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투사'와 '깡패 스님'의 유쾌한 동행-오마이뉴스(6/1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5-06-18 09:32 조회7,887회 댓글0건본문
[여는 마당] '백발 투사'와 '깡패 스님'
비는 내렸지만 옷은 젖지 않았다. 오대산 계곡 산바람이 빗물을 말렸다. 날은 흐렸지만 유쾌-통쾌-상쾌했다. 해학과 풍자, 비장함과 신명의 댓거리가 산길의 오르막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마주칠 땐 백발의 성난 눈이었지만, 산에서는 오래된 농담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명진 스님은 깡패 스님이야! 대한민국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라니까! 스님이랑 걸으니까 나도 도가 트는 것 같아. 하-하-하-. 진짜 스님은 모든 집착을 깨는 거야. 그러니까 깡패지."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부처님은 시공을 초월한 깡패였어요. 어느 날 제자가 불경이 뭐냐고 물었답니다. '아란아, 너는 강을 건넌 뒤에 뗏목을 어떻게 하냐? 당연히 버리고 가지? 내 말도 버려라'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석가모니는 혁명적인 분이었어요. 또 당시 인도의 철저한 계급사회를 깨려고 했습니다." - 명진 스님
오대산 산장 앞에서 '장산곶매 등산패'와 함께 이 말을 듣던 백 소장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한 등산패가 "대단한 구라"라고 말하니 명진 스님의 댓거리가 이어졌다.
"염무웅 선생이 조선 '4대 구라'를 꼽았습니다. 황구라, 백구라……. 그런데 3명의 구라가 모여야 명구라와 맞설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백 선생님은 선동하고, 유홍준은 문화재를 잘 설명하고, 명진은 약 올리는 말을 잘한다나요. 하-하-하-." - 명진 스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스님의 탁월한 인품을 좀 더 널리 베풀려면 이제 중 옷을 버리시오! (자기 옷을 가리키며) 이런 옷으로 빨리 돌아오시오. 남쪽의 최고 스님이 아니라 불교 역사상 최고 스님이야!" - 백 소장
지난달 30일 떠난 등산패 장산곶매 20돌 기념 산행은 한 편의 마당극이었다. 1박2일 동안 물소리와 바람소리, 판소리와 시낭송이 어우러졌고, 산중 강연과 재담, 추임새가 이어졌다. 주인공이자 관객들도 낯이 익었다.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전 MBC 사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신학철 화가, 유초하 충북대 명예교수, 임진택 국악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정책실장, 이번 산행의 길잡이인 명진 스님. 그리고 노동자들.
백기완 소장과 명진 스님은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다. 봄과 여름이 엇갈리는 5월의 마지막 주말에 '아름다운 만남'을 따라 나섰다.
[첫째 마당] 숲길에서 만난 절창
오대산 월정사 밑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나서자 부슬비가 내렸다. 그런데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이어지는 8km의 숲길, 선재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늘을 가린 빽빽한 나뭇잎이 빗물을 받았다. 대신 비로봉에서 시작된 계곡 너럭바위 위로 쉼 없이 물이 흘렀다. 좁은 산길을 걷다가 넓은 공터에서 잠시 앉았더니 숲속 마당극이 열렸다. 창작 판소리 <똥바다>의 소리꾼 임진택 선생이 부채 대신 우산을 들고 목을 풀었다.
"얼씨구~" 추임새가 곁들여졌다. 시낭송으로 이어졌다. 백기완 소장의 시 '전지 요양 가는 길목에서'를 채원희씨가 낭송했다. 숲길에서 자연과 소리와 시가 만났다. 오래된 지기인 김중배 선생과 명진 스님이 선재길을 유쾌하게 걸었다. 여든이 넘은 김 선생의 걸음걸이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틈에 끼어 질문을 던졌더니 탄식이 되돌아왔다.
- 요즘 언론 상황, 답답하시죠?
"언론인은 연구 대상이야. 기자이기 이전에 못된 짓을 하면서도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간들의 인간성을 이해할 수가 없어."
오대산 산행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진고개를 넘어 강릉시 연곡면 소금강 마을에서 짐을 풀었다. 송경동 시인과 동양시멘트 해고 노동자들이 등산패와 합류했다. 모두 합하면 얼추 60명이 됐다. 저녁에 등산패 2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유쾌한 등산이었지만, 기념식은 비장했다.
