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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숲의 종교(법보신문) 2015.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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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5-01-27 09:25 조회8,2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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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불교, 숲의 종교
부처님 탄생에서 열반까지…불교 역사는 숲에서 이뤄졌다
전영우 교수 ychun@kookmin.ac.kr
   
▲ 석가모니가 성도했던 보드가야 마하보디 대탑 앞 보리수(출처: 미국 필라델피아 Ken Wieland).

룸비니 동산, ‘금강경’의 무대 기원정사(祇園精舍, 일명 제타와나·Jetavana), 최초의 정사인 죽림정사(竹林精舍, 일명 에누와나·Venuvana), 최초로 설법한 녹야원(鹿野園). 공통점은 무엇일까? 불자들이야 망설임 없이 불교성지라고 답하겠지만, 이들 성지의 공통점은 숲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들 성지의 지명을 동산(園), 림(林), 원(園)이 들어가게끔 의역한 이유는 이들 성지가 숲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는 숲의 종교’라는 명제를 얻었다. 대장경과 ‘본생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에는 석가모니의 생애와 함께 한 60여 개소의 숲을 언급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이처럼 많은 숲과 함께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경전에는 숲이 바로 수행장소였음을 밝히고 있다.

숲은 초기 수행자들의 성소
부처님 함께한 숲도 60여곳

전통사찰 75% 숲속에 건립
옛 스님들 노력으로 지켜져

한국인 정서적 기억에 각인
의식 않아도 공존하는 존재
외국의 산림학자들도 칭송


‘아함경’이나 ‘언행록’에는 석가모니가 제타와나(기원정사) 숲에서만 스물세 번이나 하안거(21번째부터 43번째까지)를 지냈으며, 대원림(마하와나·Mahavana), 베사칼라와나(Bhesa kalavana) 숲, 파릴레이야카(Parileyyaka) 숲에서는 각각 다섯 번째, 여덟 번째, 열 번째 하안거를 보냈다고 밝히고 있다. 카빌라왓투의 니아그로드와나(Nyagrodhvana) 숲은 열다섯 번째 하안거를 보낸 곳이자 득도 후 부친을 처음 만난 숲이었으며, 암바팔리와나(Ambapalivana) 숲은 생애 마지막 나날을 보낸 장소였다.

   
▲ 두 그루의 살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든 부처님의 모습을 담은‘쌍림열반도’ 부분도(출처: 동국사).

불교를 숲의 종교라 일컫는 또 다른 이유는 부처님이 탄생, 수도(修道), 정각(正覺), 성도(成道), 입적(入寂)을 나무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탄생의 순간을 함께한 나무는 아쇼카나무(ashoka tree: Saraca asoca (Roxb.) de Wilde)로, 마야부인이 이 나무의 가지를 붙잡고 석가모니를 출산하였기에 부처님의 탄생수란 별칭을 얻었으며, 흔히 무우수(無憂樹)라고도 불린다. 고행과 수행생활 후 득도를 함께 한 나무는 핏팔라나무(pipala: Ficus religiosa L.)로, 후에 보디(bodhi)라는 이름을 얻었고, 보리수나 각수(覺樹)로 의역되었다. 노년의 부처가 고향을 향하던 중 입적하였는데, 열반의 순간을 지켜본 나무는 두 그루의 살나무(sal: Shorea robusta Gaertn.f.)였다.

석가세존이 전 생애에 걸쳐 이처럼 나무와 숲과 함께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당시의 수행환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석가세존의 탄생지는 아열대지방인 인도의 비하르(Bihar) 지역으로, 숲은 집을 떠난 수도자들이 불볕더위와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였다. 초기경전에 수행자들을 ‘숲 거주자’로 불렀던 까닭도 숲이 최선의 수도처였기 때문이다.

부처의 제자들 역시 스승처럼 수행의 전 과정을 숲에서 보냈다. 숲 속의 수도생활로 득도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수행자들의 처소인 나무와 주변 숲은 성소(聖所)나 성지(聖地)가 되는 한편, 이들 장소는 오랫동안 보호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사찰의 초기유형은 원림(園林)이었던 셈이다.

