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성의 선농불교 새로이 평가돼야(불교저널) 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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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5-05-02 10:05 조회8,792회 댓글0건본문
백용성의 선농불교 새로이 평가돼야 | ||||
마성 스님 ‘용성과 한암, 그 지성의 원류를 찾아서’ 학술세미나서 주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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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용성은 선농불교를 통해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소비하는 불교’에서 ‘생산하는 불교’로, ‘의타적(依他的)인 삶’에서 ‘ 자리적(自利的)인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내다 봤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분인 백용성 스님의 선농불교(禪農佛敎)를 현대적 관점에서 새로이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주목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마성 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 겸임교수)이 4월 24일 월정사와 대각사상연구원 주최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용성과 한암, 그 지성의 원류를 찾아서’란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제기했다. 마성 스님은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한 재조명 - 교단사적 측면을 중심으로’란 주제의 발표를 통해 한국불교에서 용성 스님의 선농불교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조명했다. 마성 스님은 먼저 용성 스님의 선농불교가 불교의 계율과 관계가 있으므로 교단사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도에서 출가자는 사의법(四依法)에 의해 생활한다. 사의법이란 걸식, 분소의, 수하좌, 진기약을 일컫는다. 율장에서는 또 출가자의 육체노동과 경제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인도에서 출가자들은 이처럼 사의법에 의해 금욕생활을 하면서 진리를 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불교의 전통은 중국에서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동진시대부터 승려 개인의 농경, 상업 및 무속행위 등의 경제활동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당대에 이르러서는 균전제를 시행해 승려들이 땅을 나누어 받았으며, 조세·면역의 혜택을 받았다. 흔히 선농불교의 전통은 중국의 백장청규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백장회해 이전 동진시대부터 노동과 수행이 둘이 아니라는 선농겸수(禪農兼修)의 전통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불교에서 출가자의 경제행위가 적극적으로 나타난 것은 조선시대다. 마성 스님은 조선 후기 사찰경제의 자립을 위해 이루어진 경제활동은 크게 세 가지라면서 첫째 승려들의 상품생산과 상업활동, 둘째 각종 계의 조직과 운영, 셋째 승려의 사유전답(私有田沓) 조성과 사찰에의 기증이라는 것이다. 마성 스님은 “이와 같이 불교교단이 자립경제의 기반을 갖춤으로써 국가경제의 종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사찰경제의 자립 없이는 불교의 존립 자체를 담보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사찰경제의 자립을 위한 모든 노동과 경제활동이 곧 선농불교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서의 사찰경제는 극도로 피폐했다. 납자들도 안일과 나태에 빠져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그 때 조선불교를 되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납자들이 자급자족하면서 수행하는 길밖에 없었다. 당시 가장 급선무는 사찰의 자립경제였다. 이러한 때 근대한국불교에서 선농불교를 몸소 실천했던 대표적인 인물로 백용성과 백학명을 꼽은 마성 스님은 “백학명의 선농불교는 선원(禪院)이라는 특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납자들이 선수행을 하면서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자는 것이었다.”면서 “하지만 백용성의 선농불교는 불교교단(대각교)의 경제적 자립을 통해 당시 핍박받고 있던 민중들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마성 스님은 “백용성은 선농을 농사에 국한시키지 않았다.”면서 “그는 직접 광산을 경영하기도 했다. 그는 승려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경제 행위이든 선농으로 보았던 것이다.”고 회고했다. 마성 스님은 또 “그가 생각했던 선농은 근본적으로 무위도식하지 않고 자력으로 생활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는 것이었다.”고 전제하고 “왜냐하면 의타적인 삶에서 자립적인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야말로 선농불교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백용성은 선농불교를 통해 ‘받는 불교’에서 ‘주는 불교’로, ‘ 소비하는 불교’에서 ‘생산하는 불교’로, ‘의타적인 삶’에서 ‘자리적인 삶’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고 평가한 마성 스님은 “그는 재화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면 모두 선농불교의 개념 속에 포함시켰다. 이것이 바로 생산불교인 것이다.”고 정의했다. 마성 스님은 “그는 이미 80년 전에 불공과 시식에 의존해 살아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면서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가 얼마나 시대를 앞서 간 선각자였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백용성의 선농불교에 대한 평가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학술세미나 1부에서는 김광식 동국대 특임교수가 ‘용성과 한암의 행적에 나타난 불교관’을, 자현 스님(능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이 ‘계잠의 분석을 통한 한암의 선계일치적 관점’을, 윤창화 민족사 대표가 ‘간화의 두 가지 방법과 한암선’을, 이자랑 동국대 연구교수가 ‘백용성 율맥의 성격 및 전개’를 각각 발표했다. 2부에서는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연구교수가 ‘용성선사 어록의 구성 및 선사상사적 의의’를, 백도수 능인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가 ‘한암의 계율인식 고찰’을,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이 ‘한암 중원의 보조·경허 계승과 그 의미’를, 김종인 경희대 교수가 ‘백용성의 근대와의 만남과 불교개혁 운동’을 각각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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