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에 한국판 ‘플럼빌리지’…(1월26일-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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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1-26 13:06 조회7,638회 댓글0건본문
법당신앙 벗고 불교가치 세계화
제4교구 월정사 정념스님
오대산에 겨울향 그윽했던 지난 12일 제4교구본사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을 만났다. 동안거 결제중인 스님은 방선시간을 틈타 시간을 내줬다. 올해로 13년째 월정사 주지를 맡고 있지만 여름과 겨울안거를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스님은 “궁극을 향한 자기수행이랄까. 아무리 사중일이 많아도 안거에 들지 않으면 출가자로서 근본적으로 해야 할 일을 놓치고 딴일 하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법문을 해주고, 종무회의도 주관하지만 ‘좌복을 떠나지 않는 것이 결제정신’이라는 원칙과 선원 대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거중에는 되도록 바깥출입을 금한다. 스님은 올해 조계종 교구장 스님들의 협의체인 교구본사주지협의회 회장을 맡았다.
교구장의 임무를 비롯해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교구본사의 역할과 제도적 보완점 등에 관한 스님의 소신은 상당히 투철하고 분명했다. 특히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세계인들에게 한국불교를 제대로 한번 선보이겠다는 열정과 각오는 남달랐다.
강원도의 겨울은 매섭고 눈도 많이 내린다. 지난 12일 오대산 월정사는 비교적 포근했다. 팔각구층석탑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석조보살은 따사로운 겨울볕을 쬐고 있고, 안거중인 월정사 주지 정념스님은 맑고 청안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지난해 12월 월정사 주지로 임명됐다. 2004년 첫 주지 후 4선 연임이다. 2020년 임기까지 16년간 주지소임을 맡는 셈이다.
“교구를 이끄는 수장은 교구 구성원들과 함께 변화를 도모하면서 역동적인 성장을 일궈야 하는데, 한 주지가 오래 살면 짐짓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12년간 안정된 교구를 유지하면서 대중들의 인식을 발전적으로 변화시키고 시대가 요구하는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했고 그만큼 결실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변화를 추구했는가.
“은둔적이고 소극적이고 전통적인 법당 중심의 산중불교에 역동성을 불어넣어서 도시문명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호소하는 온갖 병리현상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유무형의 인프라를 구축하는데 집중했다. 단기출가학교, 천년숲걷기 행사, 오대산문화축전, 요양시설 등 복지시설 설립 등이 그것이다.”
-수행과 복지, 포교와 교육 등에 관한 교구본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산중사찰에서 복지란, 과거에는 어른 잘 모시고 병약한 사람을 사중에서 잘 돌보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은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시대다. 수행 역시 선원 중심의 수행가풍을 중시하다 보면 현대인들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다. 웰빙문화를 지향하면서 마음치유를 갈망하는 요즘 사람들 근기에 걸맞도록 불교적 수행가풍을 새롭게 구현해야 한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법당중심의 기도와 불공, 염불에서 나아가 생명생태적인 삶과 친환경적 가치관 등을 공유하는 신도교화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신앙적 구복적 종교가치는 유럽이나 선진국에선 이미 화석화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불교의 근본정신을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모색해야 할 때다.”
-중앙 종단과 교구본사의 관계유형은 어떻게 설정돼야 바람직할까.
“종단은 현 시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문명이 가지는 한계성과 폐단을 연구와 교육을 통해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불교의 정체성과 불교적 세계관을 담론으로 제시해야 한다. 교구는 현장의 실천적인 조직이다. 종단이 정립한 거시적인 비판과 대안 속에서 어떤 디테일한 담론을 실천해낼 수 있을까 교구는 고민해야 한다. 일(一)과 다(多)의 문제다. 하나속에 전체가 있고 전체와 하나는 불가분의 연기적 관계를 갖고 있다.”
-현 종단에서 지향하고 있는 ‘교구중심제’에 대한 견해는.
“현대문명 자체가 지방화 분권화 자율화를 지향하는 수평적 문화구조다. 중앙중심제와 같은 문화는 획일성을 요구하고 행정 중심주의로 정치권력화되기 쉽고 종교의 본질이 훼손되고 발전적 변화를 발목잡을 수도 있다. 종교가 지니는 속성이 교조적이고 문화와 관습을 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불교는 무위공법(無爲空法), 즉 주(住)하는 바가 본래 없는 이치다. 불교적 세계관과 철학 속에서 이상적 승가와 교단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교구중심제다. 그러나 단위승가로서 교구가 인사나 재정은 물론 교구종회를 통한 자치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부족한 현실이다. 단위승가(교구본사)마다 종헌종법에 기반한 자치기능을 부여하고 교구종회를 대폭 강화해서 교구와 인연맺은 모든 활동주체들(재가자 포함)이 애종심과 책임성을 갖고 교구대중의 역할을 완수해야 한다.”