불교의 수행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이라고 거칠게 정의할 때, 적멸처(寂滅處)에 안정하여 산란치 않고 마음을 통일하여 진리를 정관투득(靜觀透得)할 수 있는 장소로 숲만큼 적당한 공간은 없다. ‘밀린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에는 ‘숲이 완전하고 고요하고 안락한 마음 통일’을 이루어주는 수행공간임을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밝히고 있다. 이 경전의 ‘비유 이야기에 관한 질문’에는 수행자가 두타행(頭陀行)으로 번뇌를 떨치고자 원하면, ‘숲에 살고, 나무 아래에 앉는다’고 밝히고 있어서 숲과 나무는 불교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일까! ‘법화경’에는 지상에 재현시킨 극락(사찰)의 입지 조건을 수풀이 우거진 동산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화엄경’에는 시냇물이 흐르는 울창한 숲이 있는 곳으로 사찰을 묘사하고 있다. 불경의 영향일까? 무연(無然, 김종원) 스님은 우리 사찰의 입지 환경도 불경에 기술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스님의 박사학위논문 ‘사찰풍수를 통해 본 한국 전통사찰의 가람위치 연구’(전남대 2011)에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창건된 사찰 600여 개소의 해발고도를 분석해본 결과, 전통사찰의 75%가 해발 100~350m에 자리 잡았으며, 주변 환경은 산허리 하부(2부 능선)의 넓은 평지 사이로 하천이 흐른다고 보고했다. 높지 않은 고도에, 수분 공급이 원활한 개울이 있고, 토심이 깊은 평지에 사찰을 창건했기에 나무들이 자라는데 최적의 생육 환경이었던 셈이다. 옛 고승들은 사찰을 창건할 당시부터 가람뿐만 아니라 숲도 염두에 두었다고 주장하면 지나친 견강부회일까.

2010년 8월 하순, 세계 17개국에서 온 60여명의 산림과학자들이 월정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서울에서 개최된 23차 ‘세계산림과학 서울총회’에 앞서 국내의 산림학자들은 ‘한국의 산림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식전행사로 기획하였고, 산림문화분과에 속한 각국의 학자들에게 참가신청 안내문을 배포했다. 요사채에서 침대도 없이 합숙하는 일정을 안내문에 명시하였기에 해외의 학자들이 얼마나 호응할까 걱정이 앞섰다. 신청을 마감하니 그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60여명의 외국인 학자들이 참가를 원했고, 총회의 식전행사 중 가장 인상적인 프로그램이었다는 평가까지 받았다.

서울총회가 끝난 후,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외국인 학자들은 귀국 후 다양한 참가 소감을 보내 주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핀란드 산림과학원의 시에바넨(Tuija Sievanen) 박사의 소감이었다. 그는 숲을 나무와 야생동물이 자라는 장소로만 여겨온 서구적 시각과 달리, 월정사 전나무숲 속을 지나는 바람소리에서조차 영성을 읽어내는 한국의 산림학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숲 속에 파묻힌 전통사찰에서 보낸 하룻밤의 경험과 새벽예불을 잊을 수 없다고 술회했다.

그의 술회 중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내용은 한국 학자들이 숲을 단순히 물질로만 보지 않고, 정신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는 독창성과 그러한 인식의 근원에는 사찰의 숲을 생활 일부로 받아들인 전통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언급이었다. 숲에서 정신적 가치까지 읽어내는 한국 학자들의 독창성을 숲의 종교, 불교의 전통 덕분일 것이란 외국 산림학자의 언급은 새로웠다.

우리 대부분은 숨 쉴 때마다 공기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듯이, 많은 한국인은 사찰 숲과 함께 살면서도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음을 깨우쳐 준 그의 지적은 신선했다.

사실이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주변 자연경관에서 정서적, 심리적 영향을 받으며 산다. 그래서 병원에서 태어나고 아파트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이야 어쩔 수 없을지 몰라도 중장년층들은 고향의 옛 풍경을 기억하며 그리워한다. 사찰의 숲은 지난 천수백년 동안 가람을 들락거린 선조들에 의해 정서적 기억(mindscape)으로 체화되었고, 결국 한국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찰의 숲을 전통문화경관의 보고(寶庫)라고 일컫는 이유도 체화된 정서적 기억이 한국성(韓國性)을 상징하는 한 요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 ‘조계산송광사사고 산림부’. 1920년대에 세 명(錦溟寶鼎 龍隱完燮, 綺山錫珍)의 스님이 송광사의 사료를 수집 정리하여 묶은 책.

한국인의 정서에 이처럼 굳게 각인된 사찰 숲을 옛 스님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했을까? 스님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은 ‘조계산 송광사사고(曺溪山松廣寺史庫)’에서 찾을 수 있다. 1920년대 편찬된 이 사고의 산림부(山林部)에는 “불사(佛社)를 세우는 곳에는 반드시 나무를 심어 그 아름다운 경치를 보존하는 것이 불교에서 권하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어떤 나라나 어떤 곳에도 절의 임야에는 나무가 울창한 모습이 있고, 그중에서도 송광사의 임야는 우리 절에서 73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계속해서 수호해 온 곳”이라고 밝히고 있다.

송광사사고 산림부와 유사한 내용은 ‘무성한 숲은 위엄을 더해주는 것이며, 나무를 빽빽이 심는 일은 덕을 더해주는 일(增威以茂林 加德以密樹)’이라는 고승의 발원도 찾을 수 있다. 숲을 가꾸고 지키고자 각고의 노력을 쏟았던 옛 스님들의 염원 덕분에 사찰 숲은 한국성의 상징이 되었다. 오늘의 우리는 과연 그 숲의 가치를 바르게 인식하고 불교적 가치 증진을 위해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전영우 국민대 산림환경시스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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