명진 스님은 "87년 6·29 선언 직전에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연설하던 백 선생님은 기운이 펄펄 넘쳤는데 오늘 힘겹게 걸으시는 모습에 가슴이 저릿했다"면서 "30년 동안 우리가 바라는 세상, 나눔의 세상이 오지 않았고 짐승 같은 놈이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고 말했다.
김중배 대표는 "세월이 갈수록 장산곶매의 역할이 절실해지고 있고 더 많은 장산곶매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 이 개판을 싹쓸이 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오늘 우리 모두가 장산곶매가 되는 첫날이 되자"고 말했다.
[둘째마당] 장산곶매의 '멱치기'
백기완 소장은 소금강마을 식당에서 30여 분 동안 장산곶매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편의 민중서사시이자 비나리였다. 다음은 요약이다.
"장산곶매의 애소리(병아리)일 적 이름은 '뻘떡이'야. 황해도 구월산 깊은 골에서 태어났어. 그때 날짐승들은 돌림탈(전염병)이 돌아 다 죽게 됐어. 날짐승들이 구월산 매를 찾아와서 '천 리를 뚫어보는 그대만이 저 흰두루(백두산) 자락에 있는 만병통치약 별만이를 찾아낼 수 있으니 그것을 캐 달라'고 부탁했지.
구월산 매가 나서서 별만이를 찾으려고 막 날아오르는데 이를 알아차린 오랑캐들이 쏜 화살 하나가 몸에 '뻑~'. 엄마가 죽었어. 뻘떡이 애비가 찾아 나섰다가 또 화살을 맞고 죽자 어린 뻘떡이는 높은 나무 둥지에 홀로 남았어.
뻘떡이는 배가 고파서 울다가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까무러쳤어. 정신을 차렸는데 어디선가 밥 냄새가 나서 찾아가니 잘 아는 올빼미 아줌마였어. '아줌마, 나 밥 한 술만 달라'고 했더니 '네 놈이 사나운 매의 아들이겠다, 네 요놈' 하고 날카로운 주둥이를 빼버렸어.
또 밥 짓는 냄새가 나서 찾아가니 잘 아는 까마귀 아저씨였어. '밥 한 술만 달라'고 했더니 사나운 발톱을 뺐고, 바로 옆집 까치 아줌마에게 갔더니 '아직도 살아있었네'라고 말하면서 어린 뻘떡이의 날개를 꺾고 솜털까지 빼며 하는 말 '이제부터 네놈은 매로도 못 살고 날짐승으로도 못 살거라'고 했지.
뻘떡이는 절망했다
뻘떡이는 산목숨이 아니었어. 자기 몸을 구더기가 파먹고 있는 걸 보고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웅덩이에 뛰어들었지. 그런데 피라미들이 구더기도 뜯어먹고 끝내는 뻘떡이의 살점을 갉아 먹는 거라. 뻘떡이는 절망하면서도 밖으로 기어 나왔어. 그런데 이번엔 생쥐새끼들이 '이게 웬 떡이냐'고 달려들었어. 뻘떡이는 땅 속을 파고들었지.
부리도 없고 발톱도 없으니 대가리로 파고 몸통으로 파 들어가 마침내 생쥐새끼들을 한참 비껴냈다고 생각할 적에 무언가가 위에서 쿵쿵거리더란 말이야.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어. '저기다 저기, 별만이를 먹었다는 뻘떡이가 땅 속에서 기어가고 있다. 저기를 파서 저놈을 잡아라. 별만이를 먹은 저놈을 고아먹으면 내가 천년만년 죽지 않고 영생할 수가 있을지니 저기를 어서 파헤쳐라.'
곡괭이로 쿵쿵, 또 쿵! 뻘떡이는 땅속 깊이, 더 빨리 달아났는데 아, 이럴 수가! 무언가가 '떵~' 하고 부딪쳐서 살펴보니 엄청난 바윗덩이가 뻘떡이 눈앞을 가로 막고 있질 않는가. 뻘덕이는 발톱이 없는 발이나마 으스러지게 움켜쥐며 다짐했지. '어차피 죽을 바엔 이내 대갈빼기(머리)로 우지끈 받아나 보고 죽자 하고. 우지끈 떵~ 하고 받다가 그만 넋을 잃었어.
그런데 무언가 차가운 물살이 철썩~. 깜짝 놀라 눈을 들어 보아하니 아, 이럴 수가. 바윗돌은 깨져 앞은 열렸는데 바로 발밑은 한 발도 못 나아갈 깎아지른 벼랑이요, 그 앞은 끝없는 바다였어. 생채기에 닿기만 하면 따끔거리는 짠물의 바다였지.
거기서 뻘떡이는 오도 가도 못하고 엎드려 있는데 날아가던 이름 모를 물새가 몹시 한심했던지 한마디 던지고 갔어.
'야, 인마 멍청이야! 거기는 살 데가 못되는 데야 인마. 바람과 거센 파도, 그리고 떠가는 구름만이 살어, 이 바보 멍청이야.'
생명의 깨달음
뻘떡이는 죽어라 하고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뱃가죽에서 무언가가 써물써물~. 쪼매난 나무 씨앗이 뻘떡이의 몸끼(체온)에 힘을 입어 수십억 년 눈을 못 틔우고 있다가 뽀시시 싹을 틔우고 있는 게 아닌가.
뻘떡이가 품어주면 싹이 트고, 또 다시 품어주면 싹이 트더니 마침내 그 민둥이 바윗덩어리가 엄청난 소나무 밭이 되는 게 아닌가. 뻘떡이는 거기서 처음으로 깨우침을 얻었어. 죽어가는 몸뚱이나마 한사코 웅크리고 있으면 한 목숨이 태어나는 거구나!
뻘떡이는 슬며시 힘이 난거야. 나래를 슬쩍 펴보니 나래가 펴진다! 어라? 하고 나래를 펴서 펄쩍 뛰어 소나무에 오르니 어느새 발톱도 나와 있어서 앉을 수가 있었어. 주둥이가 간질대서 나뭇가지에 부딪쳐보니 '딱, 딱' 부리질이 될 만치 입이 돋아나 있는 거야.
거기서 뻘떡이는 스스로를 깨우쳤어. '그렇구나, 산다는 것은 나만 사는 게 아니구나. 차가운 바윗덩어리를 쓸어안아 거기서 수억 년 싹을 못 틔우던 목숨을 틔우는 거로구나. 이 나래로 나만 나는 것이 아니라 이 너른 흘쩍(공간)을 나는 거요, 이내 눈으로는 내 앞만 보자는 것이 아니라 저 끝없는 하늘과 바다를 깨우쳐 새로운 하늘과 바다로 새롭게 빚으며 함께 어울려 끝없이 사는 것이로구나.
산다는 건
다시 살아난 이내 부리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까짓 내 배때기만 불리자는 것이어선 안 된다. 이 부리로 벗나래(세상)의 모든 목숨(생명) 아닌 것들과 맞싸워 참목숨인 '살티'를 일구는 것이요, 바로 그것을 일깨우는 부리질을 하라는 것이지, 날카롭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마구 쪼아대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거지.
죽음의 깎아지른 벼랑, 장산곶에서 새로 태어난 뻘떡이 장산곶매는 사나운 발톱과 부리로 쩨쩨하게 시리 무언가 제 먹거리나 얻는데 쓰지를 않았어. 사냥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멱치기', 다시 말하면 목숨 아닌 것과 맞싸워 참목숨을 일구는 싸움만 했어.
'멱치기'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냐. 한해에 딱 두 번, 봄과 가을에만 하는데 그 '멱치기'를 떠나기 앞선 날 밤엔 '딱, 딱' 하고 까는 부리질을 하는 것으로 뜻을 다졌어. 제 둥지, 다시 말하면 제 집을 부수는 소리였어. 왜, 제 집을 부수는 것이었을까? '멱치기'는 온몸으로 참목숨을 얻어내는 싸움이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싸움이 아니다, 이 말이야.
