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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번 국도 타고 평창 까지…팝콘처럼 톡톡, 터지는 하얀 가을(9월3일-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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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5-09-03 10:47 조회8,1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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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버리고 여유를 택했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양평 두물머리 느티나무에서 먼저 쉬어 간다. 아담하고 정갈한 횡성 풍수원성당, 산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태기산, 하늘과 맞닿은 오대산 전나무 숲을 지나 천년 고찰 월정사까지…가을로 들어가는 문,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눈부시다.

강원 평창은 지금 메밀꽃이 한창이다. 소금처럼 새하얀 꽃밭이 달빛 아래 빛난다. 가을의 문턱에 해발 700m가 넘는 곳, 구름조차 쉬어간다는 평창에 가면 지친 마음도 금세 환해진다.

한반도의 동서를 잇는 길. 서울에서 평창까지 영동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6번 국도를 탔다. 시간은 조금 더 걸릴지 모르지만 차창 밖 풍경을 따라가다 보면 운전이 즐겁다. 차가 밀려 옴짝달싹 못하고 차 속에 갇히는 일도 없다. 언제든지 샛길로 빠져나갈 수 있고 잠시 차를 세워두고 한적한 오솔길을 거닐 수도 있다. 동네 맛집에서 허기를 채우고 나면 오르지 못할 산이 없고 거슬러 오르지 못할 강이 없다. 6번 국도는 양평에서 횡성, 평창으로 이어지는 150여㎞를 달린다. 직선으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선 운전자가 되지만 곡선을 달리는 국도에선 누구나 여행자가 된다.

이효석 문학의 숲이 있는 강원 평창군 봉평면 창동리 일대가 소금처럼 새하얀 메밀꽃으로 뒤덮여 있다.




막히면 쉬었다 가면 되지

한강을 따라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보면 팔당댐에 도착할 즈음 6번 국도 표지판을 만난다. 팔당대교를 지나면 터널들이 꼬리를 문다. 신양수대교에서 차창 밖을 보니 하얀 뭉게구름 아래로 강물이 반짝반짝, 가을로 들어가는 문이 눈부시다. 평일 오전인데도 양주교차로에서 갑자기 차가 막혔다. 고속도로의 속도를 버리고 국도의 여유를 택한 여행자들이 의외로 많았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운전대를 꺾는 게 좋다. ‘양수리’ 쪽으로 방향을 틀어 ‘두물머리’로 향했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개의 물줄기가 만나는 양수리, 두물머리 느티나무에는 가을이 먼저 와 있었다.

다시 6번 국도를 탔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알고 보니 교량 점검 중이라고 했다. 용담대교를 지나고 나서야 길이 뚫렸다. 최고 속도 80㎞, 차창을 내린 자동차들이 산에 걸린 구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린다. 복포1리 남한강휴게소를 지나자 오르막이 나왔다. 구불구불 운전대를 꺾어가며 들꽃수목원을 지나는데 아랫동네 집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용문터널을 지나 언덕을 오를 때는 차가 구름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과속 주의’ 푯말이 나타났다. 이 지점부터는 적당히 속도를 낼 수 있을 만큼 도로가 평평하다. 용머리휴게소를 지나 횡성 분기점에도 ‘조심! 속도를 줄이세요’라는 간판이 큼지막하다. 횡성으로 나가는 길이 갑자기 좁아졌다. 속도를 내다간 지나칠 수도 있겠다.

1907년 지어진 풍수원성당.



언덕 위의 풍수원성당

엉덩이가 오른쪽, 왼쪽으로 심하게 뒤틀리는 것은 6번 국도가 주는 즐거움이다. 횡성까지 남은 거리는 21㎞. 귀가 먹먹했다. 오르막을 탔나 싶었는데 다시 내리막. 공사구간을 지나자 21번 파란 버스가 낯선 여행객들의 차를 인도하듯 느릿느릿 길을 내준다. 앞서가는 차들을 따라 풍수원성당으로 향했다.

