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사자암 광명진언 철야 현장(2월3일-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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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2-03 09:23 조회8,469회 댓글0건본문
‘팔만사천 광명진언’에 혹한도 혼침도 홀연 가더이다
오대산이 잠들었다.
잔설로 백발이 된 오대산은 얼어붙어 미동조차 없었다. 영하 20도, 체감온도 영하 33도. 그러나 중대사자암 비로전은 뜨거웠다. 합장하거나 염주를 움켜쥔 두 손이 절절했다. 부처님 지혜광명이 자신뿐 아니라 일제중생에게 비추길 바라는 간절함이 빚은 장엄이었다. 1월23~24일 2016년 새해 첫 ‘광명진언 철야법회’였다.
1월23~24일 병신년 첫 법석
체감온도 영하 33도에도 정진
전국 각지에서 200여명 동참
새벽 4시 회향까지 낙오 없어
매월 넷째 토·일 철야법회
감원으로 해량 스님 부임한 후
2011년부터 6년째 지성 주력
월정사 정념 스님 입재 법문
“비로자나불 지혜 안에서
1000년 어둠 밝히는 계기”
부처님 지혜가 살아 숨 쉬는 오대성지 중대사자암·적멸보궁(감원 해량 스님)은 2011년부터 매월 넷째 주 토·일요일마다 한 회도 거르지 않고 정진해왔다. 해량 스님이 감원으로 부임한 뒤 직접 광명진언 주력을 이끌었다. 그래서일까. 전국 각지서 200여명이 비로전에서 비로자나불 지혜광명을 부르짖었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도 꾸준히 법회를 격려해왔다. 스님은 법문으로 철야법회 입재를 알렸다.
“세상이 불타고 있습니다. 과도한 욕심과 집착, 어리석음이 만든 업장 불길입니다. 중생은 육근으로 접하는 세상을 진짜로 알고 탐하고 집착합니다. 사실 지혜가 없는 무명(無明)이 근본 원인이지요. 자기 마음부터 밝혀야 합니다. 불 켜면 환해지듯 천년 어둠도 한 등불 아래 사라집니다. 광명진언으로 비로자나불 지혜를 증득해 세상 밝히는 기운을 만드는 계기가 되시길 바랍니다.”
광명진언은 비로자나불이 산 자든 죽은 자든 육도윤회를 하는 자든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주문이다. ‘불공견삭비로자나불대관정광진언경’에 따르면 진언을 꾸준히 읊으면 오랫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무명과 업장을 걷어낼 수 있다. 자성의 밝은 본성을 드러나게 해서 과거 악업을 지혜광명으로 소멸해 극락왕생한다고 전해진다. 아무리 짙은 어둠이 마음을 덮고 있어도 부처님 광명 속에 들어가면 절로 정신과 마음이 맑아져 무명을 타파한다는 진언이다.
▲ 오대산이 얼어붙었다. 영하 20도. 중대사자암 비로전은 뜨거웠다. 합장하거나 염주를 움켜쥔 두 손이 절절했다. 부처님 지혜광명이 자신뿐 아니라 일체중생에게 비추길 바라는 간절함이 빚은 장엄이었다. |
일찍이 원효 스님도 광명진언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실제로 항상 가지고 다니던 바가지에 강변의 깨끗한 모래를 담아 광명진언 108번을 외운 다음 묘지나 시신 위에 모래를 뿌려 영가를 천도했다. 원효 스님은 정토사상을 논술한 ‘유심안락도(遊心安樂道)’에서 이렇게 설파했다.
“만일 어떤 중생이 어디서든 이 진언을 얻어 듣되 두 번 이나 세 번, 또는 일곱 번 귓가에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곧 모든 업장이 사라지게 된다. 만일 어떤 중생이 십악업(十惡業)과 오역죄(五逆罪)의 사중죄(四重罪)를 지은 것이 세상에 가득한 먼지처럼 많아 목숨을 마치고 삼악도에 떨어지게 될지라도 이 진언을 108번 외우고 흙모래를 죽은 이의 시신 위에 흩어주거나 묘나 탑 위에 흩어주면, 죽은 이가 지옥에 있거나 아귀, 아수라, 축생세계에 있거나 그 모래를 맞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부처님과 비로자나 부처님 진언의 본원과 광명진언을 외운 흙모래의 힘으로 즉시 몸에 광명을 얻게 되고 모든 죄의 업보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하여 고통 받는 몸을 버리고 서방극락세계에 가게 되어 연화대에 환생한다. 그리하여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다시는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다. 29자로 된 짧은 광명진언의 수승한 공덕은 고승들 입에 오르내렸다. 송나라 일원 스님은 “나에게 오직 여의보주가 있으니 광명진언”이라고 했으며, 양나라 해운 스님도 “천지우주에 둘도 없는 큰 보물이 광명진언”이라고 했다. 수나라 대명 스님 역시 “복과 지혜를 불러들이는 미묘한 큰 보배”라고 표현했고, 진나라 도광 스님은 “만사를 성취하게 하는 조화방망이”라고 평했다. 명나라 천현 스님은 “복과 운을 마음대로 지어내는 기묘한 화수분”이라고까지 평했다.