어째서 제 집을 부수는 것일까? 제 집을 그냥 놔두면 그 집에 마주한(대한) 집착 때문에 온몸으로 싸우는 '멱치기'가 안 되는 것이라, '딱, 딱' 하고 제 집을 부수는 것이요,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도 '딱, 딱' 하고 까대는데 그것은 또 무엇을 해대는 것이었을까?
장산곶매 저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어. 캄캄한 어두움(암흑)을 까 팽개쳐 별을 틔우는 것이었지. '딱' 하고 부리로 까면 밝은 빛의 별이 하나 생기고, 또 '딱' 하고 까면 더 밝은 빛의 별이 생겨. 캄캄한 하늘에서 길을 잃었던 누리(우주)가 길을 찾아 가는 것이야. 장산곶 사람들도 이 부리질 소리가 나는 밤이면 잠을 안 잤어. 자기의 쩨쩨한 소갈머리를 깨부수느라.
어떤 사람들은 방바닥을 '딱, 딱' 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도끼를 들어 썩은 나무를 '쩍, 쩍' 패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물푸레나무 도리깨를 들어 제 가슴의 거짓, 나아가 벗나래(세상)의 모든 거짓과 껍질을 까는 것이었지.
도리깨질 소리는 아직도 들려오고 있어. 왜 그럴까? 오늘도 한낮인데도 캄캄하기만 한 저 하늘을 보란 말이야. '딱, 딱' 부리질 소리와 함께 한 별빛이 반짝, 또 하나 반짝. 그렇다, 장산곶매는 이참도 끝없이 '딱, 딱' 부리질을 하며 오늘도 한없이 가고 있어."
장산곶매 이야기가 끝난 뒤 송경동 시인과 기륭전자, 쌍용차, 동양시멘트,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노동자들은 백 소장의 '묏비나리'로 만든 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다.
- ▲ 오대산에서 백기완 소장이 명진 스님의 말에 파안대소하는 모습. ⓒ 김병기
비는 내렸지만 옷은 젖지 않았다. 오대산 계곡 산바람이 빗물을 말렸다. 날은 흐렸지만 유쾌-통쾌-상쾌했다. 해학과 풍자, 비장함과 신명의 댓거리가 산길의 오르막 내리막으로 이어졌다. 물대포와 캡사이신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마주칠 땐 백발의 성난 눈이었지만, 산에서는 오래된 농담이 입 밖으로 절로 나왔다.
"명진 스님은 깡패 스님이야! 대한민국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라니까! 스님이랑 걸으니까 나도 도가 트는 것 같아. 하-하-하-. 진짜 스님은 모든 집착을 깨는 거야. 그러니까 깡패지."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부처님은 시공을 초월한 깡패였어요. 어느 날 제자가 불경이 뭐냐고 물었답니다. '아란아, 너는 강을 건넌 뒤에 뗏목을 어떻게 하냐? 당연히 버리고 가지? 내 말도 버려라'라고 말씀하셨답니다. 석가모니는 혁명적인 분이었어요. 또 당시 인도의 철저한 계급사회를 깨려고 했습니다." - 명진 스님
오대산 산장 앞에서 '장산곶매 등산패'와 함께 이 말을 듣던 백 소장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옆에서 한 등산패가 "대단한 구라"라고 말하니 명진 스님의 댓거리가 이어졌다.
"염무웅 선생이 조선 '4대 구라'를 꼽았습니다. 황구라, 백구라……. 그런데 3명의 구라가 모여야 명구라와 맞설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백 선생님은 선동하고, 유홍준은 문화재를 잘 설명하고, 명진은 약 올리는 말을 잘한다나요. 하-하-하-." - 명진 스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스님의 탁월한 인품을 좀 더 널리 베풀려면 이제 중 옷을 버리시오! (자기 옷을 가리키며) 이런 옷으로 빨리 돌아오시오. 남쪽의 최고 스님이 아니라 불교 역사상 최고 스님이야!" - 백 소장
지난달 30일 떠난 등산패 장산곶매 20돌 기념 산행은 한 편의 마당극이었다. 1박2일 동안 물소리와 바람소리, 판소리와 시낭송이 어우러졌고, 산중 강연과 재담, 추임새가 이어졌다. 주인공이자 관객들도 낯이 익었다. 김중배 언론광장 대표(전 MBC 사장),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 신학철 화가, 유초하 충북대 명예교수, 임진택 국악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 정책실장, 이번 산행의 길잡이인 명진 스님. 그리고 노동자들.
