 소를 이뤘다. 여울 건너는 가을빛이 하얗게 부서진다. 


■상원사 선재길 

상원사 가는 길이 선재길이다. 선재는 '화엄경'에 나오는 구도자 선재동자에서 따왔다. 참된 지혜 서원해 천하를 떠돌았듯 자장율사가 불심으로 꾹꾹 눌러 밟았던 옛길이다. 월정사에서 오대천을 거슬러 북으로 8㎞쯤 떨어졌다. 오대산 단풍의 아름다움이 오롯하다. 오대천 양쪽으로 펼쳐진 가을빛 질감은 부드럽고 묏부리에서 산자락 타고 내려온 단풍이 무척 어여쁘다. 보메기 계곡에서 잠시 단풍 완상에 빠졌다. 섶다리 조금 못 미친, 해바라기 하기 좋은 포인트였다. 적잖은 출사객이 절정 담는 손놀림으로 조용히 분주하다. 

상원사 입구 계단 왼쪽 단풍은 더 없이 빨갛다. 가을볕 등지고 숫제 붉게 타오른다. 상원사는 산사의 그윽한 운치로 가득하다. 주불전은 문수전. 자장율사를 오대산으로 불러들인 게 문수보살 아니던가. 문수전은 나무로 만든 문수동자 좌상을 모셨다. 양쪽으로 동자머리 묶고 온화한 미소를 짓는다. 1466년 조성한 목조 좌상은 세조와 인연이 깊다. 전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온몸 종기로 고생하던 세조가 불법에 의탁해 병 고치려 오대산을 찾는다. 상원사 앞 계곡에서 목욕하다 마침 지나던 동자승이 세조 등을 민다. 그러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문수보살이었다. 종기는 기적처럼 나았다. 세조가 친견한 동자승을 그대로 본뜬 게 바로 목조 좌상이다. 상원사는 뒷날 세조의 원찰에 봉해졌다.

문수전 맞은편 오른쪽에 상원사 동종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동종이다. 725년 신라 성덕왕때 주조됐다. 안동의 안동루문에 걸렸던 걸 700년 지나 조선 예종 때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진품은 유리관에 들었다. 작은 균열이 생긴 탓에 보호 중이다. 옆에 모작품을 만들어 놨는데, 실제 타종은 여기서 이뤄진다. 동종은 기운이 묵직하다. 쇠의 질량과 세월의 무게로 엄숙하기까지 하다. 몸통에 새긴 주악비천상이 생생하다. 선인들이 구름 타고 공후와 생을 연주한다. 천의 자락은 불꽃처럼 위로 치솟았다. 상승하는 걸까, 하강하는 걸까. 어릴적 친구들과의 내기가 새록하다.

서산으로 해가 진다. 단풍 이파리에 노을빛이 더해지고 '추위 환한' 고원지대의 가을 밤이 찾아든다. '누구나 한 번은 진다.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다.' 불현듯 떠오른 최인훈 선생의 단호한 문장이다. 석양처럼만, 단풍처럼만 지자. 


■치악산 금강소나무길 

단풍전선 따라 남하하다 원주 진산 치악산을 들렀다. 막 절정으로 치닫는 중이다. 절정 맞은 오대산 단풍이 원숙하다면, 절정 앞둔 치악산 단풍은 싱싱하다. 똑같이 붉어도 들고 나는 기세로 차이가 뚜렷하다. 

치악산 산문은 금강소나무길이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명품길로 꼽힌다. 입구에서 구룡사까지 900m 남짓 거리에 금강소나무가 군락을 이뤘다. 곧게 자랐다. 속이 누레 황장목으로 불리는 금강소나무는 궁궐용 자재로 나라의 관리를 받았다. 황장금표(黃腸禁標)란 표식을 둬 무단벌목을 금했다. 입구 근처에서 그 푯돌을 만날 수 있다. 

구룡사 왼쪽에 작은 폭포가 자리했다. 구룡사 터에 살던 아홉마리 용이 하늘로 올라갈 때 아기 용이 잠깐 몸을 둔 자리라 구룡소다. 구룡소에 반영된 단풍나무가 잔물결에 흔들린다. 서둘러 물들었던 단풍 이파리가 떨어진다. 물길 따라 아래로 흘러간다. 그렇게 그 녀석은 가을을 떠난다. 임태섭 기자 tslim@busan.com 

TIP 
 
대중교통 다소 불편… 산채정식·황태해장국 꼭 맛봐야
 
■찾아가는 법
 
 
자가용:중앙고속도로(만종JC)~영동고속도로(진부IC)~오대산국립공원. 5시간. 오대산국립공원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다 새말IC에서 빠지면 치악산국립공원에 도착한다. 1시간 10분.
 
대중교통:부산에서 오대산국립공원 가는 버스는 없다. 버스로 이동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다. 치악산국립공원은 원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이동하면 된다. 부산동부버스터미널(1688-9969)에서 원주시외버스터미널(033-734-4114)까지 4시간 걸림. 오전 7시 ~오후 8시 출발, 1시간 30분 안팎 간격, 2만 800원. 원주 시내버스 문의는 원주시청(033-737-2111)으로 하면 된다.
 
■먹을 곳 
 
오대산 국립공원 앞 오대산보배식당(033-332-6656)은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맛집이다. 산채 정식을 시키면 곰취, 취나물, 방풍나물 등 현지에서 생산된 산채가 푸짐하게 나온다. 진한 산나물 향이 간간한 손맛과 어울려 식욕을 당긴다. 황태해장국도 적극 권한다. 산채정식 1만 3천 원, 황태해장국 8천 원. 현금을 챙겨가야 한다. 임태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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