“옴 아모가 바이로차나 마하무드라 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릍타야 훔….”
해량 스님은 때론 빠르게 때론 힘차게 주력을 이끌었다. 대중들 신심이 자아내는 광명진언을 어르고 달래듯 경책하며 채찍질하듯 기운차게 밀고 나갔다. 목탁은 신명을 냈고 그때마다 광명진언은 하얀 입김으로 생멸했다.
정진은 혼침과 혹한, 잡념과의 사투였다. 사실 매서운 추위는 잡념을 물리고 ‘춥다’는 느낌만 남겼다. 강력한 그 느낌은 진언을 밀어내기 일쑤였다. 옷 틈새로 ‘바람 칼’이 들었다. 저릿하다 못해 배일 듯 쓰라린 추위였다. 오대산 찬 공기가 법당을 휘저었다. 진언 주력이 무르익자 잦아들더니 ‘바람 칼’은 무뎌졌다. 주력으로 ‘춥다’를 몰아낼라치면 혼침이 더 강하게 밀려왔다.
철야법회 정진 대중들 신심은 두터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비로전 사방 8면에 각각 다섯 사자좌의 문수보살을 중심으로 상계(上界) 500 문수보살과, 하계(下界) 500 문수동자상이 굽어보고 있었다. 5만 불보살이 상주하는 오대산의 상서로움도 거들었다. 지근거리에는 신라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정골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이 버티고 있었다. ‘절대신심’ 깃든 문수성지 오대산에 틈은 없었다.
자정에서 새벽으로 흐르는 시간이 칠흑 같은 어둠과 천근처럼 무거운 혼침을 불러왔지만 진언 염송소리는 거세졌다. 법당 사방천지에서 광명진언이 용트림하며 오대산을 깨웠다. 몇몇이 장궤합장하기 시작했다. 혼침 때문이었다. 혼침을 이겨내서라도 광명진언을 놓지 않겠다는 정진력이었다.
강릉에서 온 이중근(심향) 거사와 정연자(양원) 보살 부부는 문수성지를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법회 내내 합장을 풀지 않는 등 결연하게 정진했다. 부부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한 뒤 2015년 4월부터 광명진언 철야법회에 동참해온 이유였다. 아내는 ‘초파일 신자’였다. 기복을 위해 절에 다녔고 기도했다. 절에 가면 삼성각부터 찾았다. 아내를 절에 데려다주던 남편은 도량에 한 발짝도 발들이지 않았다. 직장이 있는 강릉 관음사 불교대학을 다니고 포교사고시에 합격하면서 남편은 달라졌다.
이 거사는 “처음엔 대중의 소리를 듣고 집중하다보면 공성이 일어나 어느 순간 번뇌가 사라진다”며 “이후엔 내 소리만 오롯이 남게 돼 더 간절히 진언에 몰입하게 된다”고 밝혔다. 정 보살은 “나와 가족을 위한 기도만 하다 이제야 진정한 수행을 만났다”며 환희심을 냈다.
임복숙(자성화) 보살은 비로자나불이 결하는 수인인 지권인을 하며 광명진언을 독송했다. 법으로써 중생을 구제하고 일체 무명번뇌를 없애고 부처님 지혜를 얻겠다는 발원이었다. 곁에서 정진하는 도반에게 직접 만든 염주를 보시하며 성불을 기원한 임 보살은 “열심히 독송하다보면 절로 신명이 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며 “여름에는 농사일로 바빠 못 오지만 한 달에 한 번 철야법회에 참석하고 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고 말했다. 4년째 대구에서 오대산을 찾는 구참자 오나연(지계심) 보살도 “처음엔 피곤하고 힘들지만 수차례 정진하면 신심이 절로 생긴다”며 방한용품을 나누며 이날 법회를 회향했다.
새벽 4시, 아직 여물지 않은 아침이 오대산에 방부를 들였다.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대구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온 이들은 광명진언 새겨진 염주 9알을 꿴 뒤 환희 품고 오대산을 떠났다. 1년 12번 동참 후 108염주 완성되면 오대산과 함께 또 한 번 환희심에 젖으리라.
하늘은 늙지 않는다. 비로자나불 지혜광명도 늙지 않는다. 중대사자암 비로전을 가득 메운 광명진언 역시 형형히 빛났다. 잔설 녹아 새 생명 움 틔우는 봄, 곧 다가오면 오대산 깨어나듯 그러했다. 오대산, 늙지 않았다. 오래된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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