백기완 소장과 명진 스님은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다. 봄과 여름이 엇갈리는 5월의 마지막 주말에 '아름다운 만남'을 따라 나섰다.
- ▲ 월정사 초입에서 장산곶매 등산패 기념 촬영 ⓒ 김병기
[첫째 마당] 숲길에서 만난 절창
오대산 월정사 밑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고 나서자 부슬비가 내렸다. 그런데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이어지는 8km의 숲길, 선재길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늘을 가린 빽빽한 나뭇잎이 빗물을 받았다. 대신 비로봉에서 시작된 계곡 너럭바위 위로 쉼 없이 물이 흘렀다. 좁은 산길을 걷다가 넓은 공터에서 잠시 앉았더니 숲속 마당극이 열렸다. 창작 판소리 <똥바다>의 소리꾼 임진택 선생이 부채 대신 우산을 들고 목을 풀었다.
"얼씨구~" 추임새가 곁들여졌다. 시낭송으로 이어졌다. 백기완 소장의 시 '전지 요양 가는 길목에서'를 채원희씨가 낭송했다. 숲길에서 자연과 소리와 시가 만났다. 오래된 지기인 김중배 선생과 명진 스님이 선재길을 유쾌하게 걸었다. 여든이 넘은 김 선생의 걸음걸이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틈에 끼어 질문을 던졌더니 탄식이 되돌아왔다.
- 요즘 언론 상황, 답답하시죠?
"언론인은 연구 대상이야. 기자이기 이전에 못된 짓을 하면서도 그걸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간들의 인간성을 이해할 수가 없어."
오대산 산행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진고개를 넘어 강릉시 연곡면 소금강 마을에서 짐을 풀었다. 송경동 시인과 동양시멘트 해고 노동자들이 등산패와 합류했다. 모두 합하면 얼추 60명이 됐다. 저녁에 등산패 2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유쾌한 등산이었지만, 기념식은 비장했다.
명진 스님은 "87년 6·29 선언 직전에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서 연설하던 백 선생님은 기운이 펄펄 넘쳤는데 오늘 힘겹게 걸으시는 모습에 가슴이 저릿했다"면서 "30년 동안 우리가 바라는 세상, 나눔의 세상이 오지 않았고 짐승 같은 놈이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고 말했다.
김중배 대표는 "세월이 갈수록 장산곶매의 역할이 절실해지고 있고 더 많은 장산곶매가 나오지 않는다면 오늘 이 개판을 싹쓸이 할 수 없을 것 같다"면서 "오늘 우리 모두가 장산곶매가 되는 첫날이 되자"고 말했다.
- ▲ 김중배 대표와 명진 스님이 오대산 길을 유쾌하게 걷고 있다. ⓒ 김병기
[둘째마당] 장산곶매의 '멱치기'
백기완 소장은 소금강마을 식당에서 30여 분 동안 장산곶매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편의 민중서사시이자 비나리였다. 다음은 요약이다.
"장산곶매의 애소리(병아리)일 적 이름은 '뻘떡이'야. 황해도 구월산 깊은 골에서 태어났어. 그때 날짐승들은 돌림탈(전염병)이 돌아 다 죽게 됐어. 날짐승들이 구월산 매를 찾아와서 '천 리를 뚫어보는 그대만이 저 흰두루(백두산) 자락에 있는 만병통치약 별만이를 찾아낼 수 있으니 그것을 캐 달라'고 부탁했지.
구월산 매가 나서서 별만이를 찾으려고 막 날아오르는데 이를 알아차린 오랑캐들이 쏜 화살 하나가 몸에 '뻑~'. 엄마가 죽었어. 뻘떡이 애비가 찾아 나섰다가 또 화살을 맞고 죽자 어린 뻘떡이는 높은 나무 둥지에 홀로 남았어.
뻘떡이는 배가 고파서 울다가 높은 나무 위에서 떨어져서 까무러쳤어. 정신을 차렸는데 어디선가 밥 냄새가 나서 찾아가니 잘 아는 올빼미 아줌마였어. '아줌마, 나 밥 한 술만 달라'고 했더니 '네 놈이 사나운 매의 아들이겠다, 네 요놈' 하고 날카로운 주둥이를 빼버렸어.
또 밥 짓는 냄새가 나서 찾아가니 잘 아는 까마귀 아저씨였어. '밥 한 술만 달라'고 했더니 사나운 발톱을 뺐고, 바로 옆집 까치 아줌마에게 갔더니 '아직도 살아있었네'라고 말하면서 어린 뻘떡이의 날개를 꺾고 솜털까지 빼며 하는 말 '이제부터 네놈은 매로도 못 살고 날짐승으로도 못 살거라'고 했지.
뻘떡이는 절망했다
- ▲ 장산곶매 등산패 20주년 기념식 ⓒ 채원희
뻘떡이는 산목숨이 아니었어. 자기 몸을 구더기가 파먹고 있는 걸 보고 '에라 모르겠다'하면서 웅덩이에 뛰어들었지. 그런데 피라미들이 구더기도 뜯어먹고 끝내는 뻘떡이의 살점을 갉아 먹는 거라. 뻘떡이는 절망하면서도 밖으로 기어 나왔어. 그런데 이번엔 생쥐새끼들이 '이게 웬 떡이냐'고 달려들었어. 뻘떡이는 땅 속을 파고들었지.
부리도 없고 발톱도 없으니 대가리로 파고 몸통으로 파 들어가 마침내 생쥐새끼들을 한참 비껴냈다고 생각할 적에 무언가가 위에서 쿵쿵거리더란 말이야. 사람의 소리가 들려왔어. '저기다 저기, 별만이를 먹었다는 뻘떡이가 땅 속에서 기어가고 있다. 저기를 파서 저놈을 잡아라. 별만이를 먹은 저놈을 고아먹으면 내가 천년만년 죽지 않고 영생할 수가 있을지니 저기를 어서 파헤쳐라.'
곡괭이로 쿵쿵, 또 쿵! 뻘떡이는 땅속 깊이, 더 빨리 달아났는데 아, 이럴 수가! 무언가가 '떵~' 하고 부딪쳐서 살펴보니 엄청난 바윗덩이가 뻘떡이 눈앞을 가로 막고 있질 않는가. 뻘덕이는 발톱이 없는 발이나마 으스러지게 움켜쥐며 다짐했지. '어차피 죽을 바엔 이내 대갈빼기(머리)로 우지끈 받아나 보고 죽자 하고. 우지끈 떵~ 하고 받다가 그만 넋을 잃었어.
그런데 무언가 차가운 물살이 철썩~. 깜짝 놀라 눈을 들어 보아하니 아, 이럴 수가. 바윗돌은 깨져 앞은 열렸는데 바로 발밑은 한 발도 못 나아갈 깎아지른 벼랑이요, 그 앞은 끝없는 바다였어. 생채기에 닿기만 하면 따끔거리는 짠물의 바다였지.
거기서 뻘떡이는 오도 가도 못하고 엎드려 있는데 날아가던 이름 모를 물새가 몹시 한심했던지 한마디 던지고 갔어.
'야, 인마 멍청이야! 거기는 살 데가 못되는 데야 인마. 바람과 거센 파도, 그리고 떠가는 구름만이 살어, 이 바보 멍청이야.'
생명의 깨달음
뻘떡이는 죽어라 하고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뱃가죽에서 무언가가 써물써물~. 쪼매난 나무 씨앗이 뻘떡이의 몸끼(체온)에 힘을 입어 수십억 년 눈을 못 틔우고 있다가 뽀시시 싹을 틔우고 있는 게 아닌가.
뻘떡이가 품어주면 싹이 트고, 또 다시 품어주면 싹이 트더니 마침내 그 민둥이 바윗덩어리가 엄청난 소나무 밭이 되는 게 아닌가. 뻘떡이는 거기서 처음으로 깨우침을 얻었어. 죽어가는 몸뚱이나마 한사코 웅크리고 있으면 한 목숨이 태어나는 거구나!
뻘떡이는 슬며시 힘이 난거야. 나래를 슬쩍 펴보니 나래가 펴진다! 어라? 하고 나래를 펴서 펄쩍 뛰어 소나무에 오르니 어느새 발톱도 나와 있어서 앉을 수가 있었어. 주둥이가 간질대서 나뭇가지에 부딪쳐보니 '딱, 딱' 부리질이 될 만치 입이 돋아나 있는 거야.
거기서 뻘떡이는 스스로를 깨우쳤어. '그렇구나, 산다는 것은 나만 사는 게 아니구나. 차가운 바윗덩어리를 쓸어안아 거기서 수억 년 싹을 못 틔우던 목숨을 틔우는 거로구나. 이 나래로 나만 나는 것이 아니라 이 너른 흘쩍(공간)을 나는 거요, 이내 눈으로는 내 앞만 보자는 것이 아니라 저 끝없는 하늘과 바다를 깨우쳐 새로운 하늘과 바다로 새롭게 빚으며 함께 어울려 끝없이 사는 것이로구나.
산다는 건
- ▲ 장산곶매 등산패 20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는 노동자들. ⓒ 김병기
다시 살아난 이내 부리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그까짓 내 배때기만 불리자는 것이어선 안 된다. 이 부리로 벗나래(세상)의 모든 목숨(생명) 아닌 것들과 맞싸워 참목숨인 '살티'를 일구는 것이요, 바로 그것을 일깨우는 부리질을 하라는 것이지, 날카롭다고 해서 아무 것이나 마구 쪼아대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거지.
죽음의 깎아지른 벼랑, 장산곶에서 새로 태어난 뻘떡이 장산곶매는 사나운 발톱과 부리로 쩨쩨하게 시리 무언가 제 먹거리나 얻는데 쓰지를 않았어. 사냥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멱치기', 다시 말하면 목숨 아닌 것과 맞싸워 참목숨을 일구는 싸움만 했어.
'멱치기'는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냐. 한해에 딱 두 번, 봄과 가을에만 하는데 그 '멱치기'를 떠나기 앞선 날 밤엔 '딱, 딱' 하고 까는 부리질을 하는 것으로 뜻을 다졌어. 제 둥지, 다시 말하면 제 집을 부수는 소리였어. 왜, 제 집을 부수는 것이었을까? '멱치기'는 온몸으로 참목숨을 얻어내는 싸움이지. 네가 이기고 내가 지는 싸움이 아니다, 이 말이야.
어째서 제 집을 부수는 것일까? 제 집을 그냥 놔두면 그 집에 마주한(대한) 집착 때문에 온몸으로 싸우는 '멱치기'가 안 되는 것이라, '딱, 딱' 하고 제 집을 부수는 것이요,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도 '딱, 딱' 하고 까대는데 그것은 또 무엇을 해대는 것이었을까?
장산곶매 저만 날아가는 것이 아니었어. 캄캄한 어두움(암흑)을 까 팽개쳐 별을 틔우는 것이었지. '딱' 하고 부리로 까면 밝은 빛의 별이 하나 생기고, 또 '딱' 하고 까면 더 밝은 빛의 별이 생겨. 캄캄한 하늘에서 길을 잃었던 누리(우주)가 길을 찾아 가는 것이야. 장산곶 사람들도 이 부리질 소리가 나는 밤이면 잠을 안 잤어. 자기의 쩨쩨한 소갈머리를 깨부수느라.
어떤 사람들은 방바닥을 '딱, 딱' 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도끼를 들어 썩은 나무를 '쩍, 쩍' 패고, 또 어떤 사람들은 물푸레나무 도리깨를 들어 제 가슴의 거짓, 나아가 벗나래(세상)의 모든 거짓과 껍질을 까는 것이었지.
도리깨질 소리는 아직도 들려오고 있어. 왜 그럴까? 오늘도 한낮인데도 캄캄하기만 한 저 하늘을 보란 말이야. '딱, 딱' 부리질 소리와 함께 한 별빛이 반짝, 또 하나 반짝. 그렇다, 장산곶매는 이참도 끝없이 '딱, 딱' 부리질을 하며 오늘도 한없이 가고 있어."
장산곶매 이야기가 끝난 뒤 송경동 시인과 기륭전자, 쌍용차, 동양시멘트,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노동자들은 백 소장의 '묏비나리'로 만든 곡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했다.
<옮긴이 : 월정사지킴이>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