100년도 넘은 성당은 아담하고 정갈했다. 빨간 벽돌로 지은 풍수원성당은 1801년 신유박해 당시 경기 용인에 살던 40여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피할 곳을 찾다 정착한 곳이다. 서울 중림동 약현성당(1892년), 전북 완주 되재성당(현 고산성당, 1896년), 서울 명동성당(1898년)에 이어 1907년 강원도에서 처음, 한국에서 4번째로 완공된 성당이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맨발로 들어선 성당은 한없이 조용하다. 창문 사이로 하얀 빛이 쏟아졌다. “열린 마음으로 소박하게 살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서로 나누고 섬기자.” 머문 시간은 고작 10분 정도였지만 여운은 오래 남았다.

풍수원성당 내부.



다시 시동을 걸었다. 시속이 10㎞ 이하로 떨어지더니 승용차들이 2~3대씩 짝을 지어 달렸다. 강경로를 따라 갈운1리에 도착해서야 이유를 알았다. 경운기 한 대가 ‘최대 속력’으로 느긋하게 달리고 있었다. 도로변 찰옥수수 간판이 정겨웠다. 느리게 달리니 보이는 풍경이다. 고속도로에선 맛볼 수 없는 정취가 구불구불한 국도에는 널렸다.

6번 국도의 선물, 태기산 하늘

손에 땀이 찼다. 횡성에서 평창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인 태기산에 오르려니 긴장이 됐다. 설악산의 한계령과 지리산의 노고단에 비하면 산의 크기가 작고 수려함과 장엄함도 훨씬 못 미치지만 태기산은 기대 이상이었다. 겹겹이 쌓인 봉우리들이 색다른 질감을 보였다. 저 멀리 산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해발 1261m의 태기산은 횡성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삼한시대 말기 진한의 마지막 왕인 태기왕이 이 산에 성을 쌓고 신라에 대항해 붙여진 이름이다. 산 정상에는 길이 1㎞의 태기산성과 태기산성비가 있고 신라 선덕여왕 1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봉복사가 있다.

태기산 풍력단지



태기산 8부 능선인 해발 980m쯤에 이르렀을 때 왼쪽으로 도로가 보였다. 차를 틀었다. 끝까지 올라보고 싶었다. 태기산 풍력발전소를 향해 3㎞쯤 올라갔다. 차에서 내려 발전기 아래에 섰다. 구름이 열렸다 닫힐 때마다 산이 풀렸다 갇혔다를 반복했다. 구름이 너무 빠르게 움직여 발전기가 비행기처럼 날아가는 것 같았다. 산등성이에는 야생화들이 지천이다. 동화책의 한 페이지를 펼쳐놓은 듯하다.

6번 국도의 가을, 전나무숲

6번 국도의 백미로 꼽히는 오대산 월정사로 향했다. 일주문에서부터 1㎞ 남짓, 하늘로 곧게 뻗은 1700여그루의 전나무를 따라 아름다운 숲길이 이어졌다. 오대천과 나란히 도로가 나 있어 숲과 계곡의 풍경이 한눈에 오롯이 들어온다. 숲이 깊어 그늘이 짙었지만 그 틈새로 쏟아지는 햇빛이 눈부시다. 평균 수령 83세. 최고령 나무는 370년이 넘는다는 전나무숲에서 여행객들은 몸과 마음을 씻는다. 차창을 내리고 천천히 페달을 밟아가자 저만치 천년 고찰 월정사가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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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까지 10㎞ 남짓한 길은 어떨까. 조금 더 욕심을 내기로 했다. 극심한 가뭄이라고 했지만 오대천 계곡의 물살은 힘을 잃지 않았고 계곡의 정경은 변화무쌍했다. 옛날 화전민들의 애환이 서린 길은 비포장이었다. 달구지처럼 덜컹거렸지만 차들은 리듬을 타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지어 달렸다.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자동차 쉼터도 군데군데 보였다.

정도전은 평창을 “하늘이 낮아 고개 위가 겨우 석 자”라고 말했다. 국도를 달려 찾아간 평창의 가을은 길도 숲도 물도 아늑했다.


<옮긴이 : 월정사지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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