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길을 걸으며(법보신문) 2015.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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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5-02-03 15:55 조회8,692회 댓글0건본문
'선재길'을 걸으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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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선생님
이 따스한 햇살 속을
함께 걸었으면
이 길을 계속 걸어
적멸보궁까지 함께 가서
‘청안’을 위한
절을 올렸으면 하는
생각이…”
인연이 닿아 월정사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동안 묵게 되었다.
아침 저녁으로 전나무 숲길을 따라 공양간에나 오가며 무위의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은 상원사로 이어지는 선재길을 걸었다. 마침 날씨도 포근했고 계곡을 따라 이어진 길은 한적했다. 눈 위엔 삵이며 멧돼지 같은 짐승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고 계곡은 꽝꽝 얼어붙어 있었지만, 양지 녘 바위 사이 얼음장 밑으로는 물소리가 쏟아지고 있었다.
처음 월정사에서 겨울을 보내게 되었는데, 눈이 많고 영하 20도의 혹한이 엄습한다는 소문과는 달리 안온한 느낌이다. 몇 해 전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지낸 겨울, 내설악의 눈보라와 바람은 무척 매웠건만.
설악의 겨울이 거칠고 강한 남성이라면, 오대산의 겨울은 맑고 부드러운 여성 같다.
계곡을 따라, 때로는 다리를 건너 숲 속으로 이어지다 다시 계곡으로 빠져나오는 길은 완만했고 걷기가 좋았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아끼는 듯 평일이었지만 상원사 쪽으로 가까워지면서부터는 인적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강원도 산골짜기의 겨울 같지 않게 따스한 오후 햇살 속을 걸으며 나는 L선생님을 떠올렸다.
소설가 L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뒤늦게 진학한 대학원에서였다. 늘 목소리가 낮은, 단아한 성품의 선생님은 권위를 내세우거나 작가연 하는 게 전혀 없었지만 명절날 제자가 사과 한 박스를 보내드려도 마음만 받겠다는 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은 1950년대 전후(戰後)의 비극적인 삶을 그린 <장난감 도시> 같은 많은 작품을 쓰셨는데, 소설 속 극한의 가난과 황폐한 삶이 자전적인 내용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무척 놀랐다. 당신께서는 그런 내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에.
선재길에서 L선생님을 떠올리게 된 것은, 지금 살고 계신 문막 집이 너무 추워서 좀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몇 년 전에 큰 수술을 하셨으니 추위가 더 맺힐 텐데, 이 따스한 햇살 속을 함께 걸었으면, 이 길을 계속 걸어 적멸보궁까지 함께 가서 청안(淸安)을 위한 절을 올렸으면 하는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드린다면 ‘자네나 다녀오게’ 하시겠지. 그 특유의 조용한 웃음으로.
마음속에 선생님이 있다는 것은 복된 일이다.
내게도 선생님이 몇 분 계셔서 어려울 때마다 손을 잡아 주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머리가 희끗해지면서부터는 서럽게도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시거나 은퇴하셔서 직접 뵙기가 어렵다. 간혹 곤란한 일을 마주치게 되면 만약 선생님이 나라면 어떻게 하실까, 스스로 묻고 답하게 되었는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모습은 커지기만 한다.
어디 선생님뿐이겠는가. 좋은 풍경을 보았을 때,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나 고립에 빠졌을 때, 그 누구든 마음속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원사 주차장에 이르자 북대 쪽이며 비로봉 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신발을 털며, 더러는 정답게 차를 마시며 모여 있었다. 이 사람들도 모두 제각기 가슴 속에 어떤 이를, 잊히지 않는 기억이며 꿈같은 것들을 품고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왔을 것이다.
저녁이 되면 종소리에 가만히 손 모으고 잠시 고개 숙일 것이다.
[불교신문3077호/2015년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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