-1980년에 출가해서 오대산 상원사 주지(1992~2004), 교구본사 월정사까지 20년 넘게 주지소임을 봐왔다. 스님만의 ‘주지론’이 있을 것 같다.
“승가정신의 중심은 ‘화합’이다. 주지는 화합을 간과해선 안된다. 화합은 주지로서 도량을 이끄는데 기본적인 근간이다. 화합대중을 구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한국불교 전통인 문중불교가 교구화합의 이점이 되기도 하지만 분파주의로 인해 화합을 저해하고 교구개혁에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교구장의 권한을 마음대로 행사하고 자기중심으로 정치적 구조를 만들려는 속성도 따를 수 있겠지만, 이를 최소화하고 무슨 일이든 원만하게 잘 풀어서 대중화합을 통해 주지의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화합이 깨지고 권력논리만 남으면 지도력에 ‘안티’가 생겨서 그런 일에 에너지를 쏟다보면 하고자 하는 일들이 꼬이기 마련이다. 교구의 지도체제가 불안정하고 올곧은 권위가 형성되지 않으면 지역공동체에서 신뢰를 받지 못하고 급기야 교구로서의 제역할, 불교적 가치구현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주지는 방향설정자로서 대중을 화합으로 이끄는 다리역할을 잘 해내야 희망을 심어주는 공동체로 성공한다.”
-병신년 새해를 맞아 불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린다.
“영가스님의 ‘증도가’에는 ‘화중생연 종불괴(火中生蓮 終不壞)’라는 구절이 있다. 불꽃 속에서 연꽃을 피워내야만이 영원히 불타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연꽃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인간의 이기심, 탐욕, 어리석음과 분노가 함께 불타는 올 한해, 한송이 연꽃이 피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 삶은 평화와 행복이 되고 남북통일의 문도 열어내는 좋은 기운이 성성하리라 믿는다. 아프고 힘들어도, 우리 안에 내재된 슬기로운 지혜심을 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18년 월정사에선 평창 ‘문화올림픽’
앞으로 2년 후면 월정사는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와 같은 대규모 복합문화명상힐링타운으로 변모될 전망이다. 정념스님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됐던 지난 2011년께부터 전세계인에게 선보일 한국불교의 위대한 면모를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1400년 전부터 자장율사가 문수성지로 명맥을 이어온 월정사가 보유해온 숱한 역사기록물과 아름다운 성보를 세계인의 눈높이에 맞도록 선보이고 생명, 생태, 환경을 바라보는 한국불교의 관점을 제시할 뿐만아니라 명상힐링마을을 조성해서 심신을 재충전하고 치유받을 수 있도록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할 방침이다.
“오대산 월정사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실록>와 <조선왕실의궤>를 모셨던 유서깊은 사고(史庫)가 남아있다. 사명당에 의해 설립된 사고를 근간으로 올해부터 어궤실록 전시관을 건립할 예정이다. 조선시대 사고의 수호총섭이었던 월정사 주지의 역할을 받들어, 일본으로부터 반환한 유물이 하루빨리 본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성보박물관과 어궤실록전시관, 한강시원지체험관 등을 통해 불교를 중심으로 한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외에도 야외 불교조각공원을 조성해서 문화학습체험공간을 열고 명상힐링마을도 구상하고 있다. 정념스님은 “프랑스의 플럼빌리지와 같이 많은 세계인들에게 정신적 치유와 더 나아가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고 싶다”며 “잘만 한다면 변방의 산중불교의 작은 변화와 더불어 한국불교가 세계속으로 뻗어나가는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스님의 ‘콘텐츠’는 무궁무진했다. 농악이나 강강수월래의 원형인 탑돌이를 무형문화재로 보존해서 새로운 공연문화로 적극 활용할 뿐만아니라 산중에서 내려오는 역사와 전설을 스토리텔링으로 가공해서 오페라나 뮤지컬로 재해석하는 방안도 고심하고 있다. 13년째 주지를 하고 있지만, 월정사를 향한 스님의 열정과 사랑은 더할나위 없었다.
[불교신문3172호/2